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한국)

아! 잊으랴? 어찌으리 그날을

마도러스 2015. 10. 14. 13:39


■ 아! 잊으랴? 어찌으리 그날을

 

★ 1910년 08월 29일 : 일제(日帝)가 조선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은 날이다. 식민지 수탈 정책에 의해 곡물을 착취해 갔으며, 철문이나 집안의 숟가락까지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조선 사람들은 광산이나 산업 시설의 강제 노역에 투입되었다. 고대사의 역사를 날조하고, 민족 정기를 훼손하며 노예 의식을 세뇌시켰다. 친일파(親日派) 관변 매체들을 동원하였다.

 

★ 1950년 06월 25일 : 북한군이 한반도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으로 기습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날이다. 북한 빨갱이(공산주의) 정권의 무력 통일 야욕에 의해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다.

 

■ 허풍쟁이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 선동

 

1950년 이승만 정권의 신성모 국방장관은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에 편승해서 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 라고 했다. 하지만, 1950년 06월 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곧바로 서울을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1950년 06월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 중에 있다”라는 라고 거짓 선전을 해서 서울 시민을 속였다. 1950년 06월 27일 새벽, 비상 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관. 국회의원. 육군 본부에게 통보하지 않고 대전(大田)으로 도망갔다.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이승만은 곧 특별 담화를 녹음했다. ‘서울 시민은 안심하십시오. 남침을 감행한 북한 괴뢰군은 용감한 국군의 반격으로 38선 너머로 쫓겨나고 있으며 국군은 38선을 굳세게 지키고 있습니다. 국군을 믿고 자리를 지키십시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대통령인 나 역시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 방송은 서울 방송국이 아닌 대전 방송국에서 행해졌다. 대전(大田)에서 녹화된 라다오 방송은 06월 27일 밤 9시부터 서울 중앙 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06월 28일 새벽 2시30분 이승만은 아무 예고도 없이 하나 밖에 없던 한강 다리를 폭파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다리 위에 있었음에도 사전 통보나 어떤 통제도 없었다. 다리 위의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爆死) 당했다. 군사 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 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의 퇴로가 차단당했고 희생된 것이다. 06월 28일 서울은 북한 괴뢰군에게 함락되어 지옥 같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50년 07월 01일, 이승만은 대전(大田)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木浦)로 이동한 후, 부산(釜山)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京釜街道)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서울 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은 북한 괴뢰군에 부역(賦役)했다고 고문(拷問)해서 죽이고, 연좌제(緣坐制)로 묶어 놓았다.

 

■ 너무 왜곡되어 웃겼던 한국 역사

 

2013년, 친일파 뉴라이트(New right)에 의해 통과된 한국 역사 교과서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썩은 시대에 살았던가? 이런 것이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라고 버젓이 통과 되었던가?

 

일제(日帝) 시대 : 한국의 근대 국가 수립에 크게 기여

안중근 : 테러리스트. 김구의 하수인

유관순 : 체제를 부정한 불순 분자

백범 김구 : 남한의 단독 선거를 반대한 빈라덴 같은 인물

김좌진 : 체제를 부정한 악질 테러 분자

일제 시대의 종군 위안부 : 자발적인 경제단체, 성매매업자

동학 혁명 : 하층 농민들의 보수적인 왕권 옹호적인 농민 봉기

명성 황후 : 외세에 의존한 수구적 인물

김옥균 : 일본의 힘을 빌려 근대화를 추구한 선각자

고종 황제 : 국민의 정치 참여를 부정한 전제 국가의 주역

12.12 사태 : 혁명 과업의 완전 성취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

전두환 : 구국의 결단을 통해 혁명 과업 완수한 영웅

 

2013년, 친일파(親日派) 뉴라이트(New right)는 ‘일제(日帝) 식민 통치’를 미화(美化)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남의 아이를 유괴해서 학대하며 키워 놓고서는 “양육의 은혜에 대해 고마워 하라!”는 억지 소리와 같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들으면 알지만, 답답한 사람은 당해봐야 알고 망해봐야 안다고 한다.

 

■ 네티즌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에 촉각

 

다음은 2015.09.21일 직썰에 오른 ‘미리 보는 국정 교과서’라는 제목의 카드 뉴스 내용이다.


“조선에서 생산된 쌀은 총독부가 강제로 빼앗아 간 것이 아닌 시장 경제의 무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승만은 1950년 한국전이 발발하자 지혜로운 정치력과 과감한 결단으로 한강 다리를 폭파해 북괴의 침입 경로를 차단했다.”

 

네티즌들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출처: 국민일보, 2015.10.10일).

 

전 세계적으로 국정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 몽골. 이슬람 국가 뿐이다. 국제 사회의 모범 답안으로 불리는 UN의 역사 교육 분야 특별 보고서에는 ‘역사 교육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 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나의 역사 사관으로 국민을 통제하려고 했던 시기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 정권, 일제 식민 통치 시대 등이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51010000104353

 

■ 황우여 ‘국정 교과서, 대통령이 지시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2015.10.08일 정부 여당이 강행하려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 "지금 대통령이 교육부에 내린 큰 지침으로는 '균형 잡힌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라'는 것"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일을 진행하고 있음을 밝혔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교육문화 체육관광 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이같이 말한 뒤 "국론을 통합하고 어떻게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 자라나는 미래에 제대로 된 교과서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 프레스바이플, 2015.10.08일)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67

 

■ 미국(美國)의 사례로 본 국정 역사 교과서

 

정부는 2015년 09월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을 없애겠다"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경신 고려대 법학 전문 대학원 교수는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 헌법 조문이 무슨 의미를 갖춰야 하는지 미국 판례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며 "국가가 역사를 규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과서에 대한 결정권을 철저히 분산시킴으로써 교육을 맡고 있는 당사자들의 권한을 보호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대법원은 "교육 위원회는 도서관 장서를 구성함에 있어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지만, 편협한 정치적 방식을 행사돼서는 안 된다. 헌법은 국가에 의한 사상의 탄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방 지방 법원은 "국가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들은 특정 책이 논란이 될 만한 견해를 담고 있다고 해서 이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2015년 09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계획안은 과거로의 회귀라는 비판과 함께 ‘후진국형 역사 교육’이라는 지적에 직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