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조선)

조선왕조실록의 인삼과 홍삼 이야기

마도러스 2018. 1. 28. 02:01


■ 조선왕조실록의 인삼과 홍삼 이야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1882년 04월 06일 조선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내용이 실려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조선이 서구의 국가와는 최초의 조약인데, 그 조약 8관에 "홍삼"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제8관 : 홍삼(紅蔘)은 조선에서 예로부터 수출을 금하고 있다. 미국 사람이 잠매(潛買)하여 해외로 내가는 자가 있을 경우에 모두 조사 체포하여 관에 몰수하고 경중에 따라서 처벌한다." 그 당시, 조선의 홍삼은 중요 수출품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조정에서는 홍삼을 특별 관리했다는 뜻이다.


중국은 서양과 무역을 하면서 차(茶)를 많이 수출했었다. 그리고, 주로 은을 판매 대금으로 받았다. 그로인해 중국에는 판매 대금으로 받은 은이 넘쳐났다. 한편, 서양에서 은의 유출이 심화되었다. 그러자, 영국은 인도등에서 아편을 생산하여 중국에 판매하여 유출된 은을 다시 회수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에서는 아편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심각하게 되었다. 그로인하여 아편 금지 조치 그리고 1차 2차에 걸친 아편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아편 중독에 빠져들 때, 아편 중독에 대한 치료제로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이 인삼이었다. 물론 인삼은 중국에서도 생산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홍삼은 시가의 수십배나 주고 판매되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의 홍삼이 매우 효능이 좋고, 홍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매우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 이전에 이미 17세기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록키 산맥에서 생산되는 인삼이 중국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엄청나게 넓은 땅에서 생산되는 미국 인삼은 중국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러자, 조선은 미국산 인삼 보다 효능이 좋은 상품 개발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조선 홍삼이다. 인삼을 여러번 찌고 말린 후, 잘 가공하여 홍삼을 만들게 것이다. 결국, 잘 가공되어 오랜기간 유통이 가능한 조선의 홍삼은 중국 시장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홍삼 시장 확보 등에 대한 우려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도 언급이 된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조선의 홍삼이 지속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품질도 좋지만, 재가공하여 오랜 유통 기간을 견딜 수 있는 상품을 조선이 개발 판매하였기 때문이다.

1882년 미국과 최초로 수교를 체결했던 조선 정부는 자국의 산업을 지키기 위하여 국가 간의 조약에 나름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판매 상인들은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었다. 어찌 홍삼 유통 산업이 잘 안될 수가 있을까?


2004년, 한국과 칠레는 FTA(자유 무역 협정)를 체결했다. 그로 인해 딸기 농가는 큰 타격을 받았다. 칠레산 씨없는 포도가 들어오는 시기가 한국에서 딸기가 나오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그후, 한국의 딸기 농가들은 칠레산 과일로 인한 위기를 재배 방식의 변화로 이겨냈다. 새로 개발된 재배 방식에 의하여 딸기가 초겨울부터 생산이 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생산되는 귤도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으로 계속적인 품질 계량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