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한국 봉황(鳳凰)과 중국 동북공정의 역사 전쟁

마도러스 2007. 9. 18. 19:19
 

■ 한국 봉황(鳳凰)과 중국 동북공정의 역사 전쟁

 

우리 배달(倍達) 민족은 봉황(鳳凰)과 용()을 모두 신성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봉황(鳳凰)을 더 신성시하였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민족은 지도자의 상징으로 봉황(鳳凰)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우리민족의 상징은 호랑이나 곰이 아니라, 봉황(鳳凰)인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의 신수(神獸) 봉황(鳳凰)이며, 한족(漢族)의 신수(神獸) ()이다. 봉황(鳳凰)은 불()과 대륙 문화를 상징하고, ()은 물()과 농경 문화를 상징한다.

 

배달(倍達) 민족인 한민족(韓民族)은 북만주와 요동에서 시작하여 대륙에서 말 타고 활을 쏘는 문화에서 출발하였고, 중국 한족(漢族)은 황하강 유역에서 물()을 중심으로 출발하였다. 한민족(韓民族) 한국의 대표적인 언어가 빨리 빨리인데, 이는 곧 말(를 상징)을 타고 다니는 대륙 기질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 한족(漢族)의 대표적인 언어가 만만디(천천히)’인데, 이는 물()을 중심으로 하는 농경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상징은 주로 불()을 상징하는 봉황(鳳凰)이며, 중국의 상징은 주로 물()을 상징하는 용()인 것이다.

 

봉황(鳳凰)은 용()보다 지위가 한 단계 높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하늘을 받들었기 때문에, 하늘과 우리를 이어주는 새, 봉황. 삼족오(세발 까마귀)를 숭상했다. 그 증거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태양 속에 있는 세발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나 몇십년 전까지 쉽게 볼 수 있었던 마을 입구 마다의 영역표시인 장승 솟대 등이 있다. 솟대의 새 모양은 봉황. 삼족오(세발 까마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봉황(鳳凰)은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은 하늘을 잘 날지 못한다. ()은 승천의 꿈을 꾸지만, 봉황(鳳凰)은 실제로 하늘을 날며 세상을 본다. 백제(百濟) 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의 꼭대기의 새가 봉황 또는 천계(天鷄) 라는 사실이 우리나라가 봉황을 신성시 여겼음을 입증해 준다.

 

1999년 청와대에서 나라의 도장으로 제작한 국새(國璽)의 손잡이에 조형된 봉황(鳳凰)은 백제 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에 있는 봉황을 모델로 제작했었다. 조선(朝鮮)시대 경복궁(景福宮) 천정에도 봉황 무늬가 있고, 현재 청와대 건축물에도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서 봉황 무늬가 있다. 봉황은 성인(聖人)의 탄생에 맞추어 세상에 나타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 많이 남아있는 고구려 벽화에 사신도에도 봉황인 주작(朱雀)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금관(金冠)에도 봉황이 들어가 있다. 통일신라 왕실도 용() 보다는 주작(朱雀)을 더 많이 선호했다.

 

서양에서도 봉황은 매우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불사조(phoenix)의 의미로 로마 제국 황제의 휘장이 봉황이었다. 중국에서도 천자(天子)의 궁문(宮門)에 봉황을 장식하여 봉궐(鳳闕) ·봉문(鳳門)이라 하였고, 천자의 수레에 장식하여 봉거(鳳車) ·봉련(鳳輦) ·봉여(鳳輿)라고 하였다. 천자의 도읍인 장안(長安)을 봉성(鳳城), 궁중의 연못을 봉지(鳳池)라 하여 천자를 미화하는 상서로운 상징으로 여겼으며, 나아가서는 모든 경사스러운 일에 봉자(鳳字)를 썼다. 원래 용()은 가장 높은 신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좌하는 자리를 뜻한다.

 

봉황(鳳凰)과 용()은 둘 다 우리 민족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에서 상서롭게 여기던 동물의 상징이다. 그런데, ()에는 암수 구별이 없지만, 봉황의 경우는 암수 구별이 있다. ()은 수놈이고, ()은 암놈이다. 봉황이라고 하면, 수놈과 암놈을 모두 싸잡아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봉황의 새끼를 봉추(鳳雛)라고 한다. 봉황(鳳凰)은 주로 오동나무에 서식하며, 특히 대나무 열매를 좋아하며, 깨끗한 샘물을 마시고 산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민간인들은 봉황’(鳳凰) 동방 군자의 나라, 배달(倍達)에서 나왔으며, 사해(四海) 밖까지 난다 고 하여 신성시하였다. 그리고,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정된다고 믿었다.

