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성공비결

애플의 성공, 혁신(革新)이 돌파구

마도러스 2010. 1. 29. 16:09

 

애플의 성공, 혁신(革新)이 돌파구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 가정에 입양됐고, 리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애플을 창업했지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자신이 영입한 인물 ‘존 스컬리’에 의해 쫓겨나는 비애를 겪었고,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되던 애플에 복귀해 다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자신과 애플을 부활시켰지만, 그는 다시 췌장암이라는 고통을 겪게 되고, '끝났다'고 모두들 여길 때 병마와 싸워 이겨낸 뒤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과 좌절이 늘 함께한 부침의 연속인 인생이다.


하지만, 그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혁신 아이콘'이라는 점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는 늘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어서 기존 강자들을 물리쳐 왔기 때문이다.


애플의 창업은 1976년 4월 1일 만우절 날이다. 잡스가 21세의 나이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1’을 판매하기 시작한 날이다. 이른바 첫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1과 애플2는 애플 컴퓨터를 선도적인 컴퓨터 회사로 만든 제품이다. 특히 애플2는 사실상 8비트 컴퓨터의 표준 역할을 할 정도였다.


1981년 올해의 인물로 PC를 선정했던 '타임'은 원래 스티브 잡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복잡한 사생활과 각종 악평 때문에 결국 PC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1983년 무렵부터 IBM에 밀리기 시작했던 스티브 잡스는 약세를 만회하기 위해 회심의 작품을 준비했다. 그것이 바로 매킨토시 컴퓨터이다. 1984년에 전격 공개된 매킨토시는 제품 자체만 놓고 보면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애플에서 경영자 보다는 선구자(Visionary) 역할을 하고 싶었던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전문경영인 존 스컬리를 영입했다. 그러나, 수익을 다변화시키고 싶어했던 존 스컬리는 1985년 이사회를 소집하고, 익명 투표를 벌인 끝에 그를 영입한 잡스를 애플에서 축출한다.


1985년 30대의 젊은 나이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축출과 함께 애플도 PC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만다. 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 CPU(중앙처리장치) 제조업체인 인텔이 합작하여 ‘윈텔(Win-tel)’을 만들고, 전 세계 PC 시장 중 90% 이상을 장악한다. 

 

1994년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췌장암은 대부분 늦게 발견되는 탓에 수술 시기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잡스는 보기 드물게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을 앓고 있던 터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잡스는 건강을 회복했다.


1996년말 고문 자격으로 애플에 합류했던 스티브 잡스는 바로 당시 CEO였던 질 어밀리오를 축출하면서 1997년 다시 왕좌를 차지했다.     


1997년 애플은 이미 전 세계 10%도 안 되는 마니아 계층만 사용하는 군소 PC 업체로 전락해 있었다. IBM과 MS의 아성을 깬다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한다. 맥킨토시라는 핵심 사업을 제외하고 프린터와 디지털 카메라, PDA, 스피커, 외장하드 등 대부분의 사업에서 발을 뺐다.


그 대신 잡스는 MS와의 화해를 선언한다. 1997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서 잡스가 MS의 빌 게이츠 창업자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MS는 애플 주식 1억5천만 달러어치를 매입하고, 맥용 오피스와 익스플로러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적대적 인수 합병설이 나오는 등 어려었던 시기에 MS라는 든든한 우군을 영입한 것이다.


그가 애플에서 받는 연봉은 단 돈 1달러였다. 그는 50센트가 출근 수당, 50센트가 능력 수당이라는 농담으로 1달러를 말한다. 물론 주식 가치나 스톡옵션 등을 따지면 엄청난 소득을 갖고 있기는 하다.


회사 안정과 함께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을 기획한다. 인터넷(internet)의 'i'를 뜻하는 '아이(i)'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첫 작품은 1998년 선보인 '아이(i) 맥(Mac)'이다. 이는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의 작품이다. 디스크 드라이브를 없애고 당시로서는 사용이 드문 USB 포트만을 갖췄다. '아이 맥'은 나온 지 다섯 달만에 80만대가 팔려 나갔고, 덕분에 애플은 1993년 이래 처음으로 연속 분기 흑자를 이어나갔다.


애플의 부활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제품은 2001년 10월에 처음 발표한 '아이(i) 팟(Pod)'이다. 잡스는 음반 콘텐츠 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전세계 음반 시장은 MP3 플레이어의 등장과 함께 불법 다운로드의 확산으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우수한 콘텐츠를 자신이 만든 우수한 하드웨어에 결합시키겠다는 것이 잡스의 판단이었다.


이를 위해 잡스는 '아이 팟'과 함께 '아이(i) 튠즈(Tunes)'라는 음악 관리 소프트 웨어를 함께 내놨다. '아이 튠즈'는 2003년 '아이 튠즈 스토어'로 확대되며 '아이 팟'용 음악을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해서 음반 시장의 부활을 가져왔다.

