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조선)

일본의 조선 합병은 미국도 책임있었다.

마도러스 2014. 3. 4. 16:04


일본의 조선 합병은 미국도 책임있었다.


■ 미국 뉴욕 타임스, 1883년 조미(朝美)우호 조약 거론


"1910년 조선(朝鮮)이 일본(日本)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가 1945년 03월 01일자 사설에서 조선(朝鮮)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 고통받은 것은 미국(美國)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뉴욕 타임스는 당시 '한국의 독립'이라는 사설을 통해 1910년 일본(日本)의 조선(朝鮮) 강제 합병이 미국의 방임에 기인하다는 반성과 함께 1905년 을사(乙巳) 늑약 이후 일제(日帝) 치하에서 신음한 한국 국민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통일의 그날은 곧 올 것"이라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사설은 "조선(朝鮮)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기 시작한 지 9년째인 1919년 03월 01일 전국적인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면서 "비록 조선(朝鮮)이 일본에 예속돼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독립 열망은 꺼지지 않았었다"며, 한국은 지금도 03월 01일을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1943년 11월26일 이집트 카이로의 "카이로 회"(Cairo conferences)에서 한국의 독립 보장을 결의했음에도 일제(日帝)의 지배 속에 독립은 황야의 울음 소리처럼 멀고 험한 여정이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1883년 조미(朝美)우호 조약은 결코 폐지된 것이 아니다.


이와 함께 오늘날 한국의 고통은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며 과거의 약속을 거론했다. "미국은 1883년 조선(朝鮮)과 우호조약을 맺으며, 만일 다른 나라가 한국 정부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탄압을 가할 경우 이를 막기로 했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이 러시아와의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국을 보호국으로 강제하는 것을 묵인했다. 다른 나라의 관심이 줄어들자 일본은 1910년 한국을 부속 도서(島嶼)로 강제 합병했다."


타임스는 "그러나 1883년 조미(朝美)우호 조약은 결코 폐지된 것이 아니다. 다만 잊혀졌을 뿐"이라면서 "독립 선포일을 남몰래 기념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간절한 통일 희망은 머지 않아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인들은 오랜 세월 일제(日帝) 치하의 잔학성을 우리들에게 말해 왔다. 우리 또한 일본이 아시아에서 서구를 몰아내고 정복의 야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비극의 경험(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으로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타임스는 "한국의 독립은 미국에게 대일(對日) 승전(勝戰)의 부산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있었던 것"이라고 전제하고 "마침내 우리는 과거의 약속을 이행할 것이다. 우리의 승리는 한국인들에게 생명 그 자체가 될 것"이라며 감동적인 사설의 대미(大尾)를 맺었다. (뉴시스, 입력: 2014.02.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