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축구 응원단 상징 '붉은 악마'는 치우 천황(天皇)!!

마도러스 2006. 7. 17. 02:09

 

■ 축구 응원단 상징 '붉은 악마'는 치우 천황(天皇)!!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치우(蚩尤) 천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동방을 통일하여 신교(神敎) 문화권으로 통치한 최초의 천자(天子)이다. 치우 천황(蚩尤天皇) 배달국(倍達國) 제14대 환웅(桓雄)으로 B.C2,707년에 즉위하신 분이다.무렵,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인 황제(黃帝) 헌원(軒轅, B.C 2,692~2,593)은 동방 배달국의 천자(天子)로부터 독립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치우(蚩尤) 천황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배달국의 일개 제후(諸侯)였던 중국의 황제 헌원(軒轅)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탁록(?鹿)의 대결전이 전개되었는데, 치우천황(蚩尤天皇)은 황제 헌원(軒轅)을 제압하고 동방 세계를 대통일(大統一)하였다.

 

『환단고기』의 삼성기(三聖記)에서는 치우천황(蚩尤天皇)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또 수대를 내려와 치우천황(蚩尤天皇)이 계셨는데, 이 분은 용맹이 매우 뛰어나고,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썼으며 능히 큰 안개를 일으켰다. 특히 구치(驅馳)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어 내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제작함으로써 천하가 모두 그를 외경(畏敬)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蚩尤天皇)이라고 불렀는데 치우(蚩尤)란 말은 속언(俗言)으로 뇌우(雷雨)를 일으켜 산하를 뒤바꾼다는 뜻이다. 치우 천황(蚩尤天皇)께서 염제(炎帝) 신농(神農) 국가의 마지막 후예인 8대 임금 유망(楡罔)이 쇠퇴하는 것을 보고, 웅도(雄圖)를 품고 여러번 서쪽으로 진출하여 용감무쌍한 군대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색도에 군사를 진군시켜 회수와 태산(泰山) 사이를 점령하였다. 그 후에, 유망(楡罔)의 뒤를 이은 중국의 황제 헌원(軒轅)이 왕위에 오를 무렵에, 즉시 탁록(?鹿)의 광야로 진격하여 황제 헌원(軒轅)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라고 적혀 있다.

 

 『신시본기』를 보면 지금의 북경(北京) 서북에 위치한 탁록(?鹿)에서의 대결전이 마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유망(楡罔)이 치우천황(蚩尤天皇)에게 대패하여 공상(하남성 진류)으로 도망가자,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이를 일거에 제거해 버렸다. 이 후에, 유망(楡罔)의 뒤를 이은 중국의 황제(黃帝) 헌원(軒轅)이 대군(大軍)을 일으켜 치우(蚩尤) 천황에게 대항해 왔다. 이로써 배달국의 치우(蚩尤) 천황과 중국의 황제(黃帝) 헌원(軒轅)과의 대결전(大決戰)이 벌어지게 되었다.

 

고대 동북아의 국제질서 개편을 가늠질한 이 대전쟁은 당시 10년간 73회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고, 장군들은 피로한 기색이 없었으며, 군사들은 불퇴의 정신으로 전쟁에 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치우(蚩尤) 천황은 그 법력이 고강하여 큰 안개를 잘 지었다고 한다. 탁록(?鹿)의 싸움에서는 황제 헌원(軒轅)이 치우천황(蚩尤天皇)의 안개술법에 대항하기 위해 방향을 가리키는 지남차(指南車)를 만들어 싸웠다. 이때 치우천황(蚩尤天皇)의 장수가 급공을 하려다 오히려 진중(陣中)이 몰살당하였고, 이에 노기충천한 치우천황(蚩尤天皇)은 ‘비석(飛石)박격기(迫擊機)'를 최초로 제작하여 황제헌원의 군사들이 항전을 못하게 만들었다.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세속에서 부르는 별칭이고, 본래는 자오지(慈烏支) 환웅이다. 사기, 관자, 서전 등의 중국 사서(史書)에서는 치우(蚩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때의 사건을 중국『사기(史記)』에서는 ‘금살치우(禽殺蚩尤)’ 즉 헌원(軒轅)이 치우천황(蚩尤天皇)을 사로잡아 살해했다. 그리고, ‘치우작란(蚩尤作亂)’, 즉 치우가 헌원에게 복종하지 않고 난(亂)을 일으켰다고 역사의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왜곡 날조하였다. 배달국(倍達國) 시대 최대의 역사적 사건을 왜곡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제후(諸侯)의 위치에 있었던 헌원(軒轅)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천자인 치우(蚩尤)천황에게 도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황제작란(黃帝作亂)’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사기(史記), 헌원기(軒轅記) 등의 기록에서는 치우천황(蚩尤天皇)은 머리에 최초로 철두갑(鐵頭鉀)을 만들어 써서 동두철액(銅頭鐵額, 구리 머리에 무쇠 이마)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동두철액(銅頭鐵額)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4700년전의 배달국(倍達國) 시대에 이미 청동기 시대에 들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과 거리에 온통 붉은 물결로 장식되는 도깨비 형상의 “붉은 악마”가 고대사(古代史)에 등장하는 배달국(倍達國)의 치우(蚩尤) 천황(天皇)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우천황은 중국 민족의 시조(始祖)인 황제 헌원(黃帝 軒轅)을 제압하고 동방 세계를 대통일(大統一)한 배달국(倍達國)의 14대 환웅(桓雄)이라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축구 응원팀이 1999년부터 선보인 붉은 악마의 이미지는 중국인들이 동이족(東夷族)인 치우(蚩尤)천황을 비하(卑下)하여 도깨비의 모습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그런데, 치우(蚩尤)천황은 고대(古代) 동방 세계를 대통일(大統一)한 배달국의 제14대 환웅(桓雄)을 말한다. 그리고, 치우(蚩尤)천황은 백전백승(百戰百勝)의 용장(勇壯)이었으며, 신의(信義)와 인의(仁義)로써 백성을 다스렸고, 신력(神力)과 정의(正義)를 만고(萬古)에 떨쳤던 자랑스런 배달국(倍達國)의 왕이었다. 오랜 역사 속에 묻혀있던 치우(蚩尤)천황이 드디어 2002년에 한국축구의 수호신으로 등장한 것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