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일제, 만주땅 백두산(白頭山) 위치 조작했다!

마도러스 2007. 5. 24. 20:27


 일제, 만주땅 백두산(白頭山) 위치 조작했다!

 
 
잃어버린 북방 영토 한반도 3배 크기…

 

 

[쿠키 사회] 중국의 동북 공정으로 우리나라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백두산(白頭山)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닌 핑딩산(平頂山·1429m)이며, 우리 선조가 잃어버린 북방 영토의 넓이가 69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지적공사 조병현 지적 재조사 팀장은 22일 행정자치부 주최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지적 혁신 엑스포에서 이같은 내용의 ‘우리나라 북방 영토의 경계 획정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고문서의 역사적 기록을 인공 위성 영상으로 분석해 북방 영토 경계를 획정하고 실제 넓이의 산출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북방 영토란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이며 항일 독립 운동의 본거지였으나 과거 청나라와 일제에 의해 빼앗긴 연해주와 간도 지역으로서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보고서는 북방 영토 경계를 랴오허강(요하)∼쑹화강∼핑딩산∼아무르강∼동해로 보았다. 동쪽 끝은 북위 52도9분13초·동경 141도32분41초, 서쪽 끝은 북위 38도54분20초·동경 121도5분9초, 남쪽 끝은 북위 33도9분50초·동경 126도16분14초, 북쪽 끝은 북위 53도20분56초·동경 119도50분59초다. 북방 영토는 요하와 아무르강 이남지역으로 전체 면적은 간도지역(39만483㎢)과 연해주 지역(30만6346㎢)을 포함해 69만6829㎢로 한반도의 3배, 남한의 7배 크기다. 전체 둘레는 6981㎞로 현재의 한반도와 비슷하다.


지금까지 북방 영토 위치는 북위 41도55분에서 43도50분, 동경 128도8분에서 131도5분으로 현 백두산을 기점으로 서북으로는 노령산맥과 노야령산맥을 거쳐 훈춘을 포함하는 4만1000㎢로 알려졌다.


진짜 백두산은 만주 핑딩산이다.


보고서는 현재의 백두산은 평안도 묘향산으로 추정되며, 실제 백두산은 중국 하얼빈 동북쪽 만주 평야에 있는 핑딩산 일대라고 주장했다. 이 근거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서문과 만주 원류고 지리지, 성종 실록 등의 백두산 관련 기록을 들었다.

 

대동여지도 서문에서 백두산은 ‘큰 거친들 가운데 산이 있고 정상에 위치한 큰 못의 둘레가 80리, 높이는 200리, 가로 길이가 1000리로 앞쪽이 무너졌다’고 기록돼 있다. 또 청나라 한림원에서 발간한 만주 원류고 지리지 장백산편에는 ‘거친 들판 가운데 있는 산’이라는 설명이 있고 성종 실록에는 ‘우리나라는 요수의 동쪽 장백산의 남쪽에 있어서…지역의 넒이가 만리나 된다’고 서술됐다.


인공 위성 영상을 통해 분석한 결과, 핑딩산은 만주벌판 한 가운데 위치해 있고, 산 앞쪽 부분에 무너진 흔적이 있는데다, 정상에는 둘레 80리 정도의 커다란 못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백두산은 들녁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 지역을 찾을 수 없다. 천지 둘레가 20리에도 못 미쳐 고서의 백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백두산 위치, 왜 바뀌었나?


보고서는 일제 식민지시대 일제가 반도 사관을 위해 우리 고대사를 조작했고, ‘대륙의 조선’ ‘한반도’ 로 옮겨 놨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고문서와 고지도 등 50여종 20만권이 서울 남산에서 소각됐고 대동여지도 역시 1930년 조선 총독부의 검열 도장을 찍어 공개된 점으로 미뤄볼 때 각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병현 팀장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정한다’고 규정, 북방 영토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헌법 제 3조를 개정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1919년 상해 임시 정부 임시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국(대한제국)의 판도’라고 규정했고 1944년 임시 헌장 2조에는 ‘대한민국의 강토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라고 정했다. 그러나 1948년 제헌 의회에서 국제적 마찰을 우려해 부결됐다. (쿠키뉴스 황일송 기자, 입력: 2007.05.22)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과거 역사와 미래 문명의 비젼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堯.재위BC 2357-2258), (舜.재위BC 2255-2208), (夏,BC 2,205-1,766), (殷,BC 1,600-1,046), (周,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신시(神市)개천경(開天經)'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문화'라고 한다.

  

우리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漢) 민족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堯)임금. (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