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輪廻 환생幻生

카르마(Karmah)와 윤회(輪廻) 및 전생

마도러스 2016. 1. 26. 17:37


카르마(Karmah)와 윤회(輪廻) 및 전생


★ 예수(Jesus)

 

사람은 자기가 뿌린 씨는 반드시 자기가 거두어들이게 된다.


★ 환생(還生) 단어를 기독교 교회 권위 때문에 삭제했다.

 

기독교 종교와 정치 권력이 결탁하면서 기독교 교회는 환생(還生)의 낱말을 이단(異端)으로 내몰았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영혼의 구원 및 해탈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로마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을 삭제하였다. 


초기 기독교에서 사실은 예수의 가르침 이후,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은 정식으로 인정되던 교회신학의 일부였다. 2세기경 당시 강력했던 기독교 종파인 그노시스파와 마니교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 학파에서 윤회설을 가르쳤고, 기독교 역사의 약 400년간 환생설은 보편적인 교회 가르침의 일부였다.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기독교 종교와 정치 권력이 결탁하면서 기독교 교회는 환생(還生)의 낱말을 이단(異端)으로 내몰았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영혼의 구원 및 해탈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로마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을 삭제하였다.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325년 성경을 제작하면서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에 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개인의 노력과 발전으로 영혼의 구원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서 당시 윤회를 가리키던 용어인 윤회(輪廻)의 개념이 교회 신학에서 삭제된 것이다.

 

325년 로마 니케아(Nicaea) 공의회 이후, 모든 문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했다. 그러나, 완전 삭제할 수는 없었다. 요한 복음(1:21)에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Elijah)의 환생(還生)이냐?' 라고 묻는다. 마가 복음(8:27-28)에서도 제자들은 예수가 엘리야(Elijah)의 환생(還生)인지, 세례 요한(John)의 환생(還生)인지, 다른 선지자의 환생(還生)인지를 논의했다. ‘요한의 비밀서’에서는 영혼이 계속해서 환생(還生)하며, 환생은 곧 족쇄를 차는 것이라고 했다.

 

6세기에 이르러 폭군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는 독단적으로 윤회설을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공의회를 소집하여 환생 사상을 가르쳤던 오리게네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황제와 그의 아내는 윤회 사상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을 절대 권력으로 신격화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윤회설을 인정하던 서로마 제국의 대표들은 회의에 불참시켰다. 윤회설을 믿던 교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탄압을 했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는 기독교 지배하의 서양에선 윤회설이 자취를 감추었다.


★ 플라톤(Platon)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마치면, 각자가 생전에 지은 행위에 상당하는 상과 벌을 받고는 다시 육체에 깃들어 다시 태어난다.


★ 흰두교 경전의 크리슈나(Krishna)

 

인간은 불멸이며, 거듭거듭 다시 태어난다. 삶을 이어가며 전생에 얻은 지혜들을 다시 찾아 완성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간다.


★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자라투스트라(Zarathushtra)

 

인간은 영혼의 발전을 통해 신(神)에게 이른다.


★ 이슬람교의 코란(Koran)

 

신(神)이 생명을 창조했고, 생명은 신(神)에게 돌아올 때까지 거듭거듭 다시 태어난다.


★ 불교의 석가모니(釋迦)

 

선업(善業)을 쌓은 자는 행복한 곳으로 태어나고, 악업(惡業)을 쌓은 자는 괴로운 곳으로 다시 태어난다.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라. 내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라.


■ 모든 영혼은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을 통해 이미 여러 세상을 거쳐 왔으며, 최종 완성에 이를 때까지 또 다른 여러 세상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영혼은 지난번 생애에서의 인연(因緣)으로 인해 강화되거나 약화된 상태로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 환생(還生)은 자기의 후손(後孫)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다. 선업(善業)을 많이 쌓은 집에는 반드시 이후에 경사(慶事)가 따른다. 어떤 조상이 어떻게 환생을 하는가? 친가(親家)나 외가(外家)를 포함해서 자기 가족의 조상이 주로 후손(後孫)으로 다시 환생(還生)을 한다. 때로는 국경(國境)을 건너 다른 나라에 환생(還生)하기도 한다.

 

4대(代)가 지난 다음에 환생을 하는데, 때로는 그 보다 일찍 환생(還生)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이 맺은 인연(因緣)과 인망(人望)에 따라 이뤄진다. 그래서, 인맥과 인연(因緣)은 언제나 중요하다. 수많은 세월을 경험하여 진화(進化)해 온 자기 자신 혹은 인연 맺은 사람의 유전자(遺傳子)로 유전된다.

 

■ 윤회(輪廻)와 환생(還生) 사상은 고대로부터 동양 철학의 두 기둥이었던 힌두교와 불교에서 믿어온 사상이며, 고대의 종교가 남겨준 유산 가운데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다면,윤회(輪廻) 사상이란 뭔가? 인간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카르마(Karmah)에 따라 탄생하고 죽는 삶의 주기를 반복해 가면서 그 영혼이 발전해 가며 궁극적으로는 완성되어 간다는 개념이다. 그러면, 카르마(Karmah)란 무엇인가? 카르마(Karmah)를 업(業)이라고 하는데,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 행위(行爲)를 뜻하는 단어이다. 인간은 살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의도했든 안했든 나쁜 짓도 많이 한다. 그러면 자기가 지은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또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통하여 그 죄를 갚고 그것을 이루어 냈을 때 영혼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것이다.

 

사람은 새로 태어나면서 전생의 기억을 지우고 태어난다. 왜냐면, 새로운 바탕에 그림을 새로 그리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잠재 의식, 즉 무의식은 그 영혼이 보고 듣고 겪었던 모든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무한한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의 표면 의식은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기억이 들어오고, 결국 오래된 기억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전생(前生)을 보는 방법은 최면을 통해 기억 과정 퇴행을 통해 과거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최면에 빠지면, 무의식이 올라와서 표면 의식과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무의식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를 끌어다 볼 수 있다. 또한, 전생의 기억은 꿈을 통해서도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삶의 문제를 안고 괴로워하던 많은 사람들이 전생을 체험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더 깊이 깨닫고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