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조선)

대원군이 사랑한 여인, 진채선

마도러스 2015. 4. 9. 16:55


대원군이 사랑한 여인, 진채선

 

조선(朝鮮) 최고의 러브 스토리(Love story)가 전북 고창(高)에 있었다. 조선 말엽에 판소리로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백성들의 시름을 달래주었던 여성 명창 진채선(陳彩仙)과 그녀의 스승 신재효(申在孝)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동시에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갑자기 등장하여 삼각 관계를 이루었는데, 그는 당대 최고 권력자로 이름을 떨쳤던 흥선 대원군(大院君)이다. 신재효(申在孝) 선생은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해서 판소리 중흥의 토대를 닦았는데, 진채선(陳彩仙)은 그가 발굴해 낸 최초의 여성 판소리 명창(名唱)이다.

 

드디어, 실록 애정 소설 ‘진채선(陳彩仙)'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작가는 '바다 위의 피아노'와 '초록빛 모자의 천사'로 알려진 이정규 작가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權力)을 뛰어넘은 고귀한 사랑(Love) 이야기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사연을 갖고 있는 소리꾼 진채선(陳彩仙)과 관련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의 일대기와 그녀의 스승에 대한 연모(戀慕)와 열렬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진채선을 사랑한 대원군(大院君), 신재효를 연모한 진채선(陳彩仙) 그리고 진채선을 그리워하는 신재효(申在孝)가 이 소설의 기본 축을 형성하고 있다.

 

진채선(陳彩仙)은 전주 대사습(大私習)에 참가하면서 신재효에게 발탁된다. 진채선은 춘향가(春香歌)를 특히 잘했고, 그 중 기생점고(妓生點考) 대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춘향가(春香歌)의 기생점고(妓生點考)는 변(卞) 사또가 남원 고을에 부임하여 기생점고(妓生點考)를 하며 호색(好色)을 부리는 대목인데, 여색(女色)에 빠진 변(卞) 사또를 기생들이 춤과 노래로 재치있게 골탕 먹이는 대목이다.

 

1867년 경복궁(景福宮) 중건(重建)을 축하하는 잔치인 낙성연(落成宴)에 참석했던 당대 최고 권력자 대원군(大院君)은 진채선을 보는 순간 곧바로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고운 외모와 빼어난 춤 솜씨 그리고 좌중을 휘어잡는 절창(絶唱)에 매료된 것이다. 그날 이후, 운현궁(雲峴宮)으로 안내되어 들어온 진채선은 대원군의 첩실(妾室)이 된다. 대원군(大院君)은 진채선의 마음을 독점하기 위해 그녀의 바깥 출입까지 금지했다. 대원군은 지극 정성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지만,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그녀의 스승 신재효(申在孝)가 들어 앉아 있었다.

 

진채선(陳彩仙)에게 운현궁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무엇 보다 그녀는 자유롭게 떠돌며, 판소리를 목청껏 소리내어 절창(絶唱)하고 싶었지만, 갇혀있는 신세였다. 게다가 스승 신재효에 대한 그리움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걱정과 시름으로 살아야했다.

 

신재효(申在孝) 역시 진채선을 애타게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도리화가(桃李花歌)를 지어 진채선에게 바쳤다. 진채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이에 그녀는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으로 화답했다. 두 노래는 안타까운 노랫말과 애절한 사연으로 심금을 울려 주고 있다.

 

결국, 진채선(陳彩仙)은 그리움이 깊어지면서 급기야 상사병(相思病)에 걸리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원군의 질투심도 커져만 갔다. 그는 진채선에게 ‘날아가는 새는 절대로 뒤돌아 보는 일이 없다!’라며 그녀의 마음을 돌려 잡으려 했다. 대원군(大院君)은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지만, 한 여인의 마음만큼은 그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채선의 마음을 얻는 것에 실패했다.

 

진채선(陳彩仙)은 스승을 향한 사랑을 억누를 수 없었고, 하루 하루 눈물 어린 삶을 살아갔다. 그러던 중, 스승 신재효가 사경(死境)을 헤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실각한 대원군의 곁을 도망쳐서 탈출했다. 그녀는 전북 고창(高昌)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승의 노년(老年)을 보살폈다. 하지만, 신재효는 죽음의 문턱을 넘고 말았다. 그녀는 병사(病死)한 스승의 무덤 곁에서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侍墓)했다. 3년 상(喪)을 치른 후에 그녀는 어디론가 행방을 감췄다.

 

대원군(大院君)은 진채선이 떠난 삼개 나루에 아소정(我笑停)이란 정자를 짓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진채선(陳彩仙)이란 명창을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권력자(權力者)와 당대 최고의 문예인(文藝人)이 대립하면서 애절한 삼각 구도를 만들어 냈다. 예술과 권력 그리고 사랑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역사 속에 잔잔한 감동을 남겨 주고 있다.


■ 신재효가 지은 도리화가(桃李花歌)

 

1870년, 판소리 작가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24세 여제자 진채선(陳彩仙)을 위해 그의 나이 59세 때에 지어준 판소리 작품이 도리화가(桃李花歌)이다. 도리(桃李)는 복숭아꽃과 자두꽃을 말한다. 또한, 도리(桃李)는 진채선(陳彩仙)이며, 뛰어난 미인(美人)으로 묘사되고 있다. 진채선(陳彩仙)은 조선 최초의 명창이며, 후에 국창(國唱)이 되었다. 단순히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봄 경치를 노래하는 작품임을 암시하고 있으나, 사실은 특정한 개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그는 진채선을 잊지 못하는 심정을 절실하게 노래하고 있다.


신재효(申在孝)는 진채선(陳彩仙)을 발굴하고 판소리 명창들을 초대하여 여류 명창으로 교육시킨 뒤, 경복궁(景福宮) 낙성연(落成宴)에 올려 보내어 대원군에게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그는 몇 번이나 상처(喪妻)를 한 뒤라 젊은 여(女)제자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낀 것 같다. 이 작품은 판소리 역사에 있어 최초의 여류 명창인 진채선(陳彩仙)과 판소리 이론가인 신재효(申在孝)의 삶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재효(申在孝)의 고택은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26-20 번지 (읍내리 453번지)에 있다. 진채선(陳彩仙)의 생가는 전북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검당포 마을에 있다. 영화 ‘도리화가’(桃李花歌)는 신재효와 진채선의 열렬한 사랑을 소재로 2015년에 촬영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