뺏긴 역사찾자 78

■ 헝가리. 터키. 핀란드 기원은 고구려이다.

■ 헝가리. 터키. 핀란드 기원은 고구려이다. ■ 헝가리(Hungary)와 훈족(Hun族) 및 고구려(高句麗) 미국의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Discovery)에서 방영한 내용인데, 외국 특히 독일(獨逸)에서는 훈족(Hun族)이 한국의 고구려(高句麗)에서 뻗어나온 세력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훈족(Hun族)을 이민족(異民族) 취급을 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는 친일파(親日派)들이 주류(主流)로 대접받았고, 식민지(植民地) 사관(史觀)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힘없고 약해빠진 쓰레기 역사라고 교육시키는 현실이니, 우리 나라의 역사에 자긍심을 키우기 보다는 패배주의(敗北主義)에 빠지게 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夫餘 BC 239-58),..

뺏긴 역사찾자 2011.09.19

■ 제5 문명, 요하(遼河) 문명은 한국 조선족 역사

■ 제5 문명, 요하(遼河) 문명은 한국 조선족 역사 ■ AD 6천년 한반도-요하(遼河) 단일 문화권 유물 증거 일본 강점기까지 ‘만주(滿洲)’라고 불렸던 중국의 동북 3성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은 고조선(古朝鮮)은 물론 고구려, 발해 등의 터전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독립 운동이 펼쳐진 우리 민족의 주요한 활동 무대였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 곳곳에는 한민족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근 만주 일대에서는 고조선(古朝鮮)과 관련이 있는 유적과 유물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만주(滿洲)에서 펼쳐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복속하려는 동북(東北) 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과서를 통해 황하(黃河)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고 배웠다. 중국 ..

뺏긴 역사찾자 2010.01.29

■ 음양오행(陰陽五行),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나?

■ 음양오행(陰陽五行),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부루(夫婁)의 서행(西行)”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단군(檀君) 왕검이 아들 부루(夫婁)를 보내어 중국 하우(夏禹)를 도산(塗山)에서 만나게 하였다." 또한 오월춘추(吳越春秋)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있다. “중국 당요(庸寶) 임금 때에 9년 동안 홍수가 나서 당요(庸寶)가 하우(夏禹)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게 하였다. 우(禹)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남악(南嶽). 형산(衝山)에 이르러 흰 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드리고 성공을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玄夷)의 창수(蒼水) 사자(使者)라 일컫고, 우(禹)에게 ..

뺏긴 역사찾자 2010.01.06

■ 만주. 북중국 피라미드(pyramid)는 누가 만들었나?

■ 만주. 북중국 피라미드(pyramid)는 누가 만들었나? 만주(滿洲) 및 북중국에 가면, 웅장한 피라미드들이 여기저기 수 없이 서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100개 이상이다. 평균 25-100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다. 이집트 최대 피라미드 보다 더 큰 것도 있다. 제작 시기도 이집트보다 몇백 몇천년 앞선다. 이런 것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기술로는 연인원 100만명이 소요된다고 한다. 큰 것은 이집트 최대 피라미드 보다 더 크다. 바로 우리 배달(倍達)의 조상들이 건축해 놓은 것들이다. 2001년 07월 09일, 중국 신화 통신은 만주에서 5,000여 년 전의 피라미드를 발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7개의 묘장과 상제(上帝)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고 한..

뺏긴 역사찾자 2009.07.09

■ 우리 한민족은 하늘에 천제(天祭) 지내던 민족

■ 우리 한민족은 하늘에 천제(天祭) 지내던 민족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천손(天孫) 즉, 하늘의 자손으로 불렸다. 하늘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그리움이 어찌나 컸으면 한 나라의 국가(國歌)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즉, 군자국(君子國)으로도 불리는 대한민국. 하늘의 큰 복을 받은 민족이기에 예로부터 외세의 숱한 침략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백의민족(白衣民族). 외세의 압력과 계략으로 우리민족의 역사를 왜곡했던 그 설움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민족의 역사를 다시 바로잡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첫 번째 걸음으로 ‘원구단(圓丘壇)’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 원구단(圓丘壇)이란? 1967년 7월15일 사적 제157호로 지정된 원구단(圓丘壇)은 천자가 하늘에 제..

