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 개혁

★ 임진왜란 및 교회 역사의 불편한 진실

마도러스 2013. 12. 20. 11:00


★ 임진왜란 및 교회 역사의 불편한 진실

 

▶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k1gbWRhTV34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04월 13일, 기독교 군대가 처음으로 조선(朝鮮) 땅을 침략하던 날이다. 왜군(倭軍)의 배에는 십자가 깃발이 휘날렸다. 25만 왜군(倭軍)의 10%, 일본군 총수의 대부분은 기독교 원정대 즉 기리시단(吉利支丹)이었다. 조선인의 와 를 베고, 살 가죽을 벗기고, 인육을 먹던 기리시단(吉利支丹)은 십자가를 높이 들고 조선 땅을 행군했다. 7년간의 임진왜란 전쟁은 (神)의 이름을 가장한 한국판 십자군 전쟁이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기독교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신학 교수 김인규. 성결 교신 학교 논문). “임란(壬辰倭亂)은 주님의 특별한 배려이며, 일본 기독교(基督敎)를 지켜낸 승리의 역사이다.” (일본 관구장 고메즈의 비서 프란시스코 파시오. 1598 일본보).

 

유럽의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1,096-1,272)은 유럽 전역에 피바람을 불러왔다. “여호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모두 처형하라!” 십자군에게 지급된 면죄부는 천국(天國) 보장권과 경제적 보상이었다. 무차별 살상에 대한 그들의 죄의식은 오직 주님만이 용서하셨다. 이 후, 로마 제국의 역사는 기독교 선교를 구실삼아 각 지역의 민족 전통 말살과 횡포폭압강간살인 등을 일삼는다. 이 땅도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아편 시장 확보를 목적으로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朝鮮) 상륙을 시도하였다. 1846년 식민지 개척의 도구로 프랑스 선교사 함대가 진입했다. 1866년 미국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사건에서 총칼을 들고 행패를 부리던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순교로 둔갑되었다. 1868년 대원군(大院君)의 부친 남연군 묘지 도굴 사건에 선교사들이 앞장섰다.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미일 협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에 기독교 선교 자유를 보장하는 열강의 국제적 음모였다. 일제 식민 통치 시대에 보호를 받으며 친일 제국의 기독교는 번성의 꽃을 피웠다.

 

1985년 서울시 단군(檀君) 성전 건립을 기독교 목사들이 반대했다. 1980년 이후에는 단군(檀君) 동상의 을 자르고 장승 파괴 및 불상 파손의 만행을 저질렀다. 2007년 보수 기독교 뉴라이트는 민족 역사를 말살한 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2008년 기독교 목사와 그 신도들은 태백산 천제단(天祭壇)을 파손했다.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거주하며 당신의 모든 행동을 매일 낱낱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이 투명 인간은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특별한 죄의식 목록을 갖고 있죠. 만약, 당신이 10가지 중 한가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고통과 고뇌로 가득찬 아주 무서운 지옥(地獄)에 당신을 떨어뜨려 숨막힘. 화형 등으로 비명과 눈물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며 항상 돈(Money)이 필요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완벽하신 그분도 (Money)은 어찌 못하십니다.” (조지 칼린의 기독교 풍자). 

 

기독교는 종교 장사(壯士)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세금도 내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상 최고의 공공연한 끝내주는 거짓말입니다. “설교 시간 처음부터 졸기 시작해서 축도할 때 정신이 드는 성도! 헌금은 준비 않고 지갑 속에서 천원짜리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예수님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 헌금 천원짜리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그렇다면, 그들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땅 가운데 있는 모든 불교 사찰이 무너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007년 6월 4일 부산 기독교 청년 연합회). “믿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의 자식이라 하는 사람들을 지옥불에 던져 버리는 당신네들의 신(神)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나는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법정 스님). 잔인한 역사. 거대한 음모. 이 땅의 기독교! 그 불편한 진실.

 

■ 이순신과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

 

★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왜군(倭軍) 제1군 대장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대표적인 천주교 신자였다. 고니시(小西 行長)는 조선 땅을 밟은 후, 종군 신부(神父)를 데리고 행군했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서울시 절두산 순교(殉敎) 성지에 오다 쥴리아(Ota Julia)의 묘지가 있는데, 그녀는 조선(朝鮮) 왕족(王族)의 왕가 딸로 태어나 왜군(倭軍) 고니시(こにし) 장군에게 끌려가 도쿠가와 궁전 안에서 궁녀로 있으면서 일본 천주교 기리시단(吉利支丹)으로 개종하고 이름도 바꾸었다. 그녀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605-1637년에 걸친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천주교 박해 시대에 고오즈시마(神律島)섬에 유배당했고 그곳에서 절명했다.

 

일본은 천주교가 1549년부터 도입되었는데, 임진왜란(1592-1598) 전(前)인 1587년에는 20만 명에 이르렀고, 일본에서는 천주교인을 기리시단(吉利支丹)으로 불렀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 갔던 조선인 포로(捕虜)는 약 5만 명 정도였는데, 그 대부분은 일본 가정의 노비(奴婢)가 되거나 노예(奴隸)로 팔려갔으며, 멀리는 마카오. 마닐라. 인도 및 이태리에까지 끌려갔다. 임진왜란 중에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천주교와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그것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전쟁 중에 서양인 성직자가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고, 둘째는 전쟁 중에 잡혀 간 많은 조선인 포로(捕虜) 중에 상당수의 천주교 즉 기리시단(吉利支丹) 개종자가 나왔으며, 조선인 포로 중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자가 7천여 명이나 나왔다. 뒷날 포로 중의 일부가 귀국하였을 때 그 일부는 조선에 돌아와서도 은밀히 신앙 생활을 유지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순교(殉敎)에 이른 사람도 있다.

 

★ 다음은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의 글이다. “임진왜란(1592-1598)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순신하면 무조건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믿는 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합니다. 과연, 이순신이 고니시 장군(왜군 1군 대장) 보다 주님 앞에 떳떳할까요?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왜군 중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이었습니다. 그의 수하 군대는 늘 십자가 군기(軍旗)를 높이 들고, 조선의 전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조선군과 맞섰습니다. 이순신은 어떠했나요? 이순신(李舜臣)은 우리 주님의 군대 입장에서 보면 불신자요, 적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이순신(李舜臣)하면 무조건 영웅으로 존경합니다. 그가 과연 주님을 알았을까요? 믿음이 있었을까요? 그는 불신자(不信者)였으며, 주님 주자도 모른 지옥(地獄) 권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야합니다. 우리 나라 장군이라고 무조건 존경합니까?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용감하게 조선(朝鮮) 전장(戰場)에서 고귀한 희생을 무릅쓰고 피흘려 싸우신, 비록 왜군이셨지만, 참 주님의 종이셨던 고니시(こにし) 장군이 어떤 분이셨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고니시가 비록 왜장이지만, 순교(殉敎)로써 피를 흘리러 왔는데, 저희 조상들이 그에게 칼을 들이댄 것은 잘못한 것이죠!”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과연 그랬을까? 항상 주님 이름으로 전투에 임한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결국 패배했다. 그러나, 한번도 주님을 찾지 않은 이순신은 항상 승리했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地獄) 갔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웃기다. 이순신 장군은 정말 지옥 갔을까요? 어이가 없다. 그러면, 왜군(倭軍) 1군 대장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예수를 잘 믿어서 천당(天堂)에 갔을까?


★ 유럽 기독교인의 십자군(十字軍) 원정 때에는 인육을 먹었다. 산 사람을 불구덩이에 던져서 구워먹고, 어린 아이 시체를 나무 꼬챙이에 꽂아서 구워 먹었다. 그런 악마(惡魔)가 없었다. 십자군 원정의 실패 이후, 카톨릭 교회는 사회 불안이나 종교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12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마녀(魔女) 사냥을 했다. 교회 신앙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녀 취급했다. 900만 명 이상을 고문했고, 교수형에 처한 다음, 불에 태워 죽였다. 마녀는 대개 여성이었으나 남성인 경우도 많았다.

 

★ 천주교 신자 황사영(黃嗣永)은 1801년 청(淸)나라 북경 주교에게 밀서(密書)를 보냈는데, 그들이 신앙 자유를 얻기 위해 수백 척의 군함과 군사 5-6만 명을 조선(朝鮮)에 파병하여 조선을 정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조선 정부는 관련자들을 처형함은 물론 천주교(天主敎)에 대한 탄압을 한층 더 강화했다.


[교회에서 쉬쉬하는 기독교의 비밀들]

 

성모 마리아는 요셉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k1gbWRhTV34

 

 성모 마리아는 요셉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부인이 있었다.

 예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조작한 진짜 이유

★ 성경(Bible)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 성경(Bible)의 제작 과정 및 초창기 문서들

★ 성경(Bible)의 역사적 한계와 문제점

★ 기독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사 과정

★ 성경(Bible)의 역사적 오류와 모순들

★ 예수 어머니 마리아(Maria)는 동정녀가 아니였다!

   1) 페르시아의 미트라(기독교 600년 전)도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2) 인도 흰두교의 크리슈나(기독교 600년 전)도 십자가에서 부활했다.

   3) 이집트의 호루스(기독교 이전)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4)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조로아스터교의 표절?

   5) 부활절(Eeaster)행사는 토속종교의 모방?

★ 예수에게 부인 있었다! 4세기 문서 공개

★ 다빈치 코드와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 예수의 진짜 사명 (天命)과 예수의 실제 일대기

★ 예수 후원자와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 분쟁

★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민족신!

★ 아담의 첫 부인은 ‘이브’가 아니라 ‘릴리스’

★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1) 뱀이 이브(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겼는가?

   2) 아담과 이브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환생(還生) 단어를 교회 권위 때문에 삭제했다.

 기독교는 성공한 미신(迷信)일 뿐이다.

 통큰 협박!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

 과연 인류는 어떻게 진화(進化)해 왔을까?

■ 석가. 공자. 예수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 해방!

■ 인간은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임진왜란 및 교회 역사의 불편한 진실

 이순신과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

■ 마누라 및 와이프(Wife)의 유래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 옛말에 “물건을 도둑질하면 도적놈이 되고, 나라를 도둑질하면 왕(王)이 된다” 라고 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도둑질하면, 메시아(Messiah)가 되고 구세주(救世主)가 된다!" 라고 했다.

