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마도러스 2021. 4. 20. 02:20

 

 

■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옛부터 그림과 한시(漢詩)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가 모양이 없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모양이 있는 시()라는 말도 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시인(詩人)과 화가(畫家)의 공통점이다. 화가는 풍경을 그리거나 정물화를 그린다. 이때 화가는 화면 속에 자신의 느낌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은 사진과 다르다. 화가는 색채나 풍경의 표정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림이 시()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잘 보여준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徽宗)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畫家)였다.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다. 그 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다. 그 제목은 보통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제목이 걸렸다.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황제는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향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한 것이다. 꽃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지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려낼까?

 

화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꽃이나 말을 그리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겠는데, 말발굽에 묻은 꽃 향기만은 도저히 그려 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림에 손을 못 대고 쩔쩔 매고 있었다. 그 때였다. 한 젊은 화가가 그림을 제출하였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 사람의 그림 위로 쏠렸다. 말한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묻은 꽃 향기를 나비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로 꽃향기를 표현했다. 이런 것을 한시(漢詩)에서는 입상진의(立象盡意)” 라고 한다. 이 말은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비 떼라는 형상으로 말발굽에 묻은 향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을 시()에서는 이미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시인은 결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다시 휘종(徽宗) 황제의 그림 대회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이번에는 이런 제목이 주어졌다.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을 끙끙대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놓고, 그 숲속 나무 사이로 절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다. 황제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 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놓았을 뿐이다.

 

황제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이 화가에게 1등 상을 주겠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황제가 설명했다. "! 이 그림을 보아라. 내가 그리라고 한 것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화가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절의 지붕이나 탑을 그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을 그리는 대신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을 그렸다. “스님이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을 보니,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 이것이 내가 이 그림에 1등을 주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황제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화가는 절을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리는 방법을 알았다. 화가는 절을 직접 그리지 않으면서, 간접적으로 절을 그렸다.

 

 시인(詩人)은 말하지 않고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제, 한편의 그림과 같은 율곡 이이(李珥) 선생의 산중(山中)이라는 한시(漢詩)를 한번 감상해 보자.

 

채약홀미로(採藥忽彌路). 약초 캐다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봉추엽리(千峰秋葉裏).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승급수귀(山僧汲水歸). 산 스님이 물을 길어 돌아가더니

임말차연기(林末茶烟起).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일어난다.

 

 단풍이 물들고 나더니, 어느새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어떤 사람이 망태기를 들고, 낙엽 쌓인 산속에서 약초를 캔다.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약초가 낙엽을 들추자, 여기저기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때는 볼 수 없던 귀한 약초들도 많다. 정신없이 약초를 캐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산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길을 잃은 가을 산속이다. 낙엽은 어느새 무릎까지 쌓여 오고, 조금전 내가 올라온 길이 어딘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약초꾼은 그만 덜컹 겁이 났다. 어느새 해도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는데,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덮어놓고 내려가다가 낭떠러지가 나오면 어쩌나? 길을 잘못 들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어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저 건너편 숲 사이로 스님이 물동이를 이고 절로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스님의 모습은 금새 숲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리로 가면, 스님이 계신 암자가 나올까? 혹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바로 그 때였다 스님이 사라진 숲 끝에서 마치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아마도 차를 다리고 있나 보다. 스님에게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도 않고 경쾌하고 힘들지도 않다.

 

 이 시()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 낙엽 쌓인 산속에 망태기를 든 약초꾼 한 사람이 먼 곳을 보며 서 있다. 그리고, 연기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절(寺刹)만 그려놓아야 한다. 스님을 그려놓으면 안 된다. 앞서 본 휘종 황제의 그림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화가(畫家)는 전부를 그리지 않고서도 모두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詩人)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또한, 좋은 독자는 화가(畫家)와 시인(詩人)이 숨겨둔 보물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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