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과 교훈

브라질 룰라, 찬사받는 큰 대통령

마도러스 2011. 2. 17. 15:12

브라질 룰라, 찬사받는 큰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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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빈농의 8남매 중 7번째로 출생하였고,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다. 구두닦이를 하다가 금속 공장에 취직하였고, 노조에 가입해 노동 운동가로서 삶을 시작하였으며, 철강 노조 위원장으로서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후,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노동자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3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마침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였고, 2006년 재선에 성공하여 8년 동안 경제 성장, 경제 안정, 분배 개선이라는 3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퇴임 시 국민 지지도가 87%였다. 그럼에도 “박수칠 때 떠나라!” 라는 말을 잊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그의 인생과 나라 사랑의 정신 그리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보면, 그 지지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그의 삶과 그의 리더십을 통해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의 지도자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 당(黨)을 뛰어 넘는 대화와 소통


그가 노동당 대표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하원에서 노동자당의 의석은 18%밖에 안 돼 좌파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또, 그가 당선되고 좌파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외국 자본이 브라질을 떠나고 증시가 곤두박질쳤었다. 하지만 그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좌우파를 뛰어넘는 유연한 경제, 외교 정책을 구사했다. 외채를 상환하고 긴축 정책을 펴서 국제 사회의 신임을 얻었다. 일부 좌파로부터는 신자유주의 추종자란 비난을 받기도 했었지만 사람들이 그에게 사회주의자냐, 공산주의자냐, 신자유주의자냐 박쥐냐 물으면 ‘나는 일반 노동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 한마디가 이념을 뛰어넘어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 포퓰리즘(populism) 보다는 신념과 발전을 위해


변신의 귀재! 이는 룰라 대통령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다. 노동당 출신으로 브라질에서 최초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지만, 그는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추진 한 것이 아니라 강도 높은 시장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당의 정책과는 사실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정책에 의해 2002년 2.7%대에 머물던 경제 성장률은 2007년 5.7%로 2배 이상 높아졌다. 브라질 경제의 불안 요소였던 물가도 확실히 잡았다. 2003년 14.8%에 달하던 물가 상승률은 2008년 5.7%로 떨어졌다.


그의 성장 위주의 정책에 당(黨)은 배신자,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기업은 그를 못 미더워하기도 했지만, 그는 포퓰리즘(populism)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묵묵히 건 진정한 지도자였다.


■ 제일 중요하게 삼는 것은 어린이 복지


가난한 노동자 가정의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룰라 대통령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고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땅콩과 사탕을 팔아야 했던 그였다. 그는 브라질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과거의 삶을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아이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가족 지원금)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예방 주사를 맞는 것을 조건으로 어린 아이 한 명당 매달 22레알(약 1만4000원)을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이로 문맹 퇴치. 질병 퇴치, 경제 성장, ‘일석 3조’의 효과를 거두는 제도였다. 이런 정책은 브라질 전체 인구 4분의 1이 수혜를 입는 최대의 복지 정책이었다.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바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가족 지원금) 정책을 배우러 브라질까지 오는 이유는 이 복지 제도가 단순히 돈(money)을 준다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의 전제가 취학과 예방 접종을 전제로 삼고 있기에 문맹과 질병이 동시에 퇴치되었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브라질의 경제 주체가 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실제로 6-15살 아동. 청소년의 학교 결석률이 15%에 이르면 지원이 보류되었다. 또, 수령자를 원칙적으로 여성으로 한정해서 지원금이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를 하였다.


취학률 상승으로 아동 노동은 반감했고, 기아 감소율도 세계 최대였다. 또 현금 지원으로 소비 상승까지 이어 경제 활성화의 효과까지 거두었다. 그의 정책은 어린이와 교육이 나라의 미래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진리임을 물질과 성장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 오랜 가난과 빈곤의 대물림도 끊었다.


가끔 물질 만능 주의 속에서 성장과 발달만 중시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곤 했다. 가장 중요한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지도자라면 다른 것보다 사람 즉, 국민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면제해 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단지 당선을 위한 공략이 아니었다.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빈곤률이 30%에서 19%로 감소되었다. 원래 브라질은 세계에서 8번째로 소득 불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였다. 양극화가 극도로 심해 벨린디아(벨기에-인디아, 남부 지역은 벨기에 수준, 동북부 지역은 인디아 수준)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남부 지역은 벨기에만큼 잘 살지만, 동북부는 인도(인디아)만큼 못 살았다.


룰라는 임기 동안 빈곤층 인구수를 줄이고 중산층을 두텁게 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킨 대통령이었다. 가난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틈만 나면 대통령궁을 나와 빈민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서민들과의 소통과 스킨십을 즐긴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그는 빈곤층을 위해 최저 임금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다. 2002년 대선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4년 동안 최저 임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공약은 공약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그는 집권 8년 동안 2002년 월 200레알이던 최저 임금을 현재 510레알까지 올리는 등 최저 임금을 대폭 인상해 서민을 위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2011년 새해부터 그는 평민으로 돌아갔다. 브라질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그는 진심으로 국민을 사랑했던 정치인이었고, 그런 지도자가 이끄는 브라질에는 좌파이든 우파이든, 부자이든 빈민이든 다 같은 한 나라의 사람이었다.


룰라 대통령은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8년 동안 경제 성장, 경제 안정, 분배 개선이라는 3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가족 지원금)라는 제도를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게 했고, 예방 주사를 맞게 했다.


그것의 조건으로 어린 아이 한 명당 매달 22레알(약 1만4000원)을 지원해 주었으며, 문맹 퇴치. 질병 퇴치, 경제 성장, ‘일석 3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브라질 전체 인구 4분의 1이 수혜를 입는 최대의 복지 정책이었으며, 그로인해 빈곤층 인구수를 줄이고 중산층을 두텁게 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