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 개혁

장차, 제사(祭祀) 문화도 변하게 된다.

마도러스 2013. 11. 11. 14:13


장차, 제사(祭祀) 문화도 변하게 된다.


조선(朝鮮) 시대 율곡 이이 선생. 퇴계 이황 선생. 이순신 장군 등등 모두 ‘처가(妻家)살이’를 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결혼 문화는 일단 모계(母系) 사회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먼저 처가(妻家) 살이를 하고 애를 낳고 애가 성장하면 따로 분가하는 것이 전통적인 문화였다. 물론 조선(朝鮮) 초기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친영론(親迎論)’에 따라 여자가 결혼하면 먼저 남자 집에서 살게 하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다지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중종도 이런 시책을 추진했지만 그다지 빛을 바라지 못하였다. 그런데, ‘처가(妻家)살이’ 풍습이 왜 없어졌을까?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이후, 사회 민심 회복 차원에서 유교(儒敎) 이념을 민중에까지 퍼트리고, 상류층 위주로 퍼져있던 중국(中國) 풍습의 ‘주자가례(朱子家禮)’를 하층 민중에 보급하면서 우리 전통 가족 문화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 여성(女性)의 지위가 많이 향상됐다. 여성 총리, 여성 장관 뿐 아니라 이제는 대통령도 여성 후보 경쟁 시대가 됐다. 헌법 재판소장. 사법 연수원, 경찰 대학 등의 정부 요직에서 여성 인재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야말로 여성 시대가 된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여성(女性)의 지위가 월등했다. 고려(高麗) 시대 때 여성은 남성과 자유 연애를 했고, 유산 상속 때도 딸. 아들의 재산 분배는 거의 동등했었다. 게다가 여성이 제사(祭祀)를 지낼 수 있었으며, 남편이 죽으면 재가(再嫁)도 허용됐었다. 딸의 자식인 외손(外孫)도 가계(家繼)를 계승할 수 있었고 호주(戶主)가 되기도 했다. 조선(朝鮮) 초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朝鮮) 초기엔 ‘남자들이 장가(丈家) 들었다' 라고 할 수 있다. 남자는 당연히 처가(妻家)에 들어가 처가(妻家) 살이 생활을 했고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살았다. 요즘 같으면 데릴사위니 뭐니 하며 꺼렸겠지만 조선 초기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전통이 무너진 것은 조선(朝鮮) 중기 때부터이다. 유교 사상이 뿌리내리면서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이 팽배해지고 여성 지위가 급속히 하락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물론, 제사(祭祀)나 재산도 상속받지 못했다. 남편이 죽으면 재가(再嫁)도 못했고 바깥 남자를 함부로 만날 수도 없었다.


이제, 여자들도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父母)와 조부모(祖父母)에게 형식에 구애없이 음식을 차려 놓고 감사(感謝)의 제사(祭祀)를 지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큰 짐이 되는 지나친 허례허식(虛禮虛飾)은 없어져야 한다. 제사(祭祀)를 지내면 자신의 부모(父母)와 조부모(祖父母)만 오는 것이 아니다. 부모(父母) 및 조부모(祖父母)의 친한 친구 및 친척들도 함께 와서 음식의 향기와 기운을 음복(飮福)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선(朝鮮) 초기 성종(成宗 1457-1494) 때까지만 해도 제사(祭祀)를 딸, 아들 구별 없이 돌아가며 윤회봉사(輪廻奉祀)를 했으며, 제사(祭祀)에 드는 경비도 분담하는 분할제를 택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사를 지냈다. 조상(祖上)을 받드는 정신은 딸, 아들이 다를 수 없으며, 맏이나 그 외의 자녀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례(祭禮)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사위, 외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어서 대를 잇기 위해 양자(養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거친 조선(朝鮮) 후기중국 문화조선(朝鮮) 사회를 지배하면서 특히 중국(中國)에서 들어온 주자가례(朱子家禮)의 규범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남자 중심 및 장자(長子)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남존여비(男尊女卑), 과부 재혼(再婚) 금지, 반상(양반. 상놈) 차별 등의 윤리적 조치들이 가부장(家父長) 체제의 부산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양반 상놈 차별적인 문화남녀 차별적인 문화가 지배하면서 조선(朝鮮)의 국력(國力)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점점 망해 갔다. 조선(朝鮮)이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여자(女子)들이 자기 부모(父母) 조상(祖上)에게 제사(祭祀)를 지내지 못하게 하고, 여자(女子)를 박대(薄待)하는 문화 때문이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장경(地藏經) 제7품에 “죽은 자를 위해 제사(祭祀)를 베풀면, 죽은 자는 그 은공의 7분의 1을 갖는다!”는 말이 있다. 산 자가 7분의 6을 갖는다는 말이나, 엄밀히 따지면 죽은 자는 100% 중 1%만 가져가고 나머지 99%는 산 자의 차지이다. 천도식(薦度式)은 죽은 자를 위한 천도(薦度)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천도(薦度) 의식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孝道)가 중요하다. 조상에게 잘하면 내게도 복(福)이 오기 때문이다. [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스크랩: http://blog.daum.net/dosu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