 

 성모 마리아는 요셉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이스라엘 왕족이었고, 이스라엘 다윗(David) 왕의 종손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Palestine)의 북부(지금의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방 나사렛(nazareth) 마을에 살았고, 목수 생활을 하며 살았다. 요셉(Joseph)은 나이가 아주 많아서 마리아의 아버지 나이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요셉(Joseph)은 이미 리디아(Lydia)와 리시아(Lysia)라는 두 딸이 있었고, 그들은 이미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였으며 홀아비였다. 

 

얼마 후, 그는 둘째 부인을 맞이하고자 하였다. 둘째 부인이 바로 나사렛 마을의 성모 마리아(Maria)이다. 예수의 아버지와 요셉(Joseph)과 둘째 부인 성모 마리아(Maria) 사이에 예수(Jesus). 야고보(James). 요셉(Joseph). 시몬(Simon). 유다 도마(Judas thomas)가 있었다. 성모 마리아(Maria)는 요아킴과 안나의 딸로서 갈릴리 지방 나사렛(nazareth) 마을에 태어났다. 나사렛 태생이라는 것은 그녀가 다윗(David) 왕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Maria)는 남편 요셉(Joseph)과 함께 인구 조사 때문에 로마(Rome) 제국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예루살렘 남쪽 베들레헴(Bet Lehem)으로 갔지만, 숙소를 구하지 못해 근처 마굿간에서 밤을 보내다가 거기에서 예수를 낳았다. 

 

당시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왕인 헤로데스 1세는 베들레헴(Bet Lehem)에서 유대인들의 왕(王)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Jesus)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Egypt)로 피신했다. 이집트(Egypt)로 도망쳤던 예수 가족은 헤로데스 1세가 죽자 나사렛(nazareth)으로 돌아와 예수가 30살 무렵이 될 때까지 그 곳에서 목수 일을 하며 살았다.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1) 요셉 둘째 부인 성모 마리아(Maria)와 6월에 약혼(約婚)했다. 요셉은 이스라엘 다윗 왕의 종손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부인 될 사람은 제사장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약혼(約婚)이 확정된 다음 3개월 후인 9월에 1차 혼인 선언을 하고, 12월 첫 보름 동안만 두 사람의 동침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해 9월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9월은 성스러운 기름 부음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2)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요셉은 제사장이 명령한 12월 초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에 약혼(約婚)을 하자 마자 곧바로 둘째 부인 마리아(Maria)와 동침을 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임신(姙娠)을 하게 되자 요셉은 몹시 난처했다. 쉽게 말해서 속도 위반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은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를 특별히 취급하도록 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잉태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잉태에 의해 태어났다고 발표하게 된 것이다.

 

3) 2세기나 그 이전에 씌여진 것으로 알려진 ‘유아(幼兒) 복음서’는 예수가 아주 어렸을 때의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어린 예수가 아주 영리했지만 난폭하고 버릇이 없고 신경질이 대단히 심한 어린이였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심기를 건드린 다른 아이를 죽인 일도 있었고, 자기의 가정 교사를 죽도록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경을 만드는 목적을 예수의 신격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의 어린 시절이나 혈통 관계는 성경의 기록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이 완전히 삭제되었다.

 

4) 신약 성서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거치면서 주교와 장로들에 의해 기록이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교회 이익을 크게 해치는 내용은 외경(外經)이라고 하여 구분하여 처리하였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1) 1886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아리마테아 요셉(Joseph of Arimathea)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가를 받아 예수를 장사지냈다. 하지만, 예수가 십자가 처형 후에 들어갔던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의 정원이었다. 그리고, 아리마테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의 조작극(造作劇)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예수(Jesus)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야곱다윗의 후손이며,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추구한 것은 바로 유대민족의 메시아(Messiah)가 되는 일이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 추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대의 신화와 종교에서 언급되는 십자가 부활(復活)이라는 조작극이 필요했고, 유대인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믿게 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다.

 

2) 성경을 보면, 예수가 로마 (法)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전혀 없었다. 만약, 유대인들이 예수를 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유대인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로마 사형법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원래 로마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 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 두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십자가에서 풀어 주었다.

 

3) 예수는 인도와 티벳 및 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醫術)을 배우고, 고전(古典)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만민 평등을 주장하며 유대 민족 메시아 행세를 하고 다녔다. 유대인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루살렘 유대인 자치 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유대인 집권층과 로마 당국은 그들 권익에 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 총독을 돈으로 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Joseph of Arimathea)과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갔고, 예수는 자기가 원하는 조작극(造作劇)을 부탁했고, 결국 무사하게 살아 날 수 있었다.

 

4) 마가 복음 15장 44절,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 요한 복음 19장 32절, “로마 형리들이 예수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을 때,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예수의 다리가 부러뜨려지지 않은 상태로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었다.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했는데,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에 묶여졌을 때, 예수는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한 상태로 죽은 척 하였다. 이렇게 적절하게 죽은 예수는 미리 준비된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다.

 

5) 마태 복음 27장 60절, “이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Joseph of Arimathea)의 개인 소유이다.” 누가 복음 23장 49절, “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목격하게 한 십자가 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造作劇)이었다.

 

6) 예수는 십자가 처형의 조작극(造作劇)을 꾸밈으로써 유대인 집권층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었고 동시에 유대인 메시아(Messiah)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테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 무덤에 안치시킨 후,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3일 후, 그는 가까운 소수 몇 사람에게만 나타났다. 결국, 예수는 모든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復活)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와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가 진짜로 부활했다면 분명 여러 대중들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며 당당하게 설파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일의 신학자(神學者)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이 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부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의 결혼(結婚)이나 그의 성(性)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하지만,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랍비(rabbi, 율법사)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랍비 훈련은 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결혼을 한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예수가 결혼(結婚)했었다는 사실은 매우 자명(自明)한 일이다. 특히 유대인의 풍습을 보면 성인이 되면 결혼(結婚)은 당연한 사회 조건이었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뿐 아니라, 심지어는 독신 생활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었다.

 

누가 복음을 보면, 예수가 선교 활동을 하는 초창기인 갈릴리(galilee)에 있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예수와 동행하여 유대아(judaea 팔레스티나) 지방까지 함께 동행했다고 한다. 예수 당대의 풍습으로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이 혼자 한 남자와 함께 동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서 보면,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는 사도 베드로(Peter)와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는 좋지 않은 대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성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종교 의식을 담당하는 사원(寺院)의 여자 따위로 표현했다. 마가. 마태. 요한 등의 세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가 예수 옆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무덤에서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알려준 상대도 막달라 마리아였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는 독특했다.

 

당대 유대인의 풍습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극심했었다. 물론, 지금의 이스라엘 여자들도 그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부인이면서도 제대로 대접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사도들의 마음에 항상 걸리는 존재였다. 성경의 기록에서 특히 그녀는 외면당하고 있다.

 

 예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조작한 진짜 이유

 

1) 역사적으로 예수 사망 이후 4세기(A.D 300년)까지 예수 생일 01월 6일이었고, 그 날 생일 잔치를 했다. 기독교를 최초로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종교를 바꾼 사람이다. 그는 313년 기독교(基督敎)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그래서, 초기의 기독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신앙의 교리나 의식. 제도. 관습 등을 대부분 모방했다.

 

2) 원래, 태양신을 믿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는 12월 25일은 곧 축제일이자 조로아스터(Zoroaster)의 생일이었다. 12월 25일은 동지(12월 22일)를 지나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다시 부활(復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날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부활절(復活節)이었다. 결국, 예수님 생일을 페르시아의 지방의 축제일을 모방(模倣)하여 12월 25일이라고 했고, 353년, 로마 교황 리베리우스(Liverius)는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제도화시켰다.

 

3) 이집트의 호루스(Horus)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太陽神)이며, 오시리스의 아들이다. 호루스(Horus)는 12월 25일 동굴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30살 때 세례를 받았고, 12제자가 있었다. 그는 기적을 행했고, 죽은 자를 살렸으며, 물위를 걸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무덤에 묻혔고 부활했다. 초창기 기독교 교부들은 “옛날에는 신화에 지나지 않던 형상들이 우리 구세주 예수 안에서 되살아난다.” 라고 말했다. 이같은 표현은 성경의 내용이 옛 신화에게서 모방(模倣)해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 원래 석가 탄신일도 음력 04월 08일이 아니다.

 

원래, 석가(釋迦) 탄신일(誕辰日)은 음력 02월 08일이다. 석가모니는 북인도 카필라 왕국(네팔)의 왕 슈도다나(uddhodna)와 마야(My) 부인 사이에서 BC 563년 음력 02월 08일 태어났다. 그런데,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04월 0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음력 04월 08일은 지금의 음력 02월 08일과 같다. 그러므로, 석가(釋迦) 탄신일(誕辰日)은 음력 02월 08일이 맞다. 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 불교 대회에서는 양력 0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석가 탄신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음력 04월 08을 석가 탄신일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국제 연합은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 불교 대회 안건을 받아 들여 양력 0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석가 탄신일로 정해 기념 행사를 하고 있다. [내용 출처 : 두산 백과 사전]

 

★ 성경(Bible)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성경은 B.C 1,500년에서 A.D 100년까지의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구약(舊約) 성경은 유대교의 가르침이고 신약(新約) 성경은 예수(Jesus)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이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 성경(Bible)의 제작 과정 및 초창기 문서들

 

지금의 성경은 313년에서 325년 사이의 12년간의 세월에 걸쳐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재조합해서 쓰여진 것이다. 예수의 기록은 마가복음(A.D 60년대), 누가복음(A.D 80년대), 마태복음(A.D 85년대), 요한복음(A.D 100년대)이 전부이다.

 

12-24세의 예수가 인도, 티벳 등 동양으로 건너가 동양의 진리를 습득했다는 기록은 교회와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내용은 삭제해서 기록했다. 신약 성서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거치면서 주교와 장로들에 의해 기록이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교회 이익을 크게 해치는 내용은 외경(外經)이라고 하여 구분하여 처리하였다.

