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 개혁

심청전, 행복은 종교와 무관한 정성(精誠)

마도러스 2014. 1. 2. 16:51


심청전, 행복은 종교와 무관한 정성(精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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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幸福)은 종교와 무관한 정성(精誠)의 소산이다.


심청전(沈淸傳)은 춘향전(春香傳)과 함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고대 소설이다. 심청전(沈淸傳)의 배경 사상은 효(孝) 사상이 지배적이다. 심청전에서 효(孝)는 사람이 지켜야 할 최고의 도덕 가치로 여겨지고, 이를 실천하면 사람과 신(神)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감동(感動)하게 된다. 그래서, 이적을 일으키고 가정의 행복(幸福)을 가져다 준다는 효(孝) 사상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고 있다.


반면, 효(孝) 보다는 심청의 자기 희생에 초점을 맞추어 살신성도(殺身成道)를 통한 무상(無上)의 행복에의 추구 및 대속적(代贖的) 자기희생(自己犧牲)을 주제로 내세우기도 한다. 심청은 본래 천상계(天上界)의 선녀(仙女)였는데, 이 세상으로 귀양(歸養)왔다고 하는 대목에서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을 저변으로 깔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종교인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그리고, 창작 의식의 밑바닥에는 철저히 반(反)불교적 성격이라는 지적이 있다. 공양미(供養米) 300석은 어떠한 효험(效驗)도 나타내주지 않았고, 몽운사(夢雲寺) 화주승(化主僧)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비방 대상이라는 것이다.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형성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은 판소리로도 불려지고 있고, 창극, 영화 등으로 재구성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다.


■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생사(人生事)와 사건 반전(反轉)


심청전(沈淸傳)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측면을 관찰할 수 있다. 인간의 행복(幸福)과 불행(不幸)은 어느 한 상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 상황이 서로 바뀌면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생사(人生事)가 순환하는 순환(循環) 구조를 보이고 있다. 심(沈) 봉사는 어진 곽(郭)씨 부인과 살면서 심청(沈淸)을 낳아 그런대로 행복(幸福)하게 살았다. 하지만, 심 봉사는 아내를 잃고, 딸마저 잃은 뒤에 슬픔과 고통(苦痛)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심(沈) 봉사는 왕비(王妃)가 된 딸을 만나 눈을 뜬 뒤에 행복(幸福)하게 살았다.


행복과 불행의 순환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려고 하는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늘의 고난과 불행이 내일에는 극복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내일의 행복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확인하고 다짐하게 한다.


하늘의 상제(上帝)님 보살핌과 가호(加護)


심청전(沈淸傳)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은 심청(沈淸)의 효심(孝心)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하늘의 상제(上帝)님 보살핌과 가호(加護)에 의한 사건의 반전(反轉)과 돌파구 마련이 흥미를 돋구고 있다.


인당수(印塘水)에 빠졌던 심청(沈淸)이가 죽지 않고 살아 남은 것과 연꽃에 띄워져 지상으로 환생(還生)한 것은 결국 상제(上帝)님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또한, 왕(王)과 결혼하게 된 것도 상제(上帝)님 덕분이었고, 그리고 아버지 심(沈) 봉사가 눈뜨게 해 주신 대목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며, 오직 상제(上帝)님의 가호(加護)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장면들이다.


■ 심청전(沈淸傳)의 흥미진진한 줄거리


황해도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沈) 봉사(심현)와 곽(郭)씨 부인 사이에서 딸 심청(沈淸)이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곽(郭)씨 부인이 죽고, 심(沈)  봉사는 어린 딸을 동냥 젖으로 키우게 된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한 심청(沈淸)은 동네에서 밥을 빌어 부친을 공양한다. 이웃의 장승상 부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수양딸로 삼고자 하나 부친 공양을 이유로 거절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딸을 기다리던 심(沈) 봉사는 날이 저물도록 심청이 오지 않자 마중을 나가다가 물에 빠진다.