 

한편, 중국(中國) 한족(漢族)은 동이족(東夷族)의 상징인 봉황(鳳凰)을 깎아내리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족(漢族) () 황제 상징이라 칭하였고, 동이족(東夷族) 봉황(鳳凰) 제후 상징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봉황(鳳凰)은 지상과 천상을 잇는 신조(神鳥)로서 배달민족의 숭배 대상이었기에 중국의 한족(漢族)은 한편으로 경배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 한족(漢族)의 용() 보다 아랫 단계로 취급하였다. 중국 사람들이 봉황을 용() 보다 아랫 단계로 취급했던 것은 그들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의 용() 문화도 알고 보면, 우리 민족의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에서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BC 2,692-2,593)에게로 전파된 것에 불과한 것을 알면, 그것은 우스운 일에 불과하다. 중국(中國)에서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부른다. 동쪽 오랑캐라는 뜻인데, 우리 한민족(韓民族)을 깎아내리는 행위인데, 이것 또한 그들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한민족(韓民族) 하늘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체로 봉황(鳳凰)을 용() 보다 더 중요시 했다. 봉황(鳳凰)에서의 봉() '새 중의 새'를 뜻하며, () '배달국의 임금() '를 뜻한다. 중국에 황제가 나타난 것은 '진시황(秦始皇)' 때부터이다. '진시황' '시황(始皇)'은 처음으로 황제가 나왔다는 얘기이다. 진시황 이전에는 배달민족의 나라, 즉 배달국, 고조선의 임금이 황제였다. 그래서, ()자는 '배달나라의 왕'을 뜻하는 '白王' 을 쓴 것이다. 중국의 옛날 역사책에는 배달민족은 백민(白民)으로 나온다. 밝달(밝은 땅), 박달, 백달, 배달의 변천을 통해 배달(倍達)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봉황(鳳凰)' '새 중의 새, 배달나라 임금()의 새'를 뜻하는 일이고, 지금도 대한민국(大韓民國) 청와대의 상징문양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봉황(鳳凰)은 왜 태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는가? ‘예문류취’(藝文類聚)에는 닭은 양()을 상징하는 남방의 동물이다. 화양(火陽)은 만물을 동하게 하여 불꽃이 솟는다. 그러므로, 해가 뜨면 닭이 우니 자연히 날이 밝아 온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현중기’(玄中記)에도 동남쪽에 도도산(桃都山)이 있고, 위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도도(桃都)라고 부르며, 나뭇가지가 삼천리에 걸쳐 뻗어 있다. 위에는 하늘을 나는 천계(天鷄)가 있어, 해가 처음 떠서 이 나무를 비추면 그 새가 운다. 그 새가 울면, 천하에 모든 닭들이 따라서 운다.” 라고 하였다.

 

고구려 벽화에 보면, 삼족오(三足烏, 일명 태양새)가 나오는데, 태양 속에 들어있는 세발가진 까마귀이다. 세발 까마귀는 원래 동이족이 숭상하던 신성한 새였다. 고대의 배달민족은 세 발 달린 까마귀가 태양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태양신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단군(檀君)의 지팡이 꼭대기에 까마귀를 조각함으로써 단군이 태양신의 사자임을 나타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나타나는 삼족오(三足烏), 그리고 정월 대보름의 까마귀제 등에서 신조(神鳥)로서의 까마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동네 입구의 솟대가 남아 있는데, 자세히 보면 세 마리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는 예언을 하는 새였다. 삼국시대 책이나 이야기들에서 보면, 까마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삼족오(三足烏, 일명 태양새)는 유일하게 남은 태양 삼신(三神)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태양 삼신(三神)’에 대해서 역사학자 박은식(朴殷植) 고조선(古朝鮮)의 국교는 삼신교(三神敎) 즉 신교(神敎)였다.”라고 하면서, 삼신(三神)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 고조선 사람들과 그 후예들에게 삼신(三神)은 생명을 주고 가호(家護)하는 신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삼신(三神)에게 제사하는 의식과 관습이 있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삼족오는 태양 삼신(三神)’이며, 곧 환국(桓國)의 환인(桓仁),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 고조선(古朝鮮)의 단군(檀君)을 지칭한다.