 

복음서는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복음의 네 권을 말하고,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을 말한다. 마가복음은 서기 60년경 희랍과 로마인을 상대로 로마에서 씌여진 책이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거나 진압되어 유대인들이 처형을 당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로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씌여진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은 서기 80년경 희랍인 의사였던 누가(Luke)가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 시자리아(Caesarea)에서 로마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쓴 책이다. 마태복음은 서기 85년경 희랍어로 희랍풍으로 씌여졌지만, 절반 이상이 마가복음에서 직접 빌려온 내용이다. 마태는 팔레스타인 출신 피난민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를 예수의 제자 마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은 서기 100년경 에페수(Ephesus)라는 한 희랍의 도시에서 씌여진 책이다. 그런데, 요한이 썼다는 사실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은 가장  신빙성이 있고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성경(Bible)의 역사적 한계와 문제점

 

종교와 권력이 결탁하면서 기독교 교회는 환생(還生)의 낱말을 이단으로 내몰았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영혼의 구원 및 해탈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로마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을 삭제하였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성경을 제작하면서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에 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문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하였다. 그러나, 완전 삭제할 수는 없었다. 요한 복음(1:21)에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의 환생이냐'고 묻는다. 마가 복음(8:27-28)에서도 제자들은 예수가 엘리야의 환생인지, 세례 요한의 환생인지, 다른 선지자의 환생인지를 논의했다. ‘요한의 비밀서’에서는 영혼이 계속해서 환생(還生)하며, 환생은 곧 족쇄를 차는 것이라고 했다.

 

성경의 역사에는 중국이나 한국, 또 다른 대륙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고, 전 지역을 상대로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유대인의 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예수(Jesus)의 행적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를 억압하고 재판했으며, 사람은 환생(還生)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지오다노 브루노(Giodano bruno) 같은 사람을 불태워 죽였다.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이단들을 마녀 사냥이란 미명(美名)아래 처형했다. 기독교의 틀을 벗어나면 마녀(魔女)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전성시기에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부터 이집트까지를 영토로 만들었으며 고대 희랍 지역(유럽)은 차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586년 페르시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후, 로마 제국 시대에 유대인 민족의 메시아로서 예수가 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이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예수 이 후 로마 제국은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만 들어도 잡아 가두고 죽였다.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는 네로(Nero) 황제 때 극에 달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이후의 역사는 반대로 크리스천들의 이방인과 합리적 사상가들에 대한 억압과 박해로 점철되어 왔다.

 

성경은 또한 수학, 과학, 철학, 심령학, 고고학, 인류학 등 많은 현대의 학문과 합치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6,000년으로 못 박아 놓고 있다. 아담(Adam)과 이브(Eve)는 6,000년 전의 역사 인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Eden) 동산에 살 때, 에덴(Eden)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기독교(基督敎) 교회에서는 가르친다. 실제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들을 계속 발굴해 내고 있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 보다 먼저 수많은 인류가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주인 바티칸에서는 수학을 몹시 싫어하여 계산하는 산수(算數)의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의 수학(數學)을 공부하는 것을 무척 꺼려했고,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일이라 하여 생각조차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뉴튼 (Isaac newton)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重力)이라는 자연법칙을 찾아냈을 때에야 겨우 (零)의 관념을 허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零, zero)을 수학이나 철학의 중요한 인자(因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지하로 들어가야만 했다.

 

한편, 현대의 신학자들은 세례(洗禮)의 목적에 대해 비관(悲觀)해 하며, 세례의 효과와 결과에 대해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교회에 가서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렸다고 천당에 갈 자격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물 몇 방울을 뿌리지 않았다고 죽은 후 평생 지옥에서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신학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초창기 미국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크리스천들은 그 사람이 잉태한 요일과 같은 요일에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은 일요일에 성교를 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성교로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부정을 타는 일이라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 기독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사 과정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곧 하나로 똑같다.”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진리 왜곡의 표본이다.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였다. 우선 성경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나 어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이 즐겨쓰는 언어는 인자(人子)이다.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인자가 말하노니” “진실로 인자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라고 예수는 말하곤 했다. 2세기 중엽부터 로마에서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가 쇠퇴하고, 기독교가 중.상류층까지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후 로마 교회에서는 예수가 인간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동등한가? 라는 논쟁이 일어났고,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분열된 국론을 규합하고, 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강력한 교리가 필요했다.

 

서기 313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교회의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서기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처음 사용했고, 서기 325년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제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 지위를 격상시켜야 하므로 “예수는 하느님과 같다” 라고 일방적으로 의결했다.

 

그 후, 악의 폭군 “테오도시우스 1세 (Theodosius,서기347~395)”는 제 2차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신관(神觀)”을 확정한다. 강력한 로마 제국 건설을 위해 소모적인 종교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론(國論)을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로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며, 예수님이 곧 하느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힘의 논리로 사람이 만든 것이며, 사람이 의결해서 확정지어 놓은 것이다. 그런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른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당연시 하고, 처음부터 삼위일체라는 관념이 있었던 것처럼 여긴다.

 

★ 성경(Bible)의 역사적 오류와 모순들

 

기독교의 성경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혹은 절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여러번 고쳐졌다. 그래서, 기독교의 성경은 여러 가지 모순(矛盾)들과 잘못된 오류(誤謬)들이 존재한다. 다음은 그 중에서 기록(記錄) 상의 오류만 발췌(拔萃)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첫째예수의 탄생 시기에 대한 기록의 불일치이다. 누가복음(1-7)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 (after) 6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2:1-23)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 (before) 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자간에 예수 탄생 시기가 무려 12년이나 차이가 난다. 누가복음(1-7)에서는 아구스도의 호적령과 인구조사 때, 즉 기원 (after) 6년에 예수가 탄생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2:1-23)에서는 헤롯 왕(기원전 4년에 죽음)이 죽기 2년 전, 기원 (before) 6년에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째예수의 탄생 장소에 대한 기록의 불일치이다. 마태복음(2:11)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house)으로 기술하였고, 누가복음(2:7)에서는 마굿간(stable)으로 기술하였다. 마태복음(2:11)에서는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라고 하여,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house)으로 기술하였으나, 누가복음(2:7)에서는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마굿간의 먹이통)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여인숙)에 있을 곳이 없음이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마굿간(stable)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한 곳에서는 집(house)로 기록하고 있고, 다른 한 곳에서는 마굿간(stable)으로 기록하고 있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세째, “예수 마지막 한 말”의 불일치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다 이루었다.” 라는 말만 하고 머리를 떨어 뜨렸다라고 기록 하였고, 마태복음에서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기록하였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기록하여 서로 각각 다르다.

 

네째, “예수가 처형된 날짜”의 불일치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처형된 날짜를 “유월절 전날”로 기록하고 있으나, 마가.마태.누가복음에서는 “유월절 다음날”로 기록하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다섯째, 예수의 12-24세간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신기할 정도로 공백 상태이다.

 

여섯째, 예수의 모친이었던 마리아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성경은 예수가 죽은 후 300년이 지난 후에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에 대한 자료와 문서를 모두 수집하려는 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후에도, 성경은 종교 권력자들의 뜻에 따라 여러번 변형되었으므로, 신비로운 거짓말을 보태기도 하고, 절대 권력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내용을 삭제하기도 하였다.

 

★ 예수 어머니 마리아(Maria)는 동정녀 아니였다?

 

예수(Jesus)가 동정녀(童貞女)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많은 처녀들을 두고, 남편(요셉)이 있는 성모 마리아(Maria)를 택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전혀 있을 수 없는 얘기이다. 성경의 내용들은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가나안, 시리아고대 희랍 등의 신화들 중에서 모방해 왔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고대 신화들을 모방한 것이다. 흰두교의 크리슈나(Krishna)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메소포타미아 조로아스터(Zoroaster)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이브의 어머니 소피아(Sophia)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희랍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고대 신화나 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그래서 “예수(Jesus)가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 라고 둔갑시켜 놓았다. 고대 신화나 고대 종교를 모방한 것이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제국 당시, 중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하면서 기독교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다. 초창기의 기독교 교부들은 “옛날에는 신화에 지나지 않던 형상들이 우리 구세주 예수 안에서 되살아난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모방의 근거를 신비로운 표현 속에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같은 표현은 성경의 내용이 옛 신화에게서 모방해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 페르시아 미트라(기독교 600년 전)도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페르시아의 미트라(Mitra)는 12월 25일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해서 일어났다. 미트라가 부활한 날에 미트라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은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되었다. 미트라(Mitra)의 기원은 고대 인도. 이란의 민족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미트라 숭배는 B.C 3세기경에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페르시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자연히 로마로 전파되었다. 고대 신화나 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예수의 동정녀 출산도 마찬가지이다.

 

죽어서 부활하는 신인(神人)의 고대신화가 있는데, 이 신인(神人)은 지역에 따라 미트라(페르시아), 오시리스(이집트), 디오니소스(그리스), 아도니스(시리아), 바쿠스(로마)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 졌다. 오시리스 그리고 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神)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처녀(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그들은 세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奇蹟)을 보였으며,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부활절(復活節) 무렵에 죽었으며,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復活)했다고 한다.

 

2) 인도 흰두교의 크리슈나(기독교 600년 전)도 십자가에서 부활했다.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두 번째로 추앙받는 위격의 성자(聖子)이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크리슈나(Krishna)는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스스로 태양신을 숭상했으며,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통속종교를 창도(唱導)했다.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크리슈나의 탄생을 지켜봤다고 한다. 크리슈나(Krishna)는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갠지스강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슈나는 나무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는 그를 죽인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으로 불리워졌으며 구세주로 불리워졌다. 그는 흰두교의 삼위일체 가운데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으며, 나환자와 맹인, 귀머거리를 치료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2,600년 전의 크리슈나의 행적(行蹟)을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보인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의 생명이며, 세상을 떠받치는 자이며, 세상의 길이며, 그 피난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사물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삶을 여러 번 반복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하고, 너희들도 삶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삶을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3) 이집트의 호루스(기독교 이전)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이집트의 호루스(Horus)는 고대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神)이며, 오시리스의 아들이다. 호루스(Horus)는 12월 25일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30살 때 세례를 받았고,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기적을 행했고, 죽은 자를 살렸으며, 물위를 걸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무덤에 묻혔고 부활했다. 호루스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메시아로 칭송되었다. 아들로서의 '유아(幼兒) 호루스'는 아기 예수의 원형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고대(古代) 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행적(行蹟)을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보인다.