그를 구해준 몽운사(夢雲寺) 화주승은 심(沈) 봉사에게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을 부처님 앞에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심(沈) 봉사는 혹하는 마음으로 공양미 삼백 석의 시주(施主)를 약속하지만 공양미 삼백 석을 장만할 길이 없어 시름에 빠진다. 효성 깊은 심청은 이 말을 듣고 남경 장사 선원(船員)들의 항해(航海) 안전을 기원하는 인당수(印塘水) 제수(祭需) 제물로 자신을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받고, 자신은 인당수(印塘水)에 몸을 던진다.


이때, 심청(沈淸)의 효성에 감동한 하늘의 옥황(玉皇) 상제(上帝)님은 서해 용왕(龍王)에게 인당수에 몸을 바친 심청을 구해주라고 명령한다. 결국 심청은 상제(上帝)님의 은총으로 어머니 곽(郭)씨 부인을 상봉한 후, 연꽃 모양의 큰 배에 태워져 다시 인당수(印塘水)로 보내진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뱃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발견되고 신기하게 여긴 그들은 나라의 임금님께 바치게 된다. 그리고, 연꽃에서 나온 심청은 우여곡절 끝에 왕과 혼인하여 왕비(王妃)가 된다.


한편, 심(沈) 봉사는 못된 뺑덕 어멈을 만나 가산(家産)을 탕진하고 있었다. 왕비(王妃)가 된 심청(沈淸)은 고향을 떠나 떠도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盲人) 잔치를 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심(沈) 봉사도 뺑덕 어멈과 상경을 하던 중 뺑덕 어멈은 도망을 친다. 갖은 고생 끝에 맹인(盲人) 잔치에 참석한 심(沈) 봉사는 심청(沈淸)이와 상봉(相逢)을 하고 죽은 줄 알았던 심청이 살아 있음에 매우 놀란 심(沈) 봉사는 기적같이 눈을 뜨게 됐다.


■ 인당수(印塘水)는 서해 바다의 백령도(白翎島) 북쪽이다.


심청이 태어나서 자란 황주(黃州)는 어디일까? 황해도 황주(黃州)이다. 그러면, 심청이 빠져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인당수(印塘水)는 어디일까? 황해도 서쪽 해안의 북위 38도 조금 위쪽에 서쪽으로 길게 뻗은 장산곶이 있고, 황해도 장산곶에서 남쪽으로 약 17km 떨어진 곳에 경기도 백령도(白翎島)가 있다. 장산곶과 백령도 중간쯤 되는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이름난 곳인데, 여기가 인당수(印塘水)이다.


경기도 백령도(白翎島)를 비롯한 대청도와 소청도 주민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심청(沈淸) 전설(傳說)’이 전해온다. “심청(沈淸)이 인당수(印塘水)에 빠졌다가 연꽃을 타고 물 위로 떠올랐는데, 그 연꽃이 남쪽으로 떠내려 오다가 백령도 남쪽에 있는 바위섬인 연봉(蓮峯) 바위에 와서 걸려 있었다. 이를 뱃사람들이 보고 임금님께 바쳤는데, 연꽃에서 나온 심청이 왕비(王妃)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6·25 전쟁이 시작된 뒤에 남쪽으로 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심청(沈淸) 전설(傳說)’은 지금도 북한 지역인 황해도 옹진, 장연 지역에 전해진다고 한다.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은 황해도 황주(黃州). 장산곶과 경기도 백령도 사이의 인당수(印塘水), 그리고 백령도 남쪽의 연봉(蓮峯) 바위를 잇는 지역이다.


인천 광역시 옹진군 백령면(白翎面)에서는 백령도(白翎島)가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임을 기리고, 효행을 권장하는 뜻에서 ‘심청각(心淸閣)’을 세우고, 심청전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심청각(心淸閣)에서 북쪽을 보면, 바닷물이 유난히 넘실거리는 인당수(印塘水)가 보이고, 남쪽에는 연봉(蓮峯) 바위가 보인다. 그리고 서쪽에는 ‘심청을 태운 연꽃이 떠내려 와서 바닷가에 연밥을 떨어뜨렸는데, 그 연밥이 싹이 터서 지금도 연꽃이 핀다.’고 전해지는 연화리(蓮花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