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조선)

임진왜란 및 교회 역사의 불편한 진실

마도러스 2015. 4. 28. 10:15

■ 임진왜란 및 교회 역사의 불편한 진실

 

▶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k1gbWRhTV34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04월 13일, 기독교 군대가 처음으로 조선(朝鮮) 땅을 침략하던 날이다. 왜군(倭軍)의 배에는 십자가 깃발이 휘날렸다. 25만 왜군(倭軍)의 10%, 일본군 총수의 대부분은 기독교 원정대기리시단(吉利支丹)이었다. 조선인의 를 베고, 살 가죽을 벗기고, 인육을 먹던 기리시단(吉利支丹)은 십자가를 높이 들고 조선 땅을 행군했다. 7년간의 임진왜란 전쟁은 (神)의 이름을 가장한 한국판 십자군 전쟁이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기독교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신학 교수 김인규. 성결 교신 학교 논문). “임란(壬辰倭亂)은 주님의 특별한 배려이며, 일본 기독교(基督敎)를 지켜낸 승리의 역사이다.” (일본 관구장 고메즈의 비서 프란시스코 파시오. 1598 일본보).

 

유럽의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1,096-1,272)은 유럽 전역에 피바람을 불러왔다. “여호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모두 처형하라!” 십자군에게 지급된 면죄부는 천국(天國) 보장권과 경제적 보상이었다. 무차별 살상에 대한 그들의 죄의식은 오직 주님만이 용서하셨다. 이 후, 로마 제국의 역사는 기독교 선교를 구실삼아 각 지역의 민족 전통 말살과 횡포. 폭압. 강간. 살인 등을 일삼는다. 이 땅도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아편 시장 확보를 목적으로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朝鮮) 상륙을 시도하였다. 1846년 식민지 개척의 도구로 프랑스 선교사 함대가 진입했다. 1866년 미국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사건에서 총칼을 들고 행패를 부리던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순교로 둔갑되었다. 1868년 대원군(大院君)의 부친 남연군 묘지 도굴 사건에 선교사들이 앞장섰다.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미일 협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에 기독교 선교 자유를 보장하는 열강의 국제적 음모였다. 일제 식민 통치 시대에 보호를 받으며 친일 제국의 기독교는 번성의 꽃을 피웠다.

 

1985년 서울시 단군(檀君) 성전 건립을 기독교 목사들이 반대했다. 1980년 이후에는 단군(檀君) 동상을 자르고 장승 파괴불상 파손의 만행을 저질렀다. 2007년 보수 기독교 뉴라이트는 민족 역사를 말살한 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2008년 기독교 목사와 그 신도들은 태백산 천제단(天祭壇)을 파손했다.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거주하며 당신의 모든 행동을 매일 낱낱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이 투명 인간은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특별한 죄의식 목록을 갖고 있죠. 만약, 당신이 10가지 중 한가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고통과 고뇌로 가득찬 아주 무서운 지옥(地獄)에 당신을 떨어뜨려 숨막힘. 화형 등으로 비명과 눈물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며 항상 돈(Money)이 필요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완벽하신 그분도 (Money)은 어찌 못하십니다.” (조지 칼린의 기독교 풍자).

 

기독교는 종교 장사(壯士)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세금도 내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상 최고의 공공연한 끝내주는 거짓말입니다. “설교 시간 처음부터 졸기 시작해서 축도할 때 정신이 드는 성도! 헌금은 준비 않고 지갑 속에서 천원짜리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예수님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 헌금 천원짜리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그렇다면, 그들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땅 가운데 있는 모든 불교 사찰이 무너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007년 6월 4일 부산 기독교 청년 연합회). “믿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의 자식이라 하는 사람들을 지옥불에 던져 버리는 당신네들의 신(神)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나는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법정 스님). 잔인한 역사. 거대한 음모. 이 땅의 기독교! 그 불편한 진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1) 1886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아리마테아 요셉(Joseph of Arimathea)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가를 받아 예수를 장사지냈다. 하지만, 예수가 십자가 처형 후에 들어갔던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의 정원이었다. 그리고, 아리마테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의 조작극(造作劇)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예수(Jesus)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며,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추구한 것은 바로 유대민족의 메시아(Messiah)가 되는 일이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메시아(Messiah)로 추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대의 신화와 종교에서 언급되는 십자가 부활(復活)이라는 조작극이 필요했고, 유대인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믿게 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다.

 

2) 성경을 보면, 예수로마 (法)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전혀 없었다. 만약, 유대인들이 예수를 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유대인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로마 사형법십자가형으로 죽었다. 원래 로마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 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 두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십자가에서 풀어 주었다.