 

'아이(i) 팟(Pod)'의 성공에 이어 애플은 '아이(i) 폰(Phone)'을 내놓는다. 제대로 된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 폰'은 기존의 휴대전화와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여기에 '아이(i) 폰(Phone)'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앱스토어를 통해 내놓으면서 또 다시 콘텐츠에 주목했다.

 

이번에 새로운 제품으로 내 놓은 '아이 패드(Pad)'는 신문과 잡지, 동영상, 전자책(e-북) 등이 대상이다. 올드 미디어의 풍부한 콘텐츠를 애플의 뉴 미디어 기기가 훌륭하게 부활시키고 있는 셈이다. 애플을 훌륭하게 부활시킨 잡스는 앞으로 구글, MS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휴대전화 시장에 본격 진출을 선언하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함께 '넥서스 원' 스마트폰을 선보인 구글은 제1의 경계 대상이다. 애플은 구글의 '넥서스 원' 출시를 전후해 '아이 폰' 출시 이후 다양한 소프트 웨어를 탑재시킨 구글과의 관계 단절을 모색하고 있다.


애플이 손을 내민 곳은 MS이다. 1997년 재기를 모색할 때 스티브 잡스가 내밀었던 손은 절박했지만 이제는 대등한 위치이다. 오히려 애플 쪽이 더 앞서 있다는 평가이다. 애플은 우선 ‘아이 폰’에 MS의 검색 엔진 '빙'을 탑재시킬 예정이다. 또한 MS는 오피스 등의 프로그램을 애플과 스마트폰으로 공동 개발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태블릿 PC '아이(i) 패드(Pad)'의 확산은 결국 MS의 윈도와 윈도 기반 PC 시장을 타깃으로 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 최근에는 MS에서 자체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MS는 언제든지 애플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입력: 2010.01.28)

 

■ 애플 아이패드, 기대와 실망의 협주곡


‘아이패드(iPad)’를 기다리는 언론들은 마치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대다수 언론들은 기자들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파견했고, 동영상 생중계, 트위터 생중계 등을 통해 애플의 아이패드 ‘탄생’ 소식을 숨가쁘게 전했다. 언론이 실로 ‘경배’에 가까운 주목과 관심을 나타냈다. 첫째, 두텁게 존재하는 이른바 ‘애플 팬보이(fanboy)’를 위해서 둘째, 아이패드가 신문, 잡지에 미칠 영향을 현장에서 직접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열망하던 수준의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 아이패드가 카메라 기능이 부족하고 다목적 정보기기라고 하기엔 상당한 약점을 안고 있다. 아이패드가 `인상적인'(impressive) 제품이지만 단지 좋은(merely good)는 정도일 뿐 당초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대발견'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다른 산업들을 위협하는 강력한 대중 시장의 탄생을 아이패드는 예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데일리 파이낸스는 2010.01.27일 애플의 태블릿 PC 아이(i) 패드(Pad)가 발표되하자마자, '아이패드가 싫은 이유'를 열거했다.


태블릿 PC 아이패드는 스마트폰을 대체하기엔 너무 크고, 그렇다고 노트북을 대체하자니 키보드가 없어 불편하다는 설명이다. 아이패드는 아이폰 크기만 키운 것이라며 혁신이라고 보기 힘들다. 아이패드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문서 작업과 동영상 감상 등 할 줄 아는 건 꽤 많다.


하지만, 제대로 잘 하는 기능은 찾기 힘들다. 타이핑하고 클릭하는 게 불편하는 점이다. 특히 키보드와 마우스 없다보니 이런 기능을 제대로 이용하기 힘들다. 가격대 성능비를 따지면 넷북이 훨씬 낫다. 넷북엔 키보드가 있을 뿐 아니라, 메모리 사양과 데이터 저장 용량도 아이 패드보다 뛰어나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 회장이 ‘아이패드’를 공개한 다음날인 2010.01.28일 애플의 주가가 207.88달러에서 199.29달러로 4.13% 떨어졌다. 이는 잔뜩 부풀어있던 시장의 기대를 아이패드가 만족시키지 못한 탓으로 해석된다.

 

한편, 중국 컴퓨터 제조회사인 주룽(巨龍)그룹은 2009.08월부터 아이패드보다 화면이 더 크고, 비슷한 기능을 갖춘 'P88'이라는 제품을 팔아 왔다고 한다. 이 회사 사장은 "왜 애플사가 우리 제품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파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애플 아이패드는 앞으로 두달은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는 반면, 우리가 만든 P88은 지금 당장에라도 구입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2010.01.27일 기조 연설에서 "요즘엔 누구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연결해 줄 기기는 없을까? 그동안 고민했다. 새로운 기기는 어떤 면에선 스마트폰보다, 또 다른 면에선 노트북보다 좋아야만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태블릿 PC '아이(i) 패드(Pad)'이다."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