 

4)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조로아스터교의 표절?

 

유대인들이 중요하고 성스럽다고 여기는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토요일보다 일요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래 일요일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관습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 조로아스터교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 이전 (기원전) 약 600년경에 페르시아에 “조로아스터” (Zoroaster, B.C 628-551)라는 현인(賢人)이 있어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서양문명의 한 근원을 이루는 중요한 신앙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조로아스터는 12월 25일 동정녀(童貞女) 처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復活)했다. 그가 부활한 날에 페르시아의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 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된다.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생긴 것은 예수 이후 300여년 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지하조직으로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와는 본질과 진리의 틀이 완전히 달랐었다. 

 

5) 부활절(Eeaster)행사는 토속 종교의 모방?

 

부활절의 축제일은 원래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모두 파간(pagan) 토속종교에서 얻어 온 것이다. 그래서, 그 날짜가 매년 변한다. 파간의 부활절은 3월 21일 춘분(春分)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지난 후에 첫 월요일을 부활절이라 한다. 토속종교를 크리스천들은 이단이라고 했고, 그들을 파간(Pagan)이라고 했다. 파간은 원래 파구스(pagus, 시골사람)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파간(pagan)의 부활절은 음력 달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월요일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변형하여 일요일로 하였다. 토속종교인들은 월요일을 중시하며 월력(月曆)인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페르시아의 태양신(男神) 종교를 모방하여 일요일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주일을 일요일로 바꿨다. 춘분(春分)부터 부활절이 되는 일요일까지의 기간은 에오스트라 여신(Eostra, 라틴어,땅의 여신)의 배란기로서 임신하는 기간이었다. 가나안 지방에서 입춘(立春)이 되어 비가 오는 때에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이 임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임신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여 성교를 위한 축제를 했던 풍습과 마찬가지인 신앙이다.

 

또한, 부활절 때 계란에 붉은 색을 칠하는 것이 관례인데, 서양의 전설에서는 계란은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과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절 때 특히 동구 유럽에서는 계란에 붉은 색을 많이 넣어 아름답게 칠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 사후 약 500년간의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기독교인 (특히 gnosis파)들이 인간의 환생 윤회설을 자유로이 신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예수에게 부인 있었다! 4세기 문서 공개

 

예수(Jesus)가 ‘나의 아내’를 직접 언급한 것을 기록한 4세기 콥트어(Coptic language) 문서가 2012.09.12일 국제 학회에 정식으로 보고됐다. 예수(Jesus)가 결혼해 자신의 아내를 제자로 삼고, 자녀를 낳았다는 설은 그동안 각종 성경 외경과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 등에서 제기한 적이 있지만, 예수가 ‘아내’를 언급한 것이 기록된 문서가 학계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 타임스(NYT), 보스턴 글로브, 하버드 대학 매거진은 초기 기독교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캐런 L 킹(58) 하버드(harvard) 대학 신학부 교수가 2012.09.1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 콥트 학회에 4세기 콥트어(Coptic language)로 작성된 파피루스(papyrus) 문서 파편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킹 교수는 ‘예수 아내의 서(書)’로 명명한 이 문서 파편의 콥트어 텍스트를 해독한 결과, “예수(Jesus)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내(Wife)’…”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럴 만하다” 등의 내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 문서를 “예수(Jesus)가 자신의 아내(Wife)를 지칭한 현존하는 유일한 텍스트”로 평가했다.

 

★ 다빈치 코드와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책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지음)’에서는 ‘예수(Jesus)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와 결혼해 자식을 두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국내에서 2004년 6월에 번역 출간된 뒤, 20주 이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물 정도로 인기가 있는 파격적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vinci)는 예수의 숨겨진 비밀을 지켜 온 시온(Zion) 수도회의 멤버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후세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최후의 만찬(IL Cenacolo)은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직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분명 예수와 12명의 제자만 등장해야 할 장면에 웬 여자가 등장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제자가 여성으로 그려졌다.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이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이다. 수염이 없는 갸름한 얼굴, 흰 피부와 긴 머리가 여성의 모습이다. 더욱이 예수(Jesus)는 붉은 겉옷에 푸른 망토를 걸쳤고,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는 푸른 겉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전통적인 부부(夫婦)의 의복(衣服) 차림으로 입혀져 있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놓음으로써,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의 오른쪽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Peter Simon)'이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를 향해 위협적으로 몸을 기대며 손을 마치 칼날처럼 펴서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이를 예수가 자신의 후계자로 마리아를 지명한 데 대해 베드로가 반발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여성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이었다. 사도 요한은 12명의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미소년이었다.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도 언제나 예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예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의 한 기록인 ‘빌립 복음(Gospel of Philip)’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아내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기독교 교회를 세우라고 지시를 내린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다. 베드로는 그 일에 불만을 가졌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실질적인 증거인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를 묻어버리기 위해 그녀를 창녀로 덧씌우고, 예수가 그녀와 결혼한 증거를 은폐시켰다.

 

★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예수가 죽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만 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야고보서(Book of James)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인데, 그도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성령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의문과 모순 투성이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다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쓴 글이기 때문에 모두 똑같다는 교회측의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룡이나 아틀란티스문명아즈텍 문명고대 4대 문명지구와 인류의 역사북극과 남극의 유래우주와 천체 등의 이야기는 성경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형태로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성경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고, 마음에 들지않는 진실들은 성경의 내용에서 삭제되어 졌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 예수의 진짜 사명 (天命)과 예수의 실제 일대기

 

예수는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이 보내신 인간 성자(聖子)이며, 천명(天命)을 받으신 분이다. 예수는 어린시절 목수 일을 했고, 아버지 일을 도왔으며,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이 때 인도의 오릿사 지방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나라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던 차에, 성전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명석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님을 만나 인도 유학을 주선한다 (성약성서 21:1-20).

 

예수는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제자가 되고 4년 동안 수행한다. 다시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배우기 위하여 당시 인도 최고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한다. 예수는 유대의 시편과 예언 시를 읽고, 베다경전, 페르시아의 아베스타 경전, 석가 부처님의 지혜를 읽었다. 예수는 인간평등을 주장하다, 인도의 신분제도(카스트) 제도를 파괴한다고 해서 인도 승려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네팔로 피신한다.

 

예수는 다시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에서 티벳의 수많은 고전(古典)을 공부한다. 그 후 24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페르시아에 들러서 24년 전 자신을 찾아준 마기교 승려인 동방박사 3인을 만났다. 25세가 되어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에 입회한다. 이집트에서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태양계 바깥세계의 비밀, 생사의 문제 등등을 공부하고 거기에서 “그리스도” 라는 최고의 법명을 받는다. 그 후 다시 인도로 건너가 승려가 되어 수도생활을 한 후, 29세가 되어 티벳을 거쳐 귀국한다.

 

유대나라에서 예수는 인간의 절대 신성과 인간 평등과 신의 사랑을 전파한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가 추구한 것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받게 되었다.

 

이 때, 예수는 예수와 전혀 적대관계가 없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연극을 꾸미고 그럼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었다. 동시에 유대인의 메시아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 예수 후원자와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예수가 어렸을 때 죽었다. 요셉이 죽은 후 어린 예수를 교육시키고, 예수의 경제적 뒷받침을 해준 사람은 아리마태아 요셉(Arimathea Joseph)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묶이어 죽었을 때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왕릉 형태의 무덤에 안치시킨 후 모든 뒷바라지를 다했고 예수를 소생시킨 사람도 바로 그였다. 예수의 가족을 피신시켜 끝까지 돌보아 주고 그리스도교의 창설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수가 죽은 후 300년 후에 쓰여진 기독교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왜곡하여 그를 예수의 제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원래 유대인으로서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유대인이 많이 사는 예루살렘에 근거를 두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 갑부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영국의 주석과 납광산을 비롯하여 중동지방과 인도지방에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이었고, 로마제국의 무기제작에 필요한 철 자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로마의 상원의원보다 높은 직위도 부여 받았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의 의원이었다.

 

예수의 사형 언도 이 후, 로마 당국과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의 명령에 의하여 예수의 가족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이 때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마리아(예수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예수 부인), 예수의 유모 등의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그리고 본인은 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에게 체포되었고, 나중에 부하 직원들에 의해 구출되어 영국에 정착하였으며 거기에서 큰 성당을 짓고 선교사업을 벌였다. 이 때의 그리스도교의 신도들을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 할 때, 이미 영국에 나름대로 크리스천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이 서기 196년경에 크리스천이 되기 시작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영국이 먼저 크리스천화 됐다는 기록이 있다.

 

★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 분쟁

 

유대인의 경전에 의하면, 아브라함(B.C 2,000년경)은 사라(Sarah)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사라(Sarah)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아브라함(Abraham)은 이집트 출신의 종(從)인 하갈(Hagar)과 동침하여 이스마엘(Ishmael)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라(Sarah)도 임신하여 이삭(Isaac)을 낳게된다. 그 후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가 낳은 이삭이 적자(嫡子)임을 주장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한다.

 

나중에, 이삭(Isaac)에게서는 “유대족”이 나오고, 이스마엘(Ishmael)에게서는 “아랍족”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에게서 나온 아랍족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로부터 2류 민족으로 취급되었다.

 

서기 570년경, 마호메트가 나타나서 아랍 민족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이슬람교(회교)를 창도(唱導)하였다. 마호메트는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박해받는 아랍족의 무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유대인과 기독교에 대한 아랍 이슬람교의 반목은 계속되었다. 중동(中東)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아브라함(Abraham)의 적자(嫡子) 자손인 유대인과 서자(庶子) 자손인 아랍 민족 간의 분쟁이며, 역사적으로 4,0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민족신!

 

유대인의 초창기 민족신은 “(El)”이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Mose)”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규합하여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해방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신의 이름을 여호와(Jehovah)라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여호와”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느님을 재인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호와(Jehovah)는 창세기 첫 장부터 나오지 않고, 출애굽기에서 부터 (구약성서 3:15) 등장한다. 여호와(Jehovah)는 유대민족의 전쟁신이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복수하도록 지시한 자가 바로 여호와이며 (출애굽기21:23-25), 끔찍한 살인을 예사로이 지시하고, 여인을 강제로 탈취하여 동침까지 한다. (민수기 31:25-40). 여호와는 사람까지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고, 유대민족에게 다른 민족을 침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할 것을 지시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신(神)이다. (사무엘기상 15:2-3, 신명기 17:2-5, 19:1, 민수기 15:32-36, 출애굽기 21:20-21, 22:18, 22:20, 레위기 20:27).