뺏긴 역사찾자 2009.06.25

■ 태극기(太極旗) 제작의 유래 및 역사

■ 태극기(太極旗) 제작의 유래 및 역사 태극(太極)은 만물이 생성, 전개되는 근원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국내 최고(最古)의 태극 문양은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목제품 태극 문양(600년경)이다. 그리고, 지금의 태극기와 비슷한 태극 모양과 4괘 도형은 1392년 고려말 공양왕 때 제작된 범종(梵鐘)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국가 상징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었고, 다만 특유의 문화 양식으로만 사용되는 도형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태극기가 대외적인 국가 상징으로 사용된 것은 1882년의 일이었다. 1882년 고종(高宗) 황제께서는 일본 수신사로 떠나는 박영효(朴泳孝)에게 태극기의 도안, 재질, 도형의 설명, 그리는 방법까지도 직접 언급하시고 지시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게 하였..

뺏긴 역사찾자 2008.12.26

■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선 골각문자 발견

■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선 골각문자 발견 중국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갑골(甲骨) 문자보다 1000년이나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문자가 발견됐다. 갑골문자는 중국 고대 상(商·BC 1600~1046년)나라의 수도인 은허(殷墟·허난성 안양현)에서 1899년 처음 발견된 이후 중국 최초의 문자로 인정받아 왔다. 산둥(山東)대 고고미술학연구소 류펑쥔(劉鳳君) 소장이 최근 중국 고고학 관계자들을 초청한 세미나에서 갑골문자 이전에 다른 형태의 골각(骨刻) 문자가 산둥성 창러(昌樂)현 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21일 보도했다. 류 소장은 중국 고고미술학의 창시자로 학계의 명망이 깊은 학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회과학원 왕위신(王宇信) 교수 등 은상문화협회(殷商文化協會) 관..

뺏긴 역사찾자 2008.10.22

■ 추석(秋夕)과 성묘(省墓)의 유래 및 역사

■ 추석(秋夕)과 성묘(省墓)의 유래 및 역사 추석(음력 8.15)에 성묘(省墓)하는 것은 중국 민족에게는 찾아 볼 수 없고, 고대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이다. 우리 민족의 추석은 고대 시대부터 달(月)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고대 사회에서 어두운 밤은 인간에게 있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滿月)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가장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추수 감사의 제사(祭祀)풍습으로서 ..

뺏긴 역사찾자 2008.09.16

■ 한국 봉황(鳳凰)과 중국 동북공정의 역사 전쟁

■ 한국 봉황(鳳凰)과 중국 동북공정의 역사 전쟁 우리 배달(倍達) 민족은 봉황(鳳凰)과 용(龍)을 모두 신성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봉황(鳳凰)을 더 신성시하였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민족은 지도자의 상징으로 봉황(鳳凰)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우리민족의 상징은 호랑이나 곰이 아니라, 봉황(鳳凰)인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의 신수(神獸)는 봉황(鳳凰)이며, 한족(漢族)의 신수(神獸)는 용(龍)이다. 봉황(鳳凰)은 불(火)과 대륙 문화를 상징하고, 용(龍)은 물(水)과 농경 문화를 상징한다. 배달(倍達) 민족인 한민족(韓民族)은 북만주와 요동에서 시작하여 대륙에서 말 타고 활을 쏘는 문화에서 출발하였고, 중국 한족(漢族)은 황하강 유역에서 물(水)을 중심으로 출발하였다. 한민족(韓民族) 한국의 대표적인 ..

