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인류 시원과 개벽 및 환국(桓國, B.C 7,199-3,898)

마도러스 2006. 8. 6. 01:49

■ 인류 시원과 개벽 및 환국(桓國, B.C 7,199-3,898) 

    

390-290만년 전부터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으며, 약230만년 전에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다. 이들의 화석은 아프리카의 남부와 동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편, 인류의 구석기 문화가 등장하는 것은 “호모 하빌리스” 때부터이고 구석기 전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 채집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또한, 약50만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 사람)”가 출현했고 이들도 구석기 전기의 문화를 누렸다. 그리고, 약 17만년 전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이들은 구석기 중기의 문화를 지녔다. 네안델탈인, 자바인, 베이징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은 여러 종류의 석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도 가지고 있었다. 약8-4만년전에는 현생(現生)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슬기사람)”가 출현했는데, 이들은 구석기 후기에 출현하였다.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거의 똑같다. 특히, 크로마뇽인은 프랑스 남부와 에스파냐 북부일대에 훌륭한 동굴 벽화를 많이 남겼다.     


현생 인류는
약4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를 이룩하였다.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신석기 시대의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 및 경제활동은 제 1차 산업혁명으로 까지 불리워지는 생활의 큰 변화였다. 또한, 신석기 시대의 집단 생활과 공동체 생활은 상당한 수준의 국가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 사회는 점점 집단화 되고, 갖가지 유용한 문명이 개발되었으며, 대규모의 종교의식도 행해졌다. 제단(祭壇)을 쌓고 제천의식도 행해졌다.


그런데, 지구상에 갑자기 큰 변화가 생겨났다. 약 B.C 8,800년 경에 지구상에 개벽(開闢)이 발생한 것이다. 약 10,800년 전에 발생한 하늘과 땅이 무너질 만큼의 큰 변화였다.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는 개벽(開闢)은 우주변화의 원리에 의해 약 10,800년 마다 발생한다. 지구상의 큰 대륙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갈 만큼 강력한 지각(地殼) 변동이 있었고, 동시에 인류문명도 변하게 되었다.

  

대서양의 아틀란티스(Atlantis) 대륙과 태평양의 무(Mu)대륙과 인도양의 레무리아(Lemuria) 대륙이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미국 플로리다(Florida)주 남부의 대서양 해저 탐사에서 발견되는 대규모의 건물, 성벽, 도로, 240m나 되는 해저 피라미드 등등은 개벽(開闢)으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Atlantis) 대륙의 남방문명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고문서에 따르면, 아틀란티스 최초의 왕은 “포세이돈(Poseidon)”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나온다.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들은 개벽(開闢)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무(Mu)대륙의 짜투리 땅들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황해, 동해, 대한해협을 육지로 다닐 수 없게 된 것도 이 때부터라고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은 이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10,000-6,000년전의 중앙아시아 세계의 기후는 지금보다 따뜻했고, 인간이 생활하기에 적당했다고 한다. 온난한 기후와 적당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중앙 아시아에 문명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고, 신석기 문명을 바탕으로하는 인류 최초의 국가가 생겨났다. 북방에서 다시 북방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처음 생긴 나라가 환국(桓國, B.C7,199-3,898)이었다고 한다. 환국(桓國)은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의 천산(파나류산)과 바이칼호(천해, Baikal lake)를 중심으로 문명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것이 북방문명의 출발인 것이다.

    

2000년 07월 03일 중국 톈진天津일보에 의하면, 러시아 고고학 발굴단이 티베트 서쪽의 강런보치(岡仁波齊)봉 주변지역에서 세계 최고(最高)의 피라미드와 100개가 넘는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군(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의 위치가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의 영향 권역과 일치한다. 이들 피라미드군(群) 가운데 가장 높은 피라미드는 1백80m 정도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로 알려졌던 이집트의 케옵스왕의 피라미드(높이 1백46m)를 능가하는 규모이다.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도 수 천년 앞서는 5,000년 전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 똑같은 모양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들 피라미드는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고구려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배달국(倍達國)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지로서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배달국(倍達國)의 존재와 위치는 그동안 실제적인 유적과 유물 발굴이 적게 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서구의 실증사관(洋毒)과 중국인의 역사말살 및 왜곡(中毒) 그리고 일본의 식민사관(倭毒)에 의해 고대사(古代史)에 대한 해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배달국(倍達國)의 존재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배달국(倍達國)의 존재와 위치를 증명할 만한 고적 및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다. 특히 배달국(桓國)의 제단(祭壇) 문화와 제천(祭天) 의식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수메르)문명, 이집트문명들이 모두 실재했던 아시아의 배달국(BCE 3,898-2,333)의 신교(神敎)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배달국(倍達國)의 문명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세계 4대문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중국 북서부만주에서 발견되는 피라미드,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지역의 지구랏(Ziggurat), 이집트 지역의 피라미드, 멕시코 마야 문명의 제단(祭壇), 남미 잉카제국의 제단 문화는 모두 배달국(倍達國) 신교(神敎) 문명에 의한 제천(祭天)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5,500년 전에 배달국의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BCE 3,512년 즉위)의 12번째 아들인 "태호(太昊) 복희(伏羲)"가 주역(周易)을 처음 창시했고, 각종 문화 및 인륜 도덕을 내었다. BCE 3,500-2,6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은 BCE 3,300년경부터 천단(지구랏 Ziggurat)을 건설했는데, 그것은 배달국의 신교(神敎) 문명이 전파 되어 창출된 것이며, BCE 3,000-2,500년경의 황하문명도 배달국의  신교(神敎) 문명에게서 나온 것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