 

3) 예수는 인도티벳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醫術)을 배우고, 고전(古典)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만민 평등을 주장하며 유대 민족 메시아 행세를 하고 다녔다. 유대인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루살렘 유대인 자치 의회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유대인 집권층과 로마 당국은 그들 권익에 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 총독을 돈으로 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Joseph of Arimathea)과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갔고, 예수는 자기가 원하는 조작극(造作劇)을 부탁했고, 결국 무사하게 살아 날 수 있었다.

 

4) 마가 복음 15장 44절,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 요한 복음 19장 32절, “로마 형리들이 예수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을 때,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예수의 다리가 부러뜨려지지 않은 상태로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었다.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했는데,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에 묶여졌을 때, 예수는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한 상태로 죽은 척 하였다. 이렇게 적절하게 죽은 예수는 미리 준비된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다.

 

5) 마태 복음 27장 60절, “이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Joseph of Arimathea)의 개인 소유이다.” 누가 복음 23장 49절, “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목격하게 한 십자가 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造作劇)이었다.

 

6) 예수는 십자가 처형조작극(造作劇)을 꾸밈으로써 유대인 집권층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었고 동시에 유대인 메시아(Messiah)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테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 무덤에 안치시킨 후,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3일 후, 그는 가까운 소수 몇 사람에게만 나타났다. 결국, 예수는 모든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復活)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와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가 진짜로 부활했다면 분명 여러 대중들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며 당당하게 설파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일의 신학자(神學者)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이 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예수 탄생과 하느님 아들 조작 사건의 비밀

 

1) 요셉(Joseph)은 둘째 부인 성모 마리아(Maria)와 6월에 약혼(約婚)했다. 요셉은 이스라엘 다윗 왕의 종손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부인이 될 사람은 제사장엄격한 규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약혼(約婚)이 확정된 다음 3개월 후인 9월에 1차 혼인 선언을 하고, 12월 첫 보름 동안만 두 사람의 동침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해 9월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9월은 성스러운 기름 부음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2)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요셉(Joseph)은 제사장이 명령한 12월 초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약혼(約婚)을 하자 마자 곧바로 둘째 부인 마리아(Maria)와 동침을 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임신(姙娠)을 하게 되자 요셉은 몹시 난처했다. 쉽게 말해서속도 위반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은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를 특별히 취급하도록 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잉태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Jesus)는 하느님의 잉태에 의해 태어났다고 발표하게 된 것이다.

 

3) 2세기나 그 이전에 씌여진 것으로 알려진 ‘유아(幼兒) 복음서’는 예수가 아주 어렸을 때의 예수(Jesus)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어린 예수가 아주 영리했지만 난폭하고 버릇이 없고 신경질이 대단히 심한 어린이였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심기를 건드린 다른 아이죽인 일도 있었고, 자기의 가정 교사를 죽도록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경을 만드는 목적을 예수의 신격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의 어린 시절이나 혈통 관계는 성경의 기록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이 완전히 삭제되었다.

 

4) 신약 성서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거치면서 주교와 장로들에 의해 기록이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교회 이익을 크게 해치는 내용은 외경(外經)이라고 하여 구분하여 처리하였다.

 

영국 법원, 예수 부활은 거짓이었다! 판정

 

[동아일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 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 ‘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Jesus)는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었다.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하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 요셉(Joseph of Arimathea)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Pilatus)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演劇)을 하고는 그 뒤, 부활(復活) 연극(演劇)을 한 다음 로마 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Jesus)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Jesus)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Lazarus)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 교회를 세워 주교(主敎)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Jesus)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Merovinger)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 8개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Jesus) 혈족들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인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많은 예수(Jesus)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 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시대 성당 기사단의 지방 지부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재산을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영국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들의 사실 확인 소송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예수와 관련된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3년간 현지 답사하여 무덤까지 확인하고는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정의 주심 판사는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일부 기독교인들이 목을 매고 자살(自殺)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 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영국 기독교인들의 약 80%타종교로 개종(改宗)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일부 언론에서 보도를 하였고,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의 기독교는 엉뚱하게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동아일보, 입력: 1982.02.20일)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토리노 성의(聖衣)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세마포(細麻布)’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졌다. 국내에서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聖衣)1세기 때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공개 전시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聖衣)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Torino)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알로에 추출물)100(40kg)이나 준비한 것(요한 복음 19:40)도 반증(反證)하는 자료이다. . 땀 등에 의해 그대로 적셔져 있던 토리노 성의(聖衣)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감싼 세마포(細麻布)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10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聖衣)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0905일에는 토리노 성의(聖衣)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였고,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았었다. 토리노 성의(聖衣)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라는 것을 오히려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