뺏긴 역사찾자 2007.09.18

■ 대한민국 국새(國璽)와 용(龍). 봉(鳳)

■ 대한민국 국새(國璽)와 용(龍). 봉(鳳) 나라를 대표하는 인장(印章)을 국새(國璽)라고 부른다. 국새(國璽)는 나라를 상징하기도 하기도 했으며, 국력에 따라 모양과 형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국새(國璽)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북부여(北扶餘. BC 239-58))의 후손인 낙씨 부여 예왕(穢王)이 예왕지인(穢王之印)이란 국새를 사용한 것으로 부터 비롯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예고새인조(禮考璽印條)에 부여(扶餘)의 예왕(濊王)이 '예왕지인(濊王之印)'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국새(國印)이다. 중국에서는 춘추 전국시대를 평정한 진시황(秦始皇, BC 246 즉위)이 옥으로 임금 도장을 만든 것이 처음이다. ★ 국새(國璽)의 모양과 형식이 변천해 온 과정을 이해하려면,..

뺏긴 역사찾자 2007.09.18

■ 강태공(姜太公)은 배달(倍達) 민족의 자손이다.

■ 강태공(姜太公)은 배달(倍達) 민족의 자손이다. 1. 배달국(倍達國)의 감독관이었던 강태공의 조상,소전(少典) 강태공(姜太公. BC 12세기, 3,100년전)은 동방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신교(神敎)의 도맥(道脈)을 중국의 한족(漢族)에게 전수한 사람이다. 본명은 강상(姜尙)이다. 강태공(姜太公)은 경농과 의학의 시조이며, 진주(晋州) 강(姜)씨의 시조인 신농(神農, BC 3,218-3,070)씨의 후손이다. 신농의 아버지 소전(少典)은 배달국(倍達國) 8대 안부련 환웅(桓雄, BC 3,240년 즉위)의 명령으로 강수(姜水)에서 군병 감독관의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이며, 약 5,280년 전의 사람이다. 소전(少典)의 아들인 신농(神農)은 5,250년 전의 사람으로 강수(姜水)에..

뺏긴 역사찾자 2006.08.07

■ 인류 시원과 개벽 및 환국(桓國, B.C 7,199-3,898)

■ 인류 시원과 개벽 및 환국(桓國, B.C 7,199-3,898) 약390-290만년 전부터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으며, 약230만년 전에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다. 이들의 화석은 아프리카의 남부와 동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편, 인류의 구석기 문화가 등장하는 것은 “호모 하빌리스” 때부터이고 구석기 전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또한, 약50만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 사람)”가 출현했고 이들도 구석기 전기의 문화를 누렸다. 그리고, 약 17만년 전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이들은 구석기 ..

뺏긴 역사찾자 2006.08.06

■ 환국(桓國) 배달(倍達) 및 인류 4대 문명 전개

■ 환국(桓國) 배달(倍達) 및 인류 4대 문명 전개 지금으로부터 9,200년 전에 바이칼호에서 천산(天山.파나류산)에 이르는 대제국이 있었는데, 나라 이름을 환국(桓國)이라 하였다. 환국(桓國)은 9개의 족속에 의해 12개의 분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환국(桓國)을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를 환인(桓仁)이라 하였는데, 환국(桓國)의 역사는 모두 7대의 환인(桓仁)에 의해 다스려졌다. 환국(桓國)은 집단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국가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갖가지 유용한 문명이 개발되었으며, 대규모의 종교의식도 행해졌다. 제단(祭壇)을 쌓고 제천의식을 행하는 신교(神敎)문화였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인 상제(上帝)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천(祭天)의식이었고..

뺏긴 역사찾자 2006.08.06

■ 제주 고(高)씨의 기원과 고구려(高句麗) 왕족

■ 제주 고(高)씨의 기원과 고구려(高句麗) 왕족 한국의 모든 고(高)씨의 뿌리는 “제주 고(高)씨”이며, “제주 고(高)씨”에서 출발하여 20여개 분파로 나눠졌다. 제주 고(高)씨의 기원은 고구려(高句麗)의 개국(開國) 시조(始祖) 고주몽(高朱蒙 BCE 58-BCE 19)으로 부터 기원한다. 이후, 고구려의 왕과 왕족은 모두 고(高)씨 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패망 이후 패주한 고구려의 왕족은 엄청 멀리 도망가야만 했다. 그래서, 고구려의 왕족인 고(高)씨들은 양씨, 부씨 등과 함께 제주도(濟州道)에 피신하게 되었으며, 고려(高麗) 중기 까지 숨어 살다 고려 중기 이후 제주 고(高)씨들은 다시 중앙으로 서서히 진출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 고씨(高氏)’ 종친회는 탐라(耽羅) 개국(開國) 설..

