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일본 규슈의 백제(百濟) 무령왕 기념비 건립

마도러스 2006. 7. 17. 01:23

■ 일본 규슈의 백제(百濟) 무령왕 기념비 건립  

           

2001년 겨울,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나 자신 (일본)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續)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대해 새삼 한국과의 깊은 인연(緣)을 느낀다” 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대서 특필했지만 일본은 아사히(朝日) 신문을 제외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간무 천황의 어머니 다카노 니카사(高野新笠)는 고닌(光仁·재위 770∼781) 천황의 부인인데, 간무 천황의 명으로 만든 ‘속일본기’의 다카노 황태후 장례 기사의 말미에 “다카노 황태후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純陀) 태자의 후손이다.” 라는 기록이 나온다.

 

순타 태자는 505년에 사아군(斯我君)이라는 이름으로 백제에서 왜국에 파견되어 체류하다가 513년에 죽었는데, 이때 낳은 아들 법사군(法師君)이 야마토노키미(倭君)의 선조이다. 야마토씨가 770년 다카노(高野)씨로 성을 바꾸었기 때문에, 간무 천황의 생모가 다카노씨인 것이다. 505년 태어난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 270여년 후인 770여년 경에도 일본 황실을 좌지우지한 것이다.

 

‘일본서기’ 유랴쿠(雄略) 천황 5년조에는 백제 개로왕이 동생 곤지(昆支)에게 일본으로 가라고 요구하자, 동생 곤지가 개로왕의 왕비를 함께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대목이 나온다. 개로왕은 임신한 부인이 도중에 출산하면 모자를 함께 돌려 보내라는 조건으로 요구를 수락하는데, 왜국으로 가는 도중 백제 개로왕의 부인은 축자(筑紫)의 각라도(各羅島)에서 아이를 낳았다. 이에, 곤지는 모자를 백제에 되돌려 보낸다. ‘일본서기’는 “이 때 낳은 아이가 곧 백제 무령왕이다. 백제인은 이 섬을 주도(主島)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일본서기’ 긴메이(欽明) 천황 13년(552)조를 보면, 백제의 성명왕(聖明王·성왕)이 불상과 경론을 보내는 대목이 있는데, 성왕은 바로 무령왕의 아들을 가리킨다. 백제 무령왕이 탄생했다는 일본 각라도는 오늘날의 사가(佐賀)현 가카라(加唐)섬으로서, 그곳에 '무령왕 기념비'가 세워지는데, 양국 시민단체가 절반씩 건립비를 부담한다는 소식이다. 한국 공주시 무령왕릉과 일본 규슈(九州)의 가카라를 ‘무령왕 벨트’로 묶는 것도 생각할 만하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