 

원래, 중국의 () 문화 신시(神市) 배달국(倍達)의 홍산 문화에서 수입해 간 것이다. 배달국(倍達國)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 14-18대 환웅)로 나누는데, 신시(神市) 배달은 제1대 거발한 천황(즉위 BC 3,897)으로부터 시작되고, 청구(靑丘) 배달은 제14대 치우 천황(즉위 BC 2,707)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신시(神市) 배달국의 홍산(紅山) 문화 유적지인 내몽골 삼성 타랍 지구에서 1,971 옥룡(玉龍)이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발견된 옥룡(玉龍) 5,000년 전의 유물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용() 문화가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에서 시발했고,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왜냐면, 중국의 () 문화는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인 황제 헌원(BC 2,692-2,593)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황제 헌원(軒轅)은 청구(靑邱) 배달국(倍達國) 치우(蚩尤) 천황으로부터 변방의 자치정부의 황제로 임명받았는데, 배달국의 치우(蚩尤) 천황으로부터 독립하고자 군사를 일으켜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10년간 73회의 전쟁이 벌어지는데, 결국 배달국 치우 천황이 승리했고, 고대 동방에서 벌어진 최대 전쟁이었다. () 항우와 한() 유방 5년간 72회 전쟁을 치룬 것보다 규모가 컸던 전쟁이었다. 중국에서의 용() 문화는 황제 헌원 때부터 숭상되기 시작하였고, 황제 헌원 때부터 ()의 문화가 중국의 역사에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중국의 청동기 문화의 출발도 역시 동방 배달국(倍達)의 청동기 문화가 전파된 것이다. 청구 배달(BC 2,707-2,333) 시대를 창도한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치우 천황(蚩尤, BC 2,707년 즉위)은 동두철액(銅頭鐵額, 청동 머리에 무쇠 이마)의 투구를 하여 만주 일대를 석권하였다. 청구 배달국(倍達)의 문화를 일명 용산(龍山) 문화라고 하는데, 청구 배달국의 용산(龍山) 문화는 나중에 중국의 문화가 출발하는 모태가 된다. 중국의 하(,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나라의 문명도 알고 보면, 동방의 배달국(BC 3,897-2,333)과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에서 전파된 것이다.

 

중국의 한족(漢族)은 자기네들이 ()의 계승자라고 하며,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한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의 후손이라고 부른다. 중국에는 용()을 새긴 벽, 용 조각의 지붕, 금실로 수놓은 용, 용 모양의 배, 용 도안, 용을 그려 넣은 티셔츠, 용을 상호로 하는 각종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용춤(龍舞)은 한족(漢族) 및 중국 소수 민족들의 민간에서 행해지던 춤이며, 용춤(龍舞)을 통하여 용()이 중국인 한족의 초강력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은 뱀 토템사상을 숭배했던 한족(漢族)이 기타 동물을 숭상하는 족속들을 전쟁을 통해 합병하여 대규모의 국가로 탄생하면서 신성시된 동물의 상징이다. 사실, 원래 중국 한족(漢族)은 뱀을 신성시하였다. 뱀 토테미즘(totemism) 사상은 고대 중국에서 가장 일찍 광범위하게 숭배했던 사상이었다. 뱀 토템 사상이 황제 헌원(軒轅)의 시대에 이르러 청구(靑邱) 배달국(倍達國)의 용() 문화를 수입하여 일반화 되었다. 그로부터 중국 한족(漢族)은 용()을 신성시 하였던 것이다. ()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부르는 신물(神物)이요, 황하(黃河) 속에서 꿈틀대던 수신(水神)으로 중국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중국 황하강(黃河江)의 사진을 보면, 구불구불 굽이치는 황룡 한 마리를 보는 듯하다. 황하(黃河)는 중국 한족(漢族)에게는 어머니의 강이요 민족의 젖줄이었으며, 그런 영향으로 중국인들은 더욱 용()을 신성시하였다. 동이족을 상징하는 영물은 봉황(鳳凰)이었고, 황하족을 상징하는 영물은 용()이었다.

