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14

■ 즐거운 편지 (황동규)

■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시(詩)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1958년 '현대 문학'에 실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황동규 시인의 첫 시집 ‘어떤 개인 날’..

시(詩) 2022.11.16

■ 신중하라!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 신중하라!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사람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잘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신중하라!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외수)]

시(詩) 2022.05.13

■ 누가 그랬다. (이석희)

■ 누가 그랬다. (이석희)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누가 그랬다. 가끔,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다. 그리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뿐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다.” [누가 그랬다. (이석희)]

시(詩) 2022.05.13

■ 오늘도 눈이 차갑게 내린다.

■ 오늘도 눈이 차갑게 내린다. ★ 새들이 철 모르고 날개짓 하던 저기 저 하늘은 분명 텅빈 허공(虛空)인데 무슨 까닭인지 그 속에서 눈이 내린다. 새들이 그 자리에서 애쓴 흔적도 전혀 남아있지 않은데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으로 하염없이 말도 없이 오늘도 눈이 차갑게 내린다. ★ 텅빈 허공(虛空)의 속을 날던 저 눈송이들에게 생명(生命)이란 무엇인가? 손과 발이 없는 몸으로 그게 법(法)인 줄도 모르고 그 시공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 법(法) 안에서 우주를 바라보며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나와 새 그리고 눈송이들은 손금 같은 그 이치 속에 갇혀있다. ★ 오늘도 하염없이 말도 없이 눈이 차갑게 내린다. 눈이 내리면 그 사연이야 구구절절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철 모르는 무정한 나는 그것을 헤아릴 ..

시(詩) 2021.11.09

■ 그대! 종(鐘)의 소리를 아는가?

■ 그대! 종(鐘)의 소리를 아는가? ★ 종(鐘)은 쇠를 담금질하여 만들었는데, 싸움터 칼 소리가 아니다. 물론, 식당 주방 쇳 소리도 아니다. 자연의 가장 근원적인 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중심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완벽하게 가능하다.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자각해야 하는가? 살리는 쪽도, 죽이는 쪽도 모두가 철이다. ★ 신(神)의 경지도 역시 동일하다. 신(神)은 텅 비어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머문다. 그리고, 신(神)의 본질적인 조화 세계를 창조한다. 먼저, 버리고, 비우고, 내려라! 먼저, 채우려고 하지 말고, 우선 비워라! 하나를 비우면, 도리어 하나가 채워진다. 먼저 양보하면, 하나가 채워진다. 그런 이치가 태초 이전부터 있었다. ★ 세상은 둥글고 둥글다. 무쇠의 ..

시(詩) 2021.11.07

■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 옛부터 그림과 한시(漢詩)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시(詩)가 모양이 없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모양이 있는 시(詩)라는 말도 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시인(詩人)과 화가(畫家)의 공통점이다. 화가는 풍경을 그리거나 정물화를 그린다. 이때 화가는 화면 속에 자신의 느낌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은 사진과 다르다. 화가는 색채나 풍경의 표정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림이 시(詩)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잘 보여준다. ★ 옛날 중국의 송(宋)나라에 휘종(徽宗)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畫家)였다. 휘종 황제는 자..

시(詩) 2021.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