뺏긴 역사찾자 2006.07.27

■ 축구 응원단 상징 '붉은 악마'는 치우 천황(天皇)!!

■ 축구 응원단 상징 '붉은 악마'는 치우 천황(天皇)!!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의 치우(蚩尤) 천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동방을 통일하여 신교(神敎) 문화권으로 통치한 최초의 천자(天子)이다. 치우 천황(蚩尤天皇)은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환웅(桓雄)으로 B.C2,707년에 즉위하신 분이다. 그 무렵,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인 황제(黃帝) 헌원(軒轅, B.C 2,692~2,593)은 동방 배달국의 천자(天子)로부터 독립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치우(蚩尤) 천황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배달국의 일개 제후(諸侯)였던 중국의 황제 헌원(軒轅)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탁록(?鹿)의 대결전이 전개되었는데, 치우천황(蚩尤天皇)은 황제 헌원(軒轅)을 제압하고 동방 ..

뺏긴 역사찾자 2006.07.17

■ 만화로 보는 "환단고기(桓檀古記)"

■ 만화로 보는 "환단고기(桓檀古記)" 임진왜란 당시 3일만에 투항한 왜병(倭兵) 장수 “사야가”의 귀순 미스터리를 통해 한민족사의 시원(始原)을 밝힌 역사 만화! 한국 만화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며, 화제를 모은《한국만화원형사(韓國漫畵原形史)》의 저자 한재규 교수의 필생의 역저! 민족사 관련 단체들의 성원과 극찬 속에 드디어 출간됐다. ■ 한민족, 그 위대한 시원의 역사, 만화 환단고기(桓檀古記) 우리의 한국 역사는 9,200년의 역사이다. 하지만,《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해 2000년 역사로 추락한 상태이다. 각종 국정 교과서들은 실증 사학이란 명목 하에 고조선의 단군마저 신화로 치부하고, 스스로 반도 사관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환국, 배달국, 고조선의 대륙 역사를 빼고, 실제로는 2000년 역사..

뺏긴 역사찾자 2006.07.17

■ 일본 규슈의 백제(百濟) 무령왕 기념비 건립

■ 일본 규슈의 백제(百濟) 무령왕 기념비 건립 2001년 겨울,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나 자신 (일본)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續)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대해 새삼 한국과의 깊은 인연(緣)을 느낀다” 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대서 특필했지만 일본은 아사히(朝日) 신문을 제외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간무 천황의 어머니 다카노 니카사(高野新笠)는 고닌(光仁·재위 770∼781) 천황의 부인인데, 간무 천황의 명으로 만든 ‘속일본기’의 다카노 황태후 장례 기사의 말미에 “다카노 황태후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純陀) 태자의 후손이다.” 라는 기록이 나온다. 순타 태자는 505년에 사아군(斯我君)이라는 이름으로 백제에서..

뺏긴 역사찾자 2006.07.17

■ 일제(日帝) 강점기, 한국 고분(古墳) 수난사

■ 일제(日帝) 강점기, 한국 고분(古墳) 수난사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후, 한반도 남부 일대의 고분을 집중적으로 발굴 조사한 것은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1904년 야키(八木裝三郞)가 임나일본부의 근거지라고 믿었던 경남 김해 일대를 대대적으로 발굴 조사했다. 그 후, 1907년에는 이마니시(今西龍), 1914년에는 도리이(鳥居龍帳), 1915년에는 구로이다(黑板勝美)가 각각 경남. 경북 일대를 대대적으로 발굴하고 조사했다. 이들은 학수고대하던 임나일본부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다니이(谷井濟一)가 창녕 교동(校洞)에서 수습한 유물이 철도 화차 2량분이었는데, 그 대부분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발굴이란 미명하에 이루어진 국가 차원의 도굴이었다. 저명한 학자 이마니시..

뺏긴 역사찾자 200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