 

★ 아담의 첫 부인은 이브가 아니라 릴리스

 

‘유대인 신화’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을 빚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동시에 만들었고, 남자는 아담(Adam), 여자는 릴리스(Lilith)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릴리스는 성교(性交)를 하면서 곧 싸움을 시작하였다. 릴리스는 아담 밑에 깔리지 않겠다며 꼭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나는 너보다 윗 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라고 대꾸했으나, 릴리스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등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라고 하면서 조물주에게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욕지꺼리를 하면서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아담은 이 사실을 하느님에게 보고했다. 하느님은 3명의 천사를 보내 릴리스를 데려 오도록 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아담에게 돌아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릴리스는 천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귀 사탄들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유대인 풍속에 릴리스는 밤의 마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릴리스를 포기한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담에게 절대 복종하는 여자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담(Adam)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고 "이브(Eve)"라고 하였다. 유대인의 문화에는 이런 신화 때문에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구약(舊約)성서, 창세기에서는 “아담(BC 4004년 탄생)이 잠잘 때에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기록은 자연의 이치(天理)를 거역하는 선천(先天)시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낡은 세계관의 전형적인 궤변(詭辯)이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천지만물의 조화 기운과 음양의 조화 기운을 받아서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생겨났다고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 갈비뼈가 여자 갈비뼈 보다 숫자가 하나 적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 갈비뼈는 12개씩이다.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때 이런 남성 우월적인 신화가 마음에 들어서 성경 속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야 한다” 라는 사상을 집어 넣었다.

 

한편, 초기 그리스도교의 그노시스(Gnosis) 학파에서는 합리적 이성과 개인적인 수행 및 참선(參禪)을 중요시 여겼는데, “그노시스(Gnosis)” 학파에서는 구약성서 혹은 유대인 신화와는 달리, 『여자는 신(神)을 이해하는 영(靈)을 가졌고, 남자는 신을 이해하는 영(靈)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주어야 하며, 남자는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준 여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1) 뱀이 이브(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겼는가?

 

성경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서 뱀이 이브(Eve,여자)에게 유혹을 걸어 죄악의 씨를 전염시켰고, 그 후 여자 때문에 이 세상이 오염되고 혼란과 파괴의 아수라(阿修羅)장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왜 여자에게만 모함(母艦)과 누명(陋名)의 화살을 던지는 것일까? 창세기 1, 2장은 제사문서(priest writing)라고 불리우며, 서기 전 400년 전후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 때는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모두 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실의(失意)에 잠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왜 해야 하고, 왜 망했는지 대해 스스로 자탄(自歎)하던 때였는데, 이런 심리 상태에서 희생(犧牲)제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여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바로 “여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2장)에 의하면, 태초에 하느님이 인류의 시조 아담(Adam)과 이브(Eve,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였는데,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는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각종 나무가 울창하였으며, 들에는 짐승이 뛰어 놀고, 하늘에는 새가 날았다. 여기에서 강이 발원하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비손. 기혼의 4개 강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하느님이 창조한 것으로 아담에게,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좋으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에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가르쳤으나, 아담(Adam)은 아내 이브(Eve,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결국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고 그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과연, 구약성서 창세기(2장)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까?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아담은 그날 죽지 않았고, 아담은 계속 살았다고 한다. 역사적인 자료 의하면, 이런 내용들은 한낱 거짓된 내용에 불과하다.

 

2) 아담(Adam)과 이브(Eve)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기독교에서는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담(B.C 4004년 탄생)과 이브는 지금부터 60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기독교의 얘기처럼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인류의 역사는 6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도 나온다. 서로 모순된다.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을 들춰 내고 있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지상에 출현했고, 약4만년 전~약1만년 전까지 구석기 문화를 형성하고,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약 390-290만년 전에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고, 약 250-150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으며, 이 때, 구석기의 전기(前期) 문화가 등장했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 채집을 하며 살았었다. 약 150~5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가 출현했으며, 약 2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네안델탈인자바인베이징인이 여기에 속한다. 약 4만년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슬기사람)”가 출현했다.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거의 똑같다.

 

현생 인류는 약 4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를 이룩하였다.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 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 환생(還生) 단어를 교회 권위 때문에 삭제했다.

 

기독교 종교와 정치 권력이 결탁하면서 기독교 교회는 환생(還生)의 낱말을 이단(異端)으로 내몰았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영혼의 구원 및 해탈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로마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을 삭제하였다.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325년 성경을 제작하면서 윤회(輪廻) 및 환생(還生)에 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325년 로마 니케아(Nicaea) 공의회 이후, 모든 문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했다. 그러나, 완전 삭제할 수는 없었다. 요한 복음(1:21)에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Elijah)의 환생(還生)이냐?' 라고 묻는다. 마가 복음(8:27-28)에서도 제자들은 예수가 엘리야(Elijah)의 환생(還生)인지, 세례 요한(John)의 환생(還生)인지, 다른 선지자의 환생(還生)인지를 논의했다. ‘요한의 비밀서’에서는 영혼이 계속해서 환생(還生)하며, 환생은 곧 족쇄를 차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영혼은 환생(還生)을 통해 이미 여러 세상을 거쳐 왔으며, 최종 완성에 이를 때까지 또 다른 여러 세상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영혼은 지난번 생애에서의 인연(因緣)으로 인해 강화되거나 약화된 상태로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 환생(還生)은 자기의 후손(後孫)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다. 선업(善業)을 많이 쌓은 집에는 반드시 이후에 경사(慶事)가 따른다. 어떤 조상이 어떻게 환생을 하는가? 친가(親家)나 외가(外家)를 포함해서 자기 가족의 조상이 주로 후손(後孫)으로 다시 환생(還生)을 한다. 때로는 국경(國境)을 건너 다른 나라에 환생(還生)하기도 한다.

 

4대(代)가 지난 다음에 환생을 하는데, 때로는 그 보다 일찍 환생(還生)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이 맺은 인연(因緣)과 인망(人望)에 따라 이뤄진다. 그래서, 인맥과 인연(因緣)은 언제나 중요하다. 수많은 세월을 경험하여 진화(進化)해 온 자기 자신 혹은 인연 맺은 사람의 유전자(遺傳子)로 유전된다.

 

■ 기독교는 성공한 미신(迷信)일 뿐이다.

 

기독교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해 왔다. 그러하다가 과학이 우세해지면, 돌연 과학에 빌붙게 되는 그런 존재였다. 지동설(地動說) 부정하다가 증거가 확실하니까 인정했다. 중력(重力)의 법칙을 부정하다가 결국 이것도 신이 만든 것이라고 우겼다. 진화론(進化論)을 부정하고 창조론(創造論)을 주장하다가 증거가 확실하니까 진화는 신이 시킨 것이라는 지적 설계론을 주장했다.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를 억압하고 종교 재판받게 했고,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참으로 뻔뻔하고 가혹한 종교가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인격적 가르침보다는 신에 대한 믿음을 더 강조하고 면죄부(免罪符)를 준다. 따라서, 믿기만 하면 용서함으로써 죄인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기독교는 AD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때에 국교(國敎)가 되고, 교회가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은 종교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의 통치 수단으로 삼았다. 종교가 부패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개신교까지 이어진 것이다. 영국 성공회의 부패와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총과 천연두로 학살하면서 자신들의 죄악의 폭을 넓혀갔다. 끊임없는 제국주의 선봉에 선교사가 있었고, 각종 식민지 약탈과 노예 착취는 정당화되었다. 왜냐면,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선택받은 면죄부(免罪符)를 받은 선지자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기복(祈福) 신앙과 잘 맞물렸다. 그리고, 개화(開化) 물결과 연결되어 서양 문화 숭배(崇拜)의 사회 구조를 더욱 공고히 했다. 특히, 여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물량적인 공세를 하며 정착한 기독교는 지배적인 권력이 되었다. 교회를 크게 짓고 신도수를 늘리고, 헌금(獻金) 액수에 따라 믿음도 능력의 크기도 달라졌다.

 

모든 종교는 성공한 미신(迷信)일 뿐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종교인이 선행을 하더라도 거짓된 체제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선행은 체제의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돈을 목사(牧師)에게 많이 갖다 주면 천당을 가겠는가? 나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참 종교(宗敎)이다. 내가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내가 내 이웃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며, 내가 노력해야 이 세상에서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믿고 노력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天國)이다. 친구와 이웃에게 잘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배우자에게 잘하고, 아이에게 존경받으면, 그가 바로 천국(天國) 가는 것이다.

 

■ 통큰 협박!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

 

세종(世宗) 대왕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地獄) 갔다고 기독교인들이 말한다. 세상에 가장 널리 유포된 통큰 협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것이다. 천국만 간다고 하면, 몸 주고 마음 주고 돈도 바친다. 안 믿는 인간들은 모두 지옥 보낸다. 만약, 그런 신(神)이 실제로 있다면, 그런 신(神)은 신(神)이 아니라 악마(惡魔)일 것이다.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 정말 허무맹랑한 악마(惡魔)의 속삭임이다. 종교는 결국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해서 좀먹고 사는 존재일 뿐이다. 진정한 천국(天國)은 종교와 상관 없이 진정한 자유가 보장받는 것이다. 장차 모든 종교(宗敎)의 껍데기가 벗겨진다. 종교(宗敎)의 거짓 실체가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선량한 인간을 협박하는 모든 종교는 붕괴될 것이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세상의 종교(宗敎)는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 사람을 협박하는 모든 종교가 망해야 세상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장차, 천박한 종교(宗敎)의 껍데기가 벗겨질 것이다.

 

살인자는 회개하고 교회 믿으면 천국(天國)가고, 사망자 가족들은 살인자를 평생 원망해서 결국 지옥(地獄)간다. 교회서 기른 개는 천국(天國)가고, 집에서 키우는 우리 집 개는 지옥(地獄)간다. 1주일 내내 못된 짓만 하다가 주일 하루 교회에 가서 예수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가 속죄(贖罪)된다. 아무리 착하고 선하게 살아도 교회를 안 다니면 지옥 간다. 초등학생 혹은 유치원생이 판단해도 그러한 논리는 잘못된 논리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 빨갱이 보다 더 잘못된 사상 논리이다.

