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 개혁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후손 있다.

마도러스 2014. 2. 6. 11:14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후손 있다.

 

[동아일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 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 ‘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Jesus)는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었다.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하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 요셉(Joseph of Arimathea)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Pilatus)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演劇)을 하고는 그 뒤, 부활(復活) 연극(演劇)을 한 다음 로마 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와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Jesus)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Jesus)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Lazarus)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 교회를 세워 주교(主敎)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Jesus)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Merovinger)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 8개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Jesus) 혈족들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인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많은 예수(Jesus)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 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시대 성당 기사단의 지방 지부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재산을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영국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들의 사실 확인 소송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예수와 관련된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3년간 현지 답사하여 무덤까지 확인하고는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정의 주심 판사는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일부 기독교인들이 목을 매고 자살(自殺)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 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영국 기독교인들의 약 80%타종교로 개종(改宗)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일부 언론에서만 보도를 하였고,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의 기독교는 엉뚱하게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동아일보, 입력: 1982.02.20일)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토리노 성의(聖衣)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세마포(細麻布)’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졌다. 국내에서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聖衣)는 1세기 때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공개 전시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聖衣)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Torino)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알로에 추출물)을 100근(40kg)이나 준비한 것(요한 복음 19:40)도 반증(反證)하는 자료이다. 피. 땀 등에 의해 그대로 적셔져 있던 토리노 성의(聖衣)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감싼 세마포(細麻布)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聖衣)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09월 05일에는 토리노 성의(聖衣)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였고,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았었다. 토리노 성의(聖衣)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라는 것을 오히려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 2006.05월 전세계에 동시 개봉했던 영화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는 잘 알려진 대로 예수(Jesus)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와 결혼하였고, 예수(Jesus)의 후손(後孫)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내용을 통해 기독교 교리의 근간인 예수의 부활을 전면 부정해 논란이 됐다.

 

댄 브라운의 저작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는 예수(Jesus)와 막달레나 마리아(Mary Magdalene)의 결혼과, 예수의 후손 등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한 만큼 논란이 뜨거웠었다. 이와 관련하여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를 둘러싼 진실을 2006.04.08일 디스커버리 채널 ‘다빈치 코드 기밀 해제’가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와 ‘성혈과 성배’의 공동 저자 헨리 링컨, 역사 학자, 수학자, 성서 학자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다양한 고증을 통해 책 내용의 진실을 추적했다. 성혈과 성배 및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에 등장하는 설정은 메로빙거(Merovinger) 왕조가 예수(Jesus)와 막달레나 마리아(Mary Magdalene)의 후손이며, 시온 수도회는 그 후손들을 지키는 조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