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제주 고(高)씨의 기원과 고구려(高句麗) 왕족

마도러스 2006. 7. 27. 14:11

■ 제주 고(高)씨의 기원과 고구려(高句麗) 왕족

 

한국의 모든 고(高)씨의 뿌리는 “제주 고(高)씨”이며, “제주 고(高)씨”에서 출발하여 20여개 분파로 나눠졌다. 제주 고(高)씨의 기원은 고구려(高句麗)의 개국(開國) 시조(始祖) 고주몽(高朱蒙 BCE 58-BCE 19)으로 부터 기원한다. 이후, 고구려의 왕과 왕족은 모두 고(高)씨 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패망 이후 패주한 고구려의 왕족은 엄청 멀리 도망가야만 했다. 그래서, 고구려의 왕족인 고(高)씨들은 양씨, 부씨 등과 함께 제주도(濟州道)에 피신하게 되었으며, 고려(高麗) 중기 까지 숨어 살다 고려 중기 이후 제주 고(高)씨들은 다시 중앙으로 서서히 진출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 고씨(高氏)’ 종친회는 탐라(耽羅) 개국(開國) 설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제주도(濟州道)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용출했다고 전해지는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삼고 있으며, 본관은 제주로 단일화하고 있다. 고구려(高句麗) 왕족 및 장수왕(長壽王 413~491)의 후손들은 중국(中國) 요녕성에 산재해 있으며 족보도 가지고 있다. 한국에도 횡성 고(高)씨 족보에는 장수왕 후손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몇 년 전 요녕성 고(高)씨와 강원도 횡성 고(高)씨가 횡성에서 만나 조상을 참배하고 종친회를 가진 적도 있다.

 

탐라(耽羅) 개국(開國) 설화의 삼성혈(三姓穴)을 소개하면, 제주도(濟州道) 제주시 남문 밖에 있는 3개의 구멍을 삼성혈(三姓穴)이라 하는데, 또는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이 삼성혈(三姓穴)에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3명의 신인(神人)이 출현하였고, 그 후 동쪽 바다에 떠내려 온 상자에서 3명의 미녀와 함께 오곡(五穀) 종자와 가축이 나와서 이들과 함께 제주도(濟州道)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씨(高氏)의 본관이 제주도(濟州道) 제주(濟州)를 대종(大宗)으로 하여 장흥(長興). 연안(延安). 용담(龍潭). 담양(潭陽). 의령(宜寧). 고봉(高峰). 옥구(沃溝). 상당(上黨). 개성(開城). 김화(金化). 토산(兎山). 회령(會寧) 등의 20여파로 분파되었다. 20여파 중에 성주공파(星州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영곡공파(靈谷公派), 문충공파(文忠公派), 장흥백파(長興伯派), 상당군파(上黨君派) 등의 후손이 많다. 그중에서도 영곡공파의 후손이 가장 많으며 모든 제주 고씨의 약 5분의1을 차지한다.

 

그러나, 모두 제주(濟州)에서 분적한 지파(支派)이므로, 오늘날에는 제주도(濟州道) 삼성혈(三姓穴)에서 솟아나온 3신인(神人)의 한 사람인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제주 단일 본(本)으로 환원하여, 종전의 장흥 고씨는 장흥백파(長興伯派), 상당고씨는 상당군파(上黨君派), 개성고씨는 양경공파(良敬公派) 등으로 공칭하고 있다. 고(高)씨는 양씨(梁氏)·부씨(夫氏)와 함께 제주도(濟州道)의 지배적인 씨족으로서, 이들 세 성씨의 시조(始祖) 탄생에 대한 삼성혈(三姓穴)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제주목건치연혁조(濟州牧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처음에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라 일컫는 세 사람이 그 당(堂)을 나누어 살았다고 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사냥을 하여 가죽 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동쪽으로부터 이상한 상자가 바다위로 떠내려 온 그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세 미녀와 오곡(五穀)의 씨앗, 그리고 망아지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세 사람은 세 미녀를 각각 배필로 맞아 제주(濟州). 대정(大靜). 정의(旌義) 세 지역에서 목축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로부터 탐라(耽羅)는 날로 융성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곧 탐라(耽羅)의 개국(開國) 설화로 전해 오는 이야기인데, 이들 3신인(神人) 즉 고을나는 고씨의 시조, 양을나는 양씨(良氏 뒤에 梁氏로 개성)의 시조, 부을나는 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1871년, 증산(甑山) 상제(上帝)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성씨인 진주 (姜)씨를 택하여 오셨고, 강(姜)씨의 시조는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후손으로서 경농과 의학의 시조인 염제(炎帝) 신농(神農)이다. 태모(太母)님은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후손 고판례(高判禮)이며, 고구려 왕족의 종통맥을 이어온 “제주 (高)씨”를 택하여 1880년 오셨다. 그리고, 인류(人類) 역사의 뿌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증산(甑山) 상제(上帝)님은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셨고, 고판례(高判禮) 태모(太母)님은 10년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신 것이다.

 

지구촌(地球村) 문명의 새로운 이정표를 놓기 위해 1871년에 상제(上帝)님과 태모(太母)님이 오셔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바탕으로 포탄(飽綻)지경에 빠진 인류에게 희망과 새로운 비젼(Vision)을 제시하신 것이다. 환국(桓國 BCE 7,199-3,897), 배달국 (倍達國 BCE 3,897-2,333), 고조선 (古朝鮮 BCE 2,333-238).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의  종통맥(宗統脈)을 계승 발전하고자 하는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제주 번개(제주 고씨)를 잡아 쓰노라! 수부, 잘 만났구나. 만날 사람 만났으니, 오죽이나 좋을쏘냐!”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