 

원래 종교(宗敎)는 겉옷에 불과하다. 옷은 언제든 갈아입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종교가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사람이 종교를 일으켜 세우기 때문에 부패하고 타락한다. 한국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정말 잔인하다! 십일조 헌금(수입 재산의 10% 헌금), 그것도 모자라서 감사 헌금선교 헌금기부 헌금 및 각종 헌금을 모금한다. 모기가 빨대로 쪽 빨듯이 돈을 빨아간다. 교회는 이미 다단계 조직이다. 전도(傳道)하라! 헌금(獻金) 많이 가져오라!

 

종교(宗敎)는 모두 인간이 세운 것이다. 인간에 의해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다. 종교 안에서 진리를 찾으면 그것은 곧 맹신(盲信)이 된다. 종교의 틀에 갇혀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진리를 찾으면, 그것은 이미 진리(眞理)가 아니다. 진짜 진리는 자연과 인간 및 사회 안에 있다. 내 인생의 좌표를 내 안에서 찾고, 자연과 사회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종교에 대한 집착(執着)을 끝장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과 동물들을 절대로 심판하지 않는다. 왜냐면? 하느님은 심판의 신(神)이 아니라, 사랑의 신(神)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심판하는 아버지는 없다. 종교의 틀에 갇히지 말고 더 크게 세상을 보아야 한다. 기독교 믿지 않는 사람이 더 착하고 더 순박하다. 실제로, 기독교 믿지 않는 사람 중에 천사(天使) 같은 사람이 더 많다.

 

■ 과연 인류는 어떻게 진화(進化)해 왔을까?


에오시미아스 (4,000만 년 전) - 아시아(Asia) 유래 유인원(類人猿) (3,900만년 전) - 간레아 메가카니나 (3,800만년 전) - 이집토피테쿠스 (3,500만년 전) - 프로플리오피테쿠스 (3,200만년 전) - 프로콘술 (2,500만년 전) - 드리오피테쿠스 (2,300만년 전) - 플리오피테쿠스 (2,000만년 전) - 아노이아피테쿠스 (1,900만년 전) - 라마피테쿠스 (1,500만년 전) - 케냐피테쿠스 (1,400만년 전) - 오레오피테쿠스 (900만년 전) - 투마이 (800만년 전) -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440만년 전. 일명 아르디) - 아르디피테쿠스 아나멘시스 (420만년 전)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390-290만년 전. 일명 루시) - 최초의 사람(homo)호모 속(屬) 인류 (280만년 전) - 호모(homo) 하빌리스 (230만년 전) - 호모 에렉투스 (50만년 전) - 호모 사피엔스 (20만년 전)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4-6만년 전)


★ 기독교에서 인류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아담(Adam)과 이브(Eve)는 6,000년 전의 역사 인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Eden) 동산에 살 때, 에덴(Eden)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 나온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들을 계속 발굴해 내고 있다. 아담과 이브 보다 먼저 수많은 인류가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

 

★ 퇴계 이황(李滉) 선생의 제자가 이황 선생에게 ‘태초(太初)에 인간(人間)이 1-2명 나왔습니까?’ 물었다.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대답하기를 ‘(春)에 농부(農夫)가 (種)를 1-2개만 뿌리더냐!’ 라고 했다. 태초(太初)에 인류 최초의 인간은 1-2명의 조상(祖上)에게서 출발할 수는 없고, 태초(太初)에 다수의 최초 인간들이 화생(化生)되어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 석가. 공자. 예수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석가(釋迦)는 3,000년 운수(運數)를 받았고, 공자(孔子)는 2,500년 운수를 받았고, 예수(Jesus)는 2,000년 운수(運數)를 받았다. 그리고 모두 모두 끝났다. 지금의 불교는 유효 기간이 지난 상품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도솔천(兜率天)의 호명보살(護明菩薩)로서 구도에 정진하다가 인간으로 내려와 부처가 되었다. 1974년은 북방불기 3,0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유효 기간은 1974년으로 끝났다.

 

기독교는 2,000년 단위로 역사가 이어지고, 아담 (B.C4,000년-B.C2,000년), 아브라함 (B.C2,000년-B.C0년), 예수 (B.C0년-2,000년)의 역사 시대로 이어 지는데, 예수(B.C0년-2,000년)의 시대는 서기 2,000년으로 끝났다. 지금의 기독교는 유효 기간이 지난 상품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자기들 스스로 “예수가 은퇴했다. Jesus's retired.”라고 하며, 서양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역사를 잘 모르고, 서양의 문화 흐름에 어둡다. 그래서, 가장 큰 세계 10대 교회가 한국에 자리잡을 만큼 기독교가 번창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서양의 역사 문화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무지(無知)의 소산이다.

 

유교(儒敎)는 예의 범절(凡節)을 가르쳤고, 불교(佛敎)는 심법(心法)을 가르쳤고, 기독교(基督敎)는 하느님의 천국(天國)을 가르쳤다. 공자(孔子)는 이통(理通)을 했고, 석가(釋迦)는 심통(心通)을 했으며, 예수(Jesus)는 애통(愛通)을 했다. 공자(孔子)는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에 통달하여 이미 주역(周易)에서 밝혀 놓았으며, 석가(釋迦)는 6년 동안 고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었고, 인간의 마음이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는 해탈(解脫)의 법문(法門)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예수(Jesus)는 광야(廣野)에서 고행하여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민중에게 전도(傳道)하여 만민평등(萬民平等)을 교설(敎說)하였으며, 다가올 지상(地上) 천국(天國)을 예고하였다.

 

유교(儒敎)는 여자를 박대(薄待)하므로 망하고, 불교(佛敎)는 자손(子孫)줄을 끊어 놓으므로 망하고, 기독교(基督敎)는 조상(祖上)줄을 끊어 놓으므로 망하게 된다. 사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보다 여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나라가 없었다. 적어도 배달(倍達, B.C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2,333-238) 삼국(三國), 고려(高麗), 조선(朝鮮) 초기까지 여권(女權)을 존중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유교(儒敎)의 존여비(男尊女卑)로써 우리의 고유 전통 문화와 사상을 망(亡)쳐 놓았다. 원래, 우리 전통 문화는 양(陽)보다 음(陰)을 먼저 존중해 왔고, 그래서 음양(陰陽)이라고 했다. 우리의 문화는 특히 여자가 시집을 가더라도 자신의 성(性)과 이름은 그대로 가지고 간다. 그러나, 미국(美國)과 유럽(Europe)에서는 여자가 한번 시집가면 자신의 성(性)이 바뀐다. 서양에서는 여자가 시집가면 그 시간부터 자기 성(性)이 없어지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모두 그렇다. 오직 우리나라만 여자의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다.

 

기독교의 교회성당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지만, 진리의 갈급증이 채워지지 않는다. 불교의 법당에 가서 관세음 보살을 찾지만, 인간 마음의 문(門)이 속시원하게 열리지 않는다. 인간의 궁극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 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비젼(vision)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문명의 들녘을 거닐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정신적 위기이다.

 

■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 해방!

 

죽음은 끝이 아니며 우리의 뇌가 사망해도 20와트의 에너지가 남는다. 그 에너지는 창조(創造)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 영원한 본체(本體) 에너지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만을 생각하고 육체가 죽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 끝이 아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을 때, 두뇌에 남아있는 20 와트(20Watt)의 에너지는 '내가 누구지?'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 20와트의 에너지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일까? 죽음은 끝이 아니며 우리가 사망해도 20와트의 에너지가 남으며, 그 에너지는 창조(創造)도 불멸도 아닌 영원히 존재하는 본체(本體)이다. 사람이 죽으면 버스 혹은 비행기만 갈아 탈 뿐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자체의 생명(生命)은 죽은 것이 아니라 명(命)줄이 떨어져 나간다. 생명(生命)은 계속 이어져나가는 것인데, 다만 육체의 껍데기와 허물만 벗어 나갈 뿐이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일정 공간을 여행하기 위해 빌린 렌트 카(Lent Car)하고 똑같다. 죽으면 버스 혹은 비행기만 갈아 탈 뿐이다. 죽음(Death)은 현상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와 접선이 이루어져 그 본체(本體)가 공간 차원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의 공간 내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현실 세계는 다른 세계와 동시에 접점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세계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의식이 존재보다 근원적이며 의식의 작용으로 실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눈 구멍(眼)에서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현재 우주 공간은 계속 진화(進化)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생명(生命)의 격을 계속 높여 나가야 한다. 호흡(呼吸)을 하단전(下丹田)에 집중하고 계속 의식(意識)을 계발하여 차원을 높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호흡(呼吸)과 의식(意識)을 같이 묶어서 그것을 타고 가야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누구하고도 누구나 높은 경지(境地)에 오를 수 있다. 숨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숨을 쉬는 것은 진짜 호흡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폐에 바람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호흡에 의식을 실어 하단전(下丹田)에 기(氣)를 모을 때 그것이 진짜 호흡(呼吸)이다.

