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만 4천년 전 흑피옥, 세계사 다시 쓸 것!

마도러스 2008. 1. 28. 02:13

 

만 4천년 전 흑피옥, 세계사 다시 쓸 것!   

 

 

[서울=뉴시스, (사진 우실하 교수 제공) , 입력: 2008. 01. 17]


“흑피옥의 연대 측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고고학은 물론 세계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흑피옥 최초 발견자인 김희용씨의 의뢰로 정건재 교수(전남과학대)가 2008.01.09일 제시한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 옥)’의 연대가 1만4000여년 전이라는 추정 결론이 나왔다.


김씨와 함께 흑피옥을 연구해 온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는 2008.01.16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흑피옥을 서울대 기초과학 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AMS) 연구센터에 제공, 흑피옥에 사용된 염료의 성분 분석과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앞서 정 교수가 흑피옥 1점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4300년 전후 60년으로 나오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일었다. 이같은 의심과 의혹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서울대 측에 검사를 맡긴 것이다. 소장 중인 흑피옥 20여점 가운데 9점을 AMS연구센터에 전달한 우 교수는 요서(遼西) 지역 홍산을 정점으로 하는 요하 문명 (遼河文明)배달국(倍達國, BCE 3,897-2,333) 홍산 문화 (紅山 文化)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것과 모양이 똑같은 흑피옥 7점을 포함한 총 9점”이라며 “염료의 성분을 우선 분석한 다음 연대를 측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AMS 연구센터장인 윤민영 교수가 참여하는 측정 결과는 7~8주 뒤 나올 예정이다.


우 교수는 “홍산 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번 흑피옥이 1만4300년 전후의 연대로 드러날 경우 ‘내몽골 흑피옥 문명’ 과 요서(遼西) 지역 홍산 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 문명(遼河 文明)이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똑같은 모양의 흑피옥이 여러 점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1만4000~6500년 사이로 나타난다면 흑피옥 문화가 지속돼왔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라면서 “ 모양이 똑같은 옥기가 나오는 흑피옥 시대(1만4300여년 전)와 홍산 문화(6500~5000년 전) 사이의 공백기 약 8000년을 이어줄 수 있는 물증”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산 문화 옥기와 똑같은 흑피옥의 연대가 홍산 문화와 같은 시대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문화가 홍산 문화로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배달국(倍達國, BCE 3,897-2,333) 요하 문명은 황하(黃河) 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고, 요하 문명으로 명명됐으며, 요하 문명 지역에서는 중원지역에 없는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등 만주일대-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요하 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우리 민족인 배달(倍達) 민족 사람들이다. 즉, 흑피옥 문화가 요하문명 지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계승됐다면, ‘흑피옥문화 → 요하문명· 홍산문화 → 한반도’ 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연대가 정밀하게 확인되면, 세계 최초 · 최고 문명의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동시에 요서지역 홍산 문화 선조들과의 직접적인 계승관계, 요하문명을 주도한 우리 민족 선조와의 직접적인 연결 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구석기 시대는 문명에 도달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기존 학설도 뒤집힌다. 최초의 인류 문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 교수는 “김씨가 가지고 있는 흑피옥만 수백여점이다. 이번 서울대 조사결과를 토대로 더욱 광범위하게 연대를 측정하겠다고 한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흑피옥 관련 논문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 벽돌식 무덤 등 고대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며 “인류가 직립 보행하기 전 반직립 상태의 고대 문명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2008.03월께 학술발표, 2008.05월께 현장 발굴 등이 이뤄진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과거 역사와 미래 문명의 비젼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堯.재위BC 2357-2258), (舜.재위BC 2255-2208), (夏,BC 2,205-1,766), (殷,BC 1,600-1,046), (周,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신시(神市)개천경(開天經)'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문화'라고 한다.

  

우리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漢) 민족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堯)임금. (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