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성공비결

한국의 정책과 창의력의 빈곤

마도러스 2010. 5. 4. 10:27

 

한국의 정책과 창의력의 빈곤


 ‘왜 이런 것(애플 제품)을 못 만드냐?’ 라는 질문은 사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물음은 반성과 각성에 가까웠다. 왜 애플 같은 회사가 일본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마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스 위크(News week)가 ‘애플이 일제(日製)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것이다.


"창의력의 빈곤은 일본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수직 통합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경제 환경에서는 융통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계적 조직에서는 반대가 불가능하다. 반대가 불가능한 곳에서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위계적 기업 문화가 재계를 넘어 정치,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기업 내부에서 반대가 불가능하면 밖에서 반대를 해 주어야 한다. 국민과 언론. 대학. 정부가 말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기업 조직의 일부가 되고 나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회장님 좋아하는 언론과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는 사회와 기업 모두에 해로울 뿐이다. 하물며 정치 지도자가 국가 CEO를 자임하거나, 기업이 대학의 구조 조정을 주도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한국 정부는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폐합하고,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통폐합하고, 대학 (특히 인문학) 전공을 절반 수준으로 통폐합 하겠다고 한다. 쉬운 말로 하면, 노는 시간을 없애고, 우선 당장 돈이 안 되는 전공 과목 즉 인문학을 없애겠다고 한다. 어리석은 발상이다. 노는 시간은 창의력을 배우는 시간이고 우선 당장 돈이 안 되는 전공은 나중에 돈이 되는 전공 과목임을 모르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疏通. communication)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 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 한국 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가를 탓하기 전에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 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탓해야 할 것이다.


미국식 교육을 잘 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식 교육을 돈 되는 실용 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첨단 기술연구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훌륭한 철학, 언어학, 문학, 예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미국 대학의 전통은 크게 두 축이 있다. 연구 중심 종합 대학과 학부 중심의 인문 대학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종합 연구 대학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Liberal Arts College(자유롭고 관대한 예술 대학)라 불리는 학부 중심 인문 대학에서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 칼리지도 학부 중심 인문대학이었다. 그는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 수업을 생애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는 학교를 때려 치운 것을 꼽았지만 말이다. 미국 대학이 Liberal Arts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뭘까? 크게 세 가지이다. 소통 능력, 비판적이고 윤리적 사고,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교양이다.


실용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왜 돈 안 되는 교육이 대접을 받는 것일까? 간단하다. 장기적으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돈만 되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고전 교육이다. 고전(classic)이란 세월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인류의 성과물을 말한다. 인문학적 기초가 있는 사람은 실무 지식도 쉽게 배운다. 쉽게 배울 뿐 아니라, 제대로 배운다. 제대로 배울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올바로 쓸 줄 안다.


지금 한국의 기업과 정부와 대학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실무적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통 능력, 비판 능력, 윤리 의식, 보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뿌리까지 없애고 그 자리에 단편적인 실용 지식과 기술을 채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비판 능력은 남과는 다른 생각, 즉 창의력의 토대가 된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윤리 의식은 배려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애플이 나올 수 없는 이유이다.


유치원생이 영어 공부 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자본주의는 경쟁 체제이고, 경쟁을 권장해야 선진 일류 국가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정부가 말하는 경쟁 교육은 이미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다. 경쟁 교육은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을 배출하지 못한다.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서는 나눔과 배려(配慮)가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처럼 나눔과 협력에 기반한 미래의 공동체 경제를 우리는 신사회주의(New Socialism)라 부른다. 내가 나누면 남도 나눌 것이고, 공동체는 번영하게 된다. 서로 밟고 밟히는 곳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한국인들의 행복 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고,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발췌: 2010.05.01일 오마이 뉴스 강인규 기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