 

기(氣)를 어떻게 호흡에 주입시킬까? 호흡에 정신을 묶어서 끌고 가는 것이다. 그 집중력으로 뚫고 나가는 것이다. 그 강력한 집중력을 통해 큰 능력(能力)도 만들어진다. 숨을 의식과 같이해서 쉬는 것이다. 의식을 계발하는 수단으로 호흡을 이용하고, 둘을 딱 묶어서 계속 수련(修鍊)하다 보면, 기이한 능력(能力)을 경험하게 된다. 동시에 마음을 바로 먹어야 높이 올라갈 수가 있다. 욕심을 자꾸 버릴수록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또한, 인간은 기존 종교(宗敎)의 속박(束縛)과 집착(執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사상과 생각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 세상에 나와 있는 종교(宗敎)는 껌과 같은 상품에 불과하다. 제조 회사만 다를 뿐이다. 껌을 오래 씹다보면 단물이 빠지고 맹물만 나온다. 그것이 인류 역사가 쌓아온 종교의 본질이다. 종교 껌을 뱉으면 처음엔 허전하지만, 오히려 언어를 구사할 때 자유와 해방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기존 종교의 속박(束縛)과 집착(執着)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기독교(基督敎)에서 예수(Jesus)를 믿지 않으면 지옥(地獄)에 간다고 하는데, 그럼 공자(孔子). 석가(釋迦). 소크라테스(Socrates) 및 기존의 위대한 성인(聖人)들은 모두 지옥(地獄)에 갔다는 논리이다. 자기 소속 단체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억지 주장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탕 발림에 불과하고 아주 유치한 말장난이다. 깨달은 자들은 절대 그런 것에 현혹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도리(道理) 및 효(孝) 사상이 미래의 보편적인 도덕 윤리가 되고 생활 규범이 될 것이다. 장차, 종교 조직 및 단체들은 사라질 것이다. 기존의 구태적인 종교를 거부하고, 과학의 정신과 선진적인 생활 문화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의 종교는 전부 사이비(似而非) 종교이다. 사이비(似而非)는 사실인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

 

■ 인간은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속담(俗談)에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이 세상이 낫다!” 라는 말이 있다. 동물(動物)은 원시적 본능만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人間)은 원시적 본능 외에 삶의 본질적인 꿈, 희망, 욕망 같은 현상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망(慾望)이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태어나서 죽음의 순간까지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慾望)이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의 근본 원동력이 된다.

 

주역(周易) 계사(繫辭)편을 보면, “그 때(其時)에 그 사람(其人)이 그 운(其運)을 타고 그 일(其事)을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전생(前生)의 업(業)이나 죄과(罪科)를 이승(今世)의 삶을 통해 반드시 풀어내라!” 라는 과제를 안고 태어난다. 이를 보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과제(課題)를 안고 태어나며, 인생살이가 숙명적인 과제(課題)를 푸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천황(天皇)에서 짚자리 뚝 떨어질 때 ‘너는 천하(天下)를 위해 뭐 돼라. 너는 뭐 돼라.’ 하고 타고나게 된다.” 라고 한다.

 

인간의 육신(肉身)은 지구상에 왔다가 홀연히 사라져 가지만, 그동안 경험하고 축적한 정보들을 간직하고 우주 공간에 영혼(靈魂)의 상태로 또 다른 삶을 영위하게 된다. 동전(銅錢)의 앞면과 뒷면처럼 각각의 세계가 존재하며 이승(今世)과 저승(黃泉)을 앞치락 뒷치락하며 윤회(輪廻) 환생(還生)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종교(宗敎)에서는 그들의 빈약한 교리 때문에 천당(天堂)과 지옥(地獄) 2가지만 있는 것처럼 2분법(二分法)으로 오도(誤導)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다양한 사후(死後) 세계가 존재한다. 진정한 종교(宗敎)는 살아 있을 때의 행복과 죽어서의 영예(榮譽)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의 방법론을 제시해야 인간 영혼의 성숙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흑백(黑白) 논리에 빠져들면 안 된다. 천당(天堂)과 지옥(地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인간의 육신(肉身)은 부모의 몸을 통해 태어난 후, 거듭 성장(成長)하고 일정 단계를 지나면 점점 쇠퇴해져 버린다. 이빨도 점차 빠지고 오장육부(五臟六腑)는 노화(老化)되고 머리는 희게 변한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생살이 끝에 결국 죽음의 단계에 이른다. 물질계(物質界)를 떠나 영혼계(靈魂界)로 간다.

 

인간은 이승(今世)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삶을 통하여 그동안 어떠한 귀중한 정보(情報)를 터득하고 체험(體驗)했느냐에 따라서 다음 죽음 이후의 사후(死後) 세계가 결정된다. 마치 초등학교(初等學校)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 중학교(中學校)의 생활과 운명(運命)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것과 같다. 물론 그 때의 상황과 그 때의 형국에 따라서 운명(運命) 결정의 여지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후(死後) 세계 또한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천차만별(千差萬別)의 다양한 세상이다. (生)과 죽음(死)은 동전(銅錢)의 앞면과 뒷면과 같다.” 앞면이 100원짜리 동전이면, 뒷면 또한 100원짜리이다. 앞면이 500원짜리 동전이면, 뒷면 또한 500원짜리이다. 이승(今世)에서 100짜리 역할을 못 하고 자살하면, 강등(降等)해서 한 단계 더 불리한 50원짜리 역할이 주어지고 이승(今世)보다 더 어렵고 척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살아 있을 때 힘들고 어려운 것을 극복할 줄 모르면 죽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의 고난(苦難)과 역경을 잘 극복하고 이겨내야 그 대가(代價)로 잘 살게 된다.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나며,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더 무섭다고 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자연 법칙에 따라 그 뿌리와 줄기가 실하면 열매(果實)가 반드시 실하게 열리고, 그 열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다시 환생(還生)하여 (種)가 뿌려지고 싹이 튼 후, 뿌리와 줄기를 왕성하게 뻗게 된다. (生)은 죽음(死)으로부터 비롯되고, 죽음(死)은 (生)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肉身)은 땅(地)의 기운을 받고 때어나서 땅(地) 위에서 살다가 다시 땅(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靈魂)은 하늘(天)의 기운을 받고 때어나서 인간(人間) 속에서 살다가 다시 하늘(天)로 돌아간다. 그동안 경험하고 체득한 엄청난 정보(情報)들은 영혼(靈魂) 속에 저장되어 영혼의 하늘로 돌아간다. 매우 많은 양의 정보들이 압축되어 영혼 속에 저장된다.

 

마치 민들레(Dandleion)가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서 체험(體驗)했던 것이 민들레 씨앗 속에 저장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민들레 역시 가을에 씨앗(種)만 남아 하늘로 민들레 씨앗이 날아 다니게 된다. 만약, 민들레가 봄 여름에 튼실하게 자랐으면 튼실한 씨앗(種)이 되고, 봄 여름에 부실하게 자랐으면 부실한 씨앗(種)으로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人間)도 땅위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회 생활하면서 튼실하게 체험(體驗)했으면, 튼실한 영혼 씨앗(種)으로 남아 다음 저승(黃泉)에서 튼실한 생활을 할 것이다. 반대로 부실하게 체험(體驗)했으면 부실한 영혼 씨앗(種)으로 남아 다음 저승(黃泉)에서 부실한 생활을 할 것이다.

 

인간의 영혼영혼(靈魂)에는 모든 정보들이 기록되고 압축되어 저장된다. 인간의 영혼 역시 식물의 씨앗처럼 볼품 없는 쭉정이가 있고, 품질 좋은 알갱이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 이승(今世)에서 짧은 시간을 살다가 결국 저승(黃泉)으로 가지만,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단련된 지식들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쭉정이 영혼(靈魂)이 되기도 하고, 알갱이 영혼(靈魂)이 되기도 한다.

 

우주 만물과 생명은 물질과 영혼의 정보 조합에 의해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분화되어 생명체(生命體)로 나타난다. 물질과 영혼의 정보는 하나씩 모여서 짝이 되고 여러 개의 정보가 모인 상태에서 어떠한 힘과 에너지가 작용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孕胎)되고, 새로운 물체가 창조(創造)되어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生命)은 각기 특유의 영혼(靈魂) 정보를 지니고 있고, 그 영혼(靈魂) 정보가 적당한 신통(神通)한 에너지와 결합하면 눈에 보이는 현상계(現象界)로 화생(化生)되어 나타난다. 모든 생명체들은 그들의 고유한 영혼(靈魂) 정보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에 존엄한 가치(價値)를 발휘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이승(今世)에서 살아 있을 때, 저승(黃泉)에서 영혼으로 존재할 때 보다 더 많고 가치있는 체험(體驗)을 한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서 잘 하느니 살아서 잘 하라는 것이다. 이승(今世)에서의 삶의 무대는 좋은 학습과 수련(修鍊)의 도장(道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 상에서의 삶을 통해 보다 가장 많이 체험(體驗)하고, 보다 많이 공부하며 단련하게 된다. 인생살이가 힘들고 어렵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 자살(自殺)해서는 안 된다. 학습(學習)과 단련(鍛鍊)의 기회를 놓치는 격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임진왜란 및 교회 역사의 불편한 진실

 

▶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k1gbWRhTV34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04월 13일, 기독교 군대가 처음으로 조선(朝鮮) 땅을 침략하던 날이다. 왜군(倭軍)의 배에는 십자가 깃발이 휘날렸다. 25만 왜군(倭軍)의 10%, 일본군 총수의 대부분은 기독교 원정대 즉 기리시단(吉利支丹)이었다. 조선인의 와 를 베고, 살 가죽을 벗기고, 인육을 먹던 기리시단(吉利支丹)은 십자가를 높이 들고 조선 땅을 행군했다. 7년간의 임진왜란 전쟁은 (神)의 이름을 가장한 한국판 십자군 전쟁이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기독교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신학 교수 김인규. 성결 교신 학교 논문). “임란(壬辰倭亂)은 주님의 특별한 배려이며, 일본 기독교(基督敎)를 지켜낸 승리의 역사이다.” (일본 관구장 고메즈의 비서 프란시스코 파시오. 1598 일본보).

 

유럽의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1,096-1,272)은 유럽 전역에 피바람을 불러왔다. “여호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모두 처형하라!” 십자군에게 지급된 면죄부는 천국(天國) 보장권과 경제적 보상이었다. 무차별 살상에 대한 그들의 죄의식은 오직 주님만이 용서하셨다. 이 후, 로마 제국의 역사는 기독교 선교를 구실삼아 각 지역의 민족 전통 말살과 횡포폭압강간살인 등을 일삼는다. 이 땅도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아편 시장 확보를 목적으로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朝鮮) 상륙을 시도하였다. 1846년 식민지 개척의 도구로 프랑스 선교사 함대가 진입했다. 1866년 미국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사건에서 총칼을 들고 행패를 부리던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순교로 둔갑되었다. 1868년 대원군(大院君)의 부친 남연군 묘지 도굴 사건에 선교사들이 앞장섰다.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미일 협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에 기독교 선교 자유를 보장하는 열강의 국제적 음모였다. 일제 식민 통치 시대에 보호를 받으며 친일 제국의 기독교는 번성의 꽃을 피웠다.

