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하착(放下着), 집착의 끈을 놓아라!
산사 스님들 사이에 ‘방하착’(放下着)이란 예화가 자주 등장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스님이 탁발을 하러 길을 떠났는데 산세가 험한 가파른 절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 때, 갑자기 절벽 아래에서 ‘사람 살려!’ 하는 절박한 소리가 실낱같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절벽 밑을 내려다 보니, 어떤 사람이 실족(失足)을 했는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다행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오?’ 하고 스님이 물어보니, 다급한 대답이 들려왔다.
“사실, 나는 앞을 못 보는 봉사예요. 산 너머 마을로 양식을 얻으러 가던 중,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행히 이렇게 나뭇가지를 붙잡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있으니, 뉘신지 모르오나 어서 속히 나를 좀 구해 주시오! 이제, 힘이 빠져서 곧 죽을 지경이오!” 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자세히 아래를 살펴보니, 그 장님이 붙잡고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는 땅바닥에서 겨우 사람 키 하나 정도 위에 있었다.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 장님에게 외쳤다.
“지금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 버리시오. 그러면 더 이상 힘 안들이고 편안해질 수 있소!”
그러자, 절벽 밑에서 봉사가 애처롭게 애원을 했다. “내가 지금 이 나뭇가지를 놓아 버리면,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즉사할 것인데, 앞 못 보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하고 애걸복걸 했다.
그러나, 스님은 봉사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쳤다. 그런 와중에 힘이 빠진 봉사가 손을 놓치자 몸이 땅 밑으로 툭 떨어지며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은 장님은 졸지 간에 벌어졌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파악하고 멋쩍어하며 인사치례도 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우리도 앞 못 보는 장님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봉사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오직 자신을 살려주는 생명 줄인 줄 알고 죽기 살기로 움켜쥐고 있듯이 끝없는 욕망에 집착하며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면, 곧 죽고 못 살 것처럼 아등바등 발버둥치는 청맹과니 같이 눈 뜬 장님이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
썩은 동아줄과 같은 물질을 영원한 생명 줄로 착각하고 끝까지 붙들고 발버둥치는 불쌍한 중생이 바로 우리네 인생살이다. 자기를 지켜주는 생명 줄이라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놓아 버려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귀담아 듣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방하착(放下着)은 ‘집착하는 마음을 아래로 내려놓아라!’ 라는 뜻이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 속에는 온갖 번뇌.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이 얽혀 있는데, 그런 것을 모두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 버리라는 말이 방하착(放下着)이다.
■ 하늘이 준 천수(天壽)를 지키는 길
하늘이 준 수명을 천수(天壽)라 하는데, 사람마다 그 천수(天壽)가 다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하늘이 준 수명을 잘 보존할망정 스스로가 줄이는 행위를 해서야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런 행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나름 살펴보았다.
1) 조직이나 단체가 주는 완장으로 분수를 모르는 언행을 일삼는 행위.
이런 사람을 보통 시쳇말로 얼치기라고 한다. 얼치기란 앞뒤 구분 못하고 할 언행과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2)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마구 참견 하는 행위.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참견한다는 것은 결국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한다면, 남에게 참견할 일은 없다.
3) 무지몽매(無知蒙昧)하여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행위.
우리 주변에는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이비 단체가 많다. 무지와 몽매는 어떤 현상에 대해 스스로가 지적(知的) 사유(思惟)를 통해 선(善)인지 악(惡)인지를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현상은 간단히 말하자면, 읽고 쓰고 감상을 말하면서 키울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나 학습의 부족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어떤 선악의 경계(境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적 사고의 부재는 비단 자라는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가정과 학교에서 목표로 하는 출세 지향적 교육이 낳은 결과의 산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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