 

중국의 신화와 전설 가운데, 중화 민족 창조와 관련하여 가장 보편적인 신화는 여신 여와(女媧)과 남신 복희(伏羲)의 이야기이다. 혼자 지내기에 심심했던 여신 여와(女媧)가 황하의 황토 진흙으로 인형처럼 사람을 빚어내었는데, 땅에 내려놓자마자 살아 움직이며 그녀 주위에서 즐겁게 뛰어 놀았다. 여와(女媧)는 너무 기뻐 매일 쉬지 않고 사람을 빚었는데, 하루는 너무 지쳐 묘책을 궁리하다가 넝쿨을 잘라 진흙탕에 담가 두었다가 휘두르니, 넝쿨에서 떨어진 진흙 방울방울이 모두 사람으로 변하여 천지간에 사람이 가득 차게 되었다. 여신 여와(女媧)는 나중에 사람들을 위해 나쁜 괴물도 물리쳐 주고,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후손을 생산하도록 돕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한 여신이었다. 얼마 후, 여신 여와(女媧)은 남신 복희(伏羲)를 만난다. 복희(伏羲)는 인류에게 사냥을 가르치고 팔괘와 문자와 음악 등 중국 문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고, 중국에서 국가적으로 숭배하는 중요한 신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복희 역시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로 전해내려 온 여와(女媧)와 복희(伏羲)의 그림은 서로 뱀 꼬리를 휘감고 있는 남녀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중국 한족(漢族)이 오래 전부터 뱀 토템 사상을 숭상하여 왔음을 알 수 있으며, 뱀 꼬리를 휘감고 서로 꼬여 있는 모습은 남녀의 결혼을 상징한다. 참고로, 태호(太昊) 복희(伏羲)는 인류 최초로 혼인 제도를 제정하여 인륜의 푯대를 세우신 분이며, 문자를 제정하였고, () 철학을 창시하였으며, 배달국(BC 3,897-2,333) 5대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서 인류 문명을 처음 개창하신 분이다. 중국의 신화나 설화 속의 신()과 영웅은 대개 이처럼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우주가 혼돈 덩어리였을 때 자신의 몸을 바쳐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고 천지를 창조했던 반고(盤古)가 그렇다. 중국 신화의 보물 창고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사람과 동물을 합성한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특히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한 신()들이다.

 

서구인들은 뱀과 용()을 주로 악마나 사악한 존재로 인식하여 왔다. 뱀은 공격적이고 위험한 동물로 상징화시켰다. 이브(Eve)를 유혹하여 어쨌든 선악과(善惡果) 사과를 따먹게 했다는 식으로,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시켰다. 헤라클레스(Herakles)와 같은 고전 영웅들의 신화는 용을 물리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구하는 왕자도 또한 먼저 용과 싸워 이겨야 한다. 중국의 뱀과 용()이 수신(水神)으로서 존귀함의 상징이었음에 반해, 서구의 뱀과 용()은 입에서 불을 뿜는 악마의 상징이었다.

 