 

1985년 서울시 단군(檀君) 성전 건립을 기독교 목사들이 반대했다. 1980년 이후에는 단군(檀君) 동상의 을 자르고 장승 파괴 및 불상 파손의 만행을 저질렀다. 2007년 보수 기독교 뉴라이트는 민족 역사를 말살한 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2008년 기독교 목사와 그 신도들은 태백산 천제단(天祭壇)을 파손했다.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거주하며 당신의 모든 행동을 매일 낱낱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이 투명 인간은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특별한 죄의식 목록을 갖고 있죠. 만약, 당신이 10가지 중 한가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고통과 고뇌로 가득찬 아주 무서운 지옥(地獄)에 당신을 떨어뜨려 숨막힘. 화형 등으로 비명과 눈물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며 항상 돈(Money)이 필요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완벽하신 그분도 (Money)은 어찌 못하십니다.” (조지 칼린의 기독교 풍자). 

 

기독교는 종교 장사(壯士)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세금도 내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상 최고의 공공연한 끝내주는 거짓말입니다. “설교 시간 처음부터 졸기 시작해서 축도할 때 정신이 드는 성도! 헌금은 준비 않고 지갑 속에서 천원짜리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예수님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 헌금 천원짜리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그렇다면, 그들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땅 가운데 있는 모든 불교 사찰이 무너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007년 6월 4일 부산 기독교 청년 연합회). “믿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의 자식이라 하는 사람들을 지옥불에 던져 버리는 당신네들의 신(神)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나는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법정 스님). 잔인한 역사. 거대한 음모. 이 땅의 기독교! 그 불편한 진실.

 

■ 이순신과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

 

★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왜군(倭軍) 제1군 대장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대표적인 천주교 신자였다. 고니시(小西 行長)는 조선 땅을 밟은 후, 종군 신부(神父)를 데리고 행군했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서울시 절두산 순교(殉敎) 성지에 오다 쥴리아(Ota Julia)의 묘지가 있는데, 그녀는 조선(朝鮮) 왕족(王族)의 왕가 딸로 태어나 왜군(倭軍) 고니시(こにし) 장군에게 끌려가 도쿠가와 궁전 안에서 궁녀로 있으면서 일본 천주교 기리시단(吉利支丹)으로 개종하고 이름도 바꾸었다. 그녀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605-1637년에 걸친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천주교 박해 시대에 고오즈시마(神律島)섬에 유배당했고 그곳에서 절명했다.

 

일본은 천주교가 1549년부터 도입되었는데, 임진왜란(1592-1598) 전(前)인 1587년에는 20만 명에 이르렀고, 일본에서는 천주교인을 기리시단(吉利支丹)으로 불렀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 갔던 조선인 포로(捕虜)는 약 5만 명 정도였는데, 그 대부분은 일본 가정의 노비(奴婢)가 되거나 노예(奴隸)로 팔려갔으며, 멀리는 마카오. 마닐라. 인도 및 이태리에까지 끌려갔다. 임진왜란 중에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천주교와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그것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전쟁 중에 서양인 성직자가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고, 둘째는 전쟁 중에 잡혀 간 많은 조선인 포로(捕虜) 중에 상당수의 천주교 즉 기리시단(吉利支丹) 개종자가 나왔으며, 조선인 포로 중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자가 7천여 명이나 나왔다. 뒷날 포로 중의 일부가 귀국하였을 때 그 일부는 조선에 돌아와서도 은밀히 신앙 생활을 유지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순교(殉敎)에 이른 사람도 있다.

 

★ 다음은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의 글이다. “임진왜란(1592-1598)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순신하면 무조건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믿는 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합니다. 과연, 이순신이 고니시 장군(왜군 1군 대장) 보다 주님 앞에 떳떳할까요?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왜군 중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챤(christian)이었습니다. 그의 수하 군대는 늘 십자가 군기(軍旗)를 높이 들고, 조선의 전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조선군과 맞섰습니다. 이순신은 어떠했나요? 이순신(李舜臣)은 우리 주님의 군대 입장에서 보면 불신자요, 적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이순신(李舜臣)하면 무조건 영웅으로 존경합니다. 그가 과연 주님을 알았을까요? 믿음이 있었을까요? 그는 불신자(不信者)였으며, 주님 주자도 모른 지옥(地獄) 권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야합니다. 우리 나라 장군이라고 무조건 존경합니까?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용감하게 조선(朝鮮) 전장(戰場)에서 고귀한 희생을 무릅쓰고 피흘려 싸우신, 비록 왜군이셨지만, 참 주님의 종이셨던 고니시(こにし) 장군이 어떤 분이셨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고니시가 비록 왜장이지만, 순교(殉敎)로써 피를 흘리러 왔는데, 저희 조상들이 그에게 칼을 들이댄 것은 잘못한 것이죠!”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과연 그랬을까? 항상 주님 이름으로 전투에 임한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결국 패배했다. 그러나, 한번도 주님을 찾지 않은 이순신은 항상 승리했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地獄) 갔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웃기다. 이순신 장군은 정말 지옥 갔을까요? 어이가 없다. 그러면, 왜군(倭軍) 1군 대장 고니시(こにし) 장군은 예수를 잘 믿어서 천당(天堂)에 갔을까?


★ 유럽 기독교인의 십자군(十字軍) 원정 때에는 인육을 먹었다. 산 사람을 불구덩이에 던져서 구워먹고, 어린 아이 시체를 나무 꼬챙이에 꽂아서 구워 먹었다. 그런 악마(惡魔)가 없었다. 십자군 원정의 실패 이후, 카톨릭 교회는 사회 불안이나 종교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12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마녀(魔女) 사냥을 했다. 교회 신앙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녀 취급했다. 900만 명 이상을 고문했고, 교수형에 처한 다음, 불에 태워 죽였다. 마녀는 대개 여성이었으나 남성인 경우도 많았다.

 

★ 천주교 신자 황사영(黃嗣永)은 1801년 청(淸)나라 북경 주교에게 밀서(密書)를 보냈는데, 그들이 신앙 자유를 얻기 위해 수백 척의 군함과 군사 5-6만 명을 조선(朝鮮)에 파병하여 조선을 정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조선 정부는 관련자들을 처형함은 물론 천주교(天主敎)에 대한 탄압을 한층 더 강화했다.

 

■ 마누라 및 와이프(Wife)의 유래

 

대개 부부간의 호칭에 있어서 남편을 "영감", 아내를 “마누라”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마누라'는 원래 남녀 구분을 떠나서 ''이나 '왕비'. 세자세자빈를 일컫는 극존칭이며, '영감'이란 호칭은 '정삼품 이상의 관원'을 말하는 직명이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남편 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모양이다. 남편은 기껏해야 “정삼품”의 호칭으로 지칭했는데, 아내는 "이나 왕비”의 호칭을 사용 했으니 말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배달민족(倍達民族)은 여자를 남자 보다 더 잘 존중해 온 민족이다. 단지, 중국 대륙 문화의 왜곡된 문화가 들어 와서 여자들이 힘들었던 조선 후기와 말기의 어두운 역사를 제외하곤 말이다.

 

어느 날, 우리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핀잔을 주었다. “촌스럽게 마누라가 뭐예요! 고급스럽게 와이프(wife)라고 해야지!” 그래서, “마누라의 어원은 왕. 왕비. 정삼품 이상의 왕족을 말하는데, 와이프(wife)의 어원은 weave(베 짜는 여자)로서 집구석에 쳐 박혀 일하는 여자이다. 어느 것이 좋겠어요?” 라고 설명해 주었더니, 그 직원이 좀 머쓱해했다.

 

조선(朝鮮) 시대 율곡 이이 선생. 퇴계 이황 선생이순신 장군 등등 모두 ‘처가(妻家)살이’를 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결혼 문화는 일단 모계(母系) 사회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먼저 처가(妻家) 살이를 하고 애를 낳고 애가 성장하면 따로 분가(分家)하는 것이 전통적인 문화였다. 하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거친 조선(朝鮮) 후기에 중국 문화가 조선(朝鮮) 사회를 지배하면서 특히 중국(中國)에서 들어온 주자가례(朱子家禮)의 규범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남자 중심 및 장자(長子)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남존여비(男尊女卑), 과부 재혼(再婚) 금지, 양반과 상놈 차별 등의 윤리적 조치들이 가부장(家父長) 체제의 부산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양반 상놈 차별적인 문화 및 남녀 차별적인 문화가 지배하면서 조선(朝鮮)의 국력(國力)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점점 멸망(滅亡)해 갔다.

 

■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기독교에서는 13일인 금요일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왜냐면, 13일의 금요일 날은 예수가 예루살렘 골고다(Golgotha)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의 일부 호텔과 병원에는 13층이 아예 없다. 하지만, 프리메이슨(freemason) 세계에서는 13이라는 숫자를 철저히 선호하고 있다. 미국(美國)의 초창기 국기인 성조기(星條旗)를 보면, 별이 13개 있고, 줄도 13개(7개 빨간줄 + 6개 흰줄)이다. 물론, 1777년 독립 선언 당시에 13개 주(州)가 연합하여 미국을 건국하였다는 뜻이며, 그 후 1960년 13개별은 50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미국(美國)을 상징하는 휘장(揮場)을 보면, 독수리가 있는데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한쪽 발에는 화살을 또 다른 발에는 감람나무를 쥐고 있다. 화살. 잎사귀. 열매가 각각 13개씩 있다. 또한,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 뒷면에 있는 피라미드 역시 모두 13층이다. 13이라는 숫자는 실제로 특권층에서 대단히 성스러운 숫자로 여겨지고 있다. 13은 새로운 시작(始作)을 의미한다. 틴에이지(teenage) 역시 13(Thirteen)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중학생 과정은 만 13세부터이다. 자축인묘(子丑寅卯) 12지지(十二地支)가 끝나면 곧바로 13이 시작된다.

 

[참고 문헌 : 성서의 뿌리(산방, 민희식), 숨겨진 성서(문학수첩, 윌리스 반스토운),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대원출판, 이리유카바 최), 기독교의 고뇌(평민사, 우나무노),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동국출판,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고려원, 홀거 케르스텐), 성약성서(대원출판, 리바이 도우링), 신약외경(성인사, 일본 성서학 연구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아침이슬, 엘마그루버), 예수는 없다(현암사, 오강남), 다빈치 코드(베텔스만코리아, 댄 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