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배달국(倍達)의 신시(神市) 시대

마도러스 2006. 7. 13. 00:01

■ 배달국(倍達)의 신시(神市) 시대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요녕성) 문화

 

환웅(桓雄)이 다스리는 배달국(倍達, BC 3,898-2,333)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신시(神市) 배달은 제1대 배달(倍達) 환웅(桓雄)께서 BC 3,898년에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건국 이념을 가지고서 신시(神市. 백두산)에 개국한 것을 말한다.  청구(靑丘) 배달은 제14대 치우(蚩尤) 천황께서 BC 2,707년에 재위에 오른 후, 청구(靑丘) 즉 지금의 만주 산동 반도 태산(泰山) 아래로 도읍을 옮긴 것을 말한다. 신시(神市) 서불로도 불리다가 서라벌(서불의 사투리)로 바뀌다가 오늘날의 서울이란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이 우리나라를 예로부터 청구(靑丘)라고 불렀는데, 배달국의 청구(靑丘) 시대의 영향 때문이다. 원동중의삼성기(三聖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국(桓國)의 말기에 환인(桓仁)이 환웅(桓雄)에게 천부인(天符印) 3종을 주어, 환웅(桓雄) 3,000명을 이끌고, 백두산(白頭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도읍을 정하니,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에는 더욱 상세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배달국(倍達國)은 환웅(桓雄)이 정한 나라 이름이고, 도읍은 신시(神市)이다. 뒤에 배달국(倍達國) 14세 치우(蚩尤)환웅이 청구(靑丘)로 도읍을 옮겼다.” 라고 적혀 있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말엽에 환인(桓仁)의 아들 환웅(桓雄)은 처음에는 곡류와 어족(魚族) 자원이 풍부한 바이칼호 부근에서 살다가 기후와 환경이 점점 변하자,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을 건설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배달국(倍達國)의 시대가 고고학상의 신석기 문화의 단계인 것으로 그려져 있다. 대진국(발해) 북부의 신석기 문화중 가장 주목할 만한 문화가 BC 3,500-2,200년경의 유물로 보이는 중국 만주(滿洲) 요녕성 지역의 홍산(紅山) 문화이다. 홍산 문화는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문화 유적지이다. 북만주와 요녕성 일대는 중국의 정사(正史)에서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하는 조선족의 활동 영역으로 고대(古代)에는 한국 민족의 활동 영역이었다. 이들 배달국의 홍산(紅山) 유적지에서는 지금까지 황하 유역에서 나타나지 않던 대형 제단, 여신묘, 적석총군, 빗살 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 라고 한다. 배달국의 신시(神市) 문화 유적지는 만주(滿洲) 요녕성 적봉시 홍산(紅山) 유적지와 하가점(夏家店) 유적지가 있다. 요녕성 적봉시의 동북쪽에 홍산(紅山, 665m)이 있는데, 이곳에 홍산(紅山) 문화 유적지가 있다. 하가점(夏家店) 유적지는 적봉시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홍산(紅山) 문화의 특징은 석관묘의 발생과 채도문(彩陶文) 토기의 중흥을 볼수 있다. 복골(卜骨)의 발현은 왕도(王都)로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부장품에 도기(陶器)를 이용한 조형물들이 있다. 석관묘(石棺墓)의 발생은 강력한 왕권 국가 형태가 체제를 갖추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나온 복골(卜骨)은 중국 은()나라의 복골(卜骨)이 바로 홍산 문화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을 시대적 자료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즉 은()나라의 갑골(胛骨) 문화는 바로 배달국(倍達國) 홍산(紅山) 문화의 후손인 것이다.

 

홍산(紅山) 문화는 적봉시(赤峰市)의 노하하(老哈河)와 조양시(朝陽市)의 대릉하를 따라서 형성되었으며, 노하하의 지주산(蜘蛛山), 오한기(傲漢旗)의 소하연(小河沿), 대릉하의 우하량(牛河梁), 능원(凌源), 부신(阜新), 내몽고의 부하(富河)가 홍산(紅山) 문화의 중심지이다. 서쪽으로는 북경시 서쪽의 장가구(張家口), 동쪽으로는 요하(遼河)를 지나 요동 반도까지 분포하고 있다. 적봉 동남쪽의 노합하 상류에는 흑수(黑水)라는 지명이 남아 있고, 적봉(赤峯), 홍산(紅山)은 둘 다 우리말의 밝산이란 말이 변한 것으로서 그 의미는 백산(白山)을 가리킨다. 홍산 문화는 BC 3,500-2,200년경으로 여겨지고 있고, 배달국(倍達) 환웅(桓雄) 시대가 BC 3,898년에서 BC 2,333년까지이므로 서로 일치한다. 한편, 하가점(夏家店) 유적지에서는 구리로 만든 송곳(銅錐), 동촉, 연주상 동식(連珠狀 銅飾), 쌍미형 동식 등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배달국(倍達國) 신시(神市) 시대의 최초 구리 유물에 해당하며,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들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재위BC 2,357-2,258),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시대로 나누어진다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한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요서 지방 홍산(紅山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유적지를 조사한 이래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그 후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예를들면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에게 문명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한반도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 현재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홍산(紅山문화를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이것을 배달(倍達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말엽 및 고조선(古朝鮮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중국의 건국(建國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문화'이다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단군(檀君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실제는 호족(.호랑이)과 웅족(.)을 배달(倍達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