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 즐거운 편지 (황동규)

마도러스 2022. 11. 16. 03:24

 

■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시(詩)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1958년 '현대 문학'에 실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황동규 시인의 첫 시집 ‘어떤 개인 날’(1961)에 수록되어 있다. 황동규의 초기 작품인 이 시는 작가가 서울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 때 연상의 여성을 사모하는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연애시로 지금도 널리 애송된다. 사랑과 기다림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정(戀情)을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다림을 통해 극복해 나가겠다는 사랑의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인한 젊은 날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때 묻지 않은 시각과 감성이 풍부한 서정적인 어조로 형상화했고, 낭만적이고 우수적인 성격을 띤 서정시(抒情詩)이다. 작가 개인의 서정적 관심을 바탕으로 객관성보다는 주관적인 의표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 이미지즘적 표현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본질적인 사랑의 영속성을 믿기보다는 사랑이란 내리는 눈과 같아서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그치는 때가 있는 것이므로 항상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실존주의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라는 섬세한 파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한 조건을 모두 인정하면서 기다림이라는 변함없는 정서를 바탕으로 그대를 사랑한다고 노래했다. 대부분의 연가와 마찬가지로 로맨티시즘에 바탕을 두었고, 투명한 정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전통적 정서를 뛰어넘어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 기다림의 자세를 노래함으로써 그동안의 전통적인 연애시의 계보를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자신의 사랑을 사소하다고 말했고, 그 사랑이 언젠가는 그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화자가 자신의 사랑이 소중하고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사용한 반어적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소함'이나 '사랑의 그침'이라는 단어가 자연 순환의 불변의 진리와 연결되고 있는데,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기 위한 조심스런 접근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영원성을 스스로 간절하게 믿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속성이 우리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다. 하지만, 사치스러우며, 일시적인 것으로 언젠가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딪치게 될 사랑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랑의 감정을 포용할 수 있는 기다림의 감정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 기다림은 그가 품고 있는 사랑의 애절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좀 더 성숙하고 깊이 있는 정숙한 사랑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황동규(黃東奎) 시인 : 1938년 평안남도 숙천 출생이며, 소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아들이다. 1945년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에 해방되었다. 1946년 남한으로 월남하였고, 아버지 황순원이 서울 고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학교 사택에서 살았다. 1950년 한국전쟁을 발생하자 부산으로 피난하여 껌팔이를 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다. 1957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울대 영문과 및 영문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영국 에든버러(Edinburgh) 대학교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80년 ‘한국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1958년 ‘현대문학’에서 ‘즐거운 편지’ ‘시월’ 등으로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1961), 비가(悲歌)(1965),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몰운대행(沒雲臺行)(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2000) 등이 있으며, 사랑의 뿌리(1976), 겨울의 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4),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삶의 향기 몇점(2008) 등의 산문집이 있다. 1998년 ‘황동규 시(詩) 전집이 간행되었다. 자아와 현실 사이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으며,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고통스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시적 주제로 삼는다. ‘태평가’(1968), ‘삼남에 내리는 눈’(1975), ‘열하일기’(1972)는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감정을 통제하는 목소리가 반어적 울림으로 드러난다.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이 겨울 이미지들을 통해서 투영되고 있다. ‘풍장(風葬)’(1995) 연작시에서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감싸 안으며 허무주의를 초극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에 이르러 더욱 유연함을 얻게 되는데, 일상적이고 자유분방한 짜임새는 주체적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담고 있다. 가볍다는 것에서 자유로움을 얻고, 그 자유로움으로써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은 내적 갈등을 담은 비극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거쳐서 원숙함으로 다져진다. 존재의 발견은 크고 위대한 것들에게서가 아니라 한없이 작고 가벼운 것에서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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