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성공비결

리기다 소나무에 역전한 조선 소나무

마도러스 2010. 5. 22. 12:18

 

리기다 소나무에 역전한 조선 소나무


■ 1970년대 어느 날, 동네에서 유일하게 온전했던 고향 뒷동산의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조선 소나무들은 몽땅 베어져 집앞 포구에서 배에 실려 어디론가 팔려 나갔다. 조선 소나무 대신 조림용으로 각광받던 나무가 리기다 소나무이다.


북미 원산의 리기다 소나무는 대단한 속성수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온 산에 정착했다. 사람들은 이 소나무의 경이로운 성장을 지켜보면서 조림지 사이에 저절로 자란 조선 소나무를 모조리 솎아냈다.


리기다 소나무가 이내 고향 뒷산의 권력을 장악했다. 동네 사람들은 굵은 몸통을 키우며 숲을 가득 채워가는 먼 나라에서 온 리기다 소나무를 그 어떤 나무보다 귀하게 대접했다. 미제(美製)면 다 좋게 보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났다. 리기다 소나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의 억세고 도도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지금은 여기저기 푸사리움이라는 병에 걸린 추레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한편, 맥없이 자라나던 조선 소나무 숲은 울창한 숲으로 거듭났다. 성장을 거의 멈춘 동네의 리기다 소나무는 목재 가치가 없다고 알려지면서 수목(樹木) 갱신 사업의 일환으로 점차 베어져 사라지고 있다.


■ 리기다 소나무는 왜 더 크게 자라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역전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생장하는 습관이 달랐던 것이다. 조선 소나무의 뿌리는 서로 서로를 배려해 준다. 서로 서로 비켜가면서 가지를 뻗는 것이다. 땅속의 양분도 서로 서로 나눈다. 가지에 달린 잎도 마찬가지이다. 나뭇가지들은 빛을 골고루 나누기 위해 공간을 요리조리 나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조선 소나무이다.


■ 이에 비해 리기다 소나무는 생장 습관이 철저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 양분 싸움을 위해 리기다 소나무는 뿌리 뻗는 것도 다른 땅의 충분한 공간을 놓아둔 채 서로 한쪽 방향으로만 뻗는 경우가 많다. 광합성의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가지와 이파리들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외면하고 한 방향으로만 뻗는 경우가 많다. 빛을 나누어 쓰지 못하다 보니 숲은 빈 공간으로 헐겁기 짝이 없다. 이렇듯 리기다 소나무는 초기에만 맹렬하게 성장을 거듭할 뿐 40-50년이 지나면 기운을 소진한 채 제왕의 모습을 점점 잃게 된다.


처음에는 더디게 성장하던 조선 소나무 숲은 나이가 들수록 빈틈이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숲을 만든다. 더디지만 차츰 차츰 성장해서 수백 년 세월을 이겨내고 결국 궁궐의 대들보가 된다.


■ 저 혼자 이기적 삶을 살다가 쇠락한 운명을 맞이한 리기다 소나무의 슬픈 종말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땅의 양분을 골고루 나누고 하늘의 빛까지 함께 쓰며 아주 천천히 자란 바보 같던 조선 소나무에 진 것이다. 서로의 힘을 아끼고 나누어야 하는 것은 비단 나무들의 세계만은 아닐 것이다. (미래 상상 연구소  홍사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