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선점에 운명이 걸린 미래 경제
세계 첫 표준 전쟁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는 철도의 두 레일 간격을 의미하는‘표준궤’(Standard gauge)를 둘러싼 대결이다. 가장 먼저 철도를 발명하고 사업을 시작한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Stevenson)은 탄광에서 석탄을 나를 때 쓰던 마차의 표준을 채용해 두 레일의 간격을 1.42m로 잡았다. 이와 달리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로 불린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Brunel)은 열차가 좁은 간격의 레일 위로 달리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2.14m의 표준을 주장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표준을 적용해 철도를 건설했다. 영국 정부는 1845년 판정을 내렸다. 더 긴 철도를 깔았던 스티븐슨(Stevenson)의 1.42m를 철도 레일 간격 표준으로 삼았다.
19세기 말 전기가 등장한 후, AC(교류)·DC(직류) 방식 표준 경쟁도 치열했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직류 전기에 의한 직류 발전 배전 시스템을 사용했고,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회사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발명한 교류 전기를 이용한 교류 고압 송전 방식을 내세웠다.
에디슨(Edison)은 직류 전기(DC)를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고압으로 전송되는 교류 전기(AC)의 위험성을 집중 홍보했다. 심지어 고압 교류 전기(AC)로 전기 의자를 만들어 사형을 집행하자고 로비 전략도 벌였다. 실제로 에디슨의 추종자가 만든 전기 의자로 사형을 집행했는데, 교수형 보다 훨씬 잔인하다는 비판만 받았다. 그러는 사이 규류 전기(AC)사용자가 늘어 현재의 전력 송전 배전의 표준으로 굳어졌다. 특히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AC 모터를 발명하고, 삼상 교류(AC) 전류와 같은 관련 신기술이 나온 것이 결정타가 됐다.
표준 전쟁에서 패한 직류 전기(DC)는 생각 보다 오래 존속했다. 고압으로 전송된 교류 전기(AC)를 감압한 후, 직류 전기(DC)로 바꿔주는 ‘로터리 컨버터’ 같은 기술 덕에 이미 직류 전기(DC)를 사용하던 지역에서 배전망이나 전기 제품을 교류 전기(AC)용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쓸 수 있었다. 경제 사학자 폴 데이비드는 이처럼 경쟁하는 두 기술을 이어주는 로터리 컨버터 같은 기술을 ‘게이트웨이(Gateway)기술’이라고 불렀다. 그는 표준 전쟁에서 경쟁하던 기술 중 하나가 급작스럽게 사라지기 보다는 게이트웨이(Gateway) 기술의 등장으로 생각 보다 오래 살아남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게이트웨이 기술이 있더라도 시장 경제에서는 표준을 선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현재 일반적으로 쓰는 ‘쿼티 키보드’는 표준 선점의 위력을 보여준다. 쿼티 키보드는 ‘바’가 있는 타자기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제품이다. 그런데 이 디자인은 바를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에서도 계속 쓰인다. 더 편리한 자판이 나왔지만 이미 쿼티 자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다른 자판으로 바꾸길 꺼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시장이 열리기 시작할 때 표준을 선점하면 나중에 시장이 커지고 기술이 달라져도 선점 효과가 지속되는 현상을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또는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ies)’라고 한다.
다른 표준의 선점 효과를 봉쇄하려면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는 방송국인 CBS와 흑백 TV 제조사 RCA가 컬러 TV의 표준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50년 CBS의 컬러 TV를 표준으로 채택했다. RCA는 이를 뒤집기 위해 흑백 TV를 싸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TV가 없던 소비자들은 이 기회에 흑백TV를 장만했다. 이들은 굳이 CBS의 컬러 방송을 보기 위해 비싼 컬러 TV를 구입하려 하지 않았다. CBS가 컬러 방송을 시작했을 때 컬러 TV를 소유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결국FCC는 1953년 기존 결정을 번복하고 RCA의 기술을 컬러 TV의 표준으로 승인했다.
더 극적인 표준 전쟁은 ‘포맷 전쟁’이라 불리는 VCR의 사례이다. VCR은 소니가 1975년 베타맥스를 출시하면서 상용화됐다. 이에 대항했던 JVC는 1976년 VHS라는 기술을 시장에 내놨다. 화질은 베타맥스가 VHS보다 우수했다. 초기에는 기술력이 앞선 베타맥스가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1981년 시장 점유율은 베타맥스 25%, VHS 75%로 역전됐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몇몇 전문가는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커지던 포르노 산업에 주목한다. 소니 진영은 이들과 손을 잡지 않은 반면 JVC 동맹은 자신들의 기술을 포르노 영화의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비디오는 포르노를 즐기는 데 적합한 매체였고, VHS로 제작된 포르노 테이프는 미국 중산층 가정을 파고들었다. 뜻밖에 포르노라는 ‘콘텐트’가 표준의 운명을 좌우한 셈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어떤 기술이 우월하다고 무조건 표준으로 안착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사용한다고 표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 표준을 선점했어도 표준에 도전하는 경쟁 기술과 싸워서 이겨야 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로 사용자를 자신의 네트워크에 묶어둬야 한다. 특히 적의 의중부터 간파하고, 동맹을 맺어 아군의 힘을 키우고, 적절한 무기를 써서 적을 물리치는 이치는 ‘표준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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