 봉황(鳳凰)과 용()과 관련해서 복룡봉추(伏龍鳳雛)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이다. 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를 말하며, 제갈공명(諸葛公明, 181-234)과 같은 인물을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제갈공명(諸葛公明)이 배달민족인 한민족(韓民族)이었다는 사실이다. 제갈공명(諸葛公明)은 원래 산둥반도 랑야국() 양도(陽都)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숙부인 제갈현(諸葛玄)의 집에서 자라면서 숙부가 원술에 의해 예장(豫章) 태수로 임명되자, 숙부를 따라 남쪽으로 왔었다. 제갈공명은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역사적 인물이고, 도교(道敎)에서는 관우와 함께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제갈공명의 제갈(諸葛)은 본디 갈()씨가 본성(本性)이고, 지금의 산둥 반도인 랑야국()의 제현(諸縣)이란 곳에서 살다가 나중에 양도(陽都)로 옮겨 살았으며, 제현(諸縣)에서 온 갈()씨라는 뜻으로 제갈(諸葛)씨가 되었다. 따라서, 제갈공명은 산둥 반도에 살았던 한민족(韓民族)이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역사에서 산둥반도는 동이족(東夷族)이 살던 곳이다. 동이족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활을 잘 다루어야 했다.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과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기마술과 궁술의 달인이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동이족(東夷族)은 동방의 큰 활을 잘 쏘는 어진 민족이다.” 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궁(洋弓)에서 석권하는 이유가 그래서인지 모른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 문화 뿌리가 청구(靑邱) 배달국(倍達)의 동이족(東夷族)이었으며, 중국의 고대국가였던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의 문화의 뿌리가 사실 알고 보면, 동방 배달민족의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에서 기원했음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인 의미에서 중국인들은 배달민족 국가인 우리 한국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파렴치한 역사적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한국의 봉황(鳳凰)과 중국의 용()의 싸움이 바로 동북아 역사 전쟁의 실체라 할 수 있는데,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역사 왜곡 사업을 통하여 자신들의 스승을 배반하는 배사율(背師律)을 범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과거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들의 스승이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지금 그들은 역사적 반역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계속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적 만행을 지속화 한다면, 배사율(背師律)의 냉엄한 역사적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무릇, 동이족(東夷族)은 중국 문화의 뿌리요, 문명을 전해준 스승이었다. 인류 문명의 뿌리와 중국 한족(漢族) 문화의 뿌리가 모두 동방 배달국과 고조선에서 전해진 고대 신교(神敎)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와 하(). (). () 등의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전부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임금. ()임금을 말한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와 하(). (). ()의 건국 시조는 100% 배달 혈통인 것이다. (). (). () 때까지는 중국에 한족(漢族)의 존재가 없었고, (). (). ()의 시대가 지나고, 춘추 전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남쪽 변방의 남만(南蠻)족이 북상하면서 한족(漢族)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진()나라의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의 남부 지방을 통일하고, () 유방(劉邦)이 드디어 중국을 완전 통일하면서 중국의 한족(漢族)이 형성되었다. 중국의 역사는 춘추 전국시대부터 시작되고, 한족(漢族)의 역사는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다. 춘추 전국시대 이전의 하(). (). ()의 시대는 배달민족이 나라를 건국하였으므로 배달 민족인 한국의 역사인 것이다. ()나라 무제 때의 사관이었던 사마천(司馬遷)은 황제 헌원 이전의 유명한 인물이 모두 동이족(東夷族)인 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지은 사기(史記)라는 역사 책에서는 황제 헌원(黃帝軒轅)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회피하였다. 동이족(東夷族)인 강태공(姜太公)은 나중에 제()나라의 왕이 된 후에도 배달국(倍達) 신교(神敎) 문화를 중국의 한족(漢族)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는 배달국(倍達)의 신교(神敎)와 삼신관(三神觀)을 중국 땅에 뿌리내리게 했다. 중국 제()나라에서는 팔신제(八神祭) 풍습이 있었는데, 팔신제(八神祭)는 팔신(八神)에게 제사지내는 제천 의식이다. 여기서, 팔신(八神)은 삼신(三神.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 치우(蚩尤) 천황(天皇), 천지일월(天地日月)을 말한다. 청구(靑丘) 배달(倍達) 치우 천황(蚩尤, BC 2,707년 즉위)은 배달국(倍達)의 도읍지를 청구(靑丘)로 옮기고, 동방 최초로 청동기 국가 문명을 내놓았다. 그 후, 900년간 중국인들은 배달국(倍達)의 신교(神敎) 문화와 배달국(倍達國) 치우(蚩尤) 천황을 하느님처럼 받들어 모셨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 2002 02월부터 추진했고, 향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의 동북쪽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동북지역, 특히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것에 있다. 중국은 이러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하여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고, 과거의 역사적 은혜를 저버리고 있다. 중국은 과거에 한반도를 침략하고자 시도했다가 번번이 패망했던 맞이한 뼈아픈 역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중국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면, 냉엄한 역사적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 양제(煬帝)가 고구려 정벌을 단행했다가 살수에서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에 의해 대패하여 패망의 길을 걸었고, () 태종(太宗)도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안시성에서 고구려 양만춘에게 대패하여 막대한 국력 손실을 입었다. ()나라는 임진왜란 때에 조선에 원군으로 왔다가 조선에 대한 극심한 수탈과 착취를 하였고, 7년 간의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었으며, 여진족에게 왕조를 빼앗기는 운명을 맞았다. ()나라는 동학혁명이 발발하자 일본보다 먼저 조선을 장악할 욕심에 조선 파병을 결정하지만, .일 전쟁에서 패배하여 청나라 왕조가 붕괴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또한, 중공(中共)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개입하였으나, 막대한 인명손실의 피해를 입었다. 지난날, 중국(中國)의 역사는 한반도를 침략하거나 한반도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했을 때, 중국(中國) 왕조의 멸망 또는 붕괴를 초래했던 수많은 사례를 간직하고 있음을 중국은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글 작성: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

    

 

■ 우리 배달(倍達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재위BC 2,357-2,258),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시대로 나누어진다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한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요서 지방 홍산(紅山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유적지를 조사한 이래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그 후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예를들면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에게 문명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한반도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 현재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홍산(紅山문화를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이것을 배달(倍達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말엽 및 고조선(古朝鮮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중국의 건국(建國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문화'이다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단군(檀君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실제는 호족(.호랑이)과 웅족(.)을 배달(倍達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