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학

육신肉身. 영혼靈魂 그리고 인생人生

마도러스 2009. 6. 19. 12:52

 

육신肉身. 영혼靈魂 그리고 인생人生


   글 :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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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육신(肉身)은 땅(地)의 기운을 받고 때어나서 땅위에서 살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靈魂)은 하늘(天)의 기운을 받고 때어나서 인간 속에서 살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그동안 경험하고 체득한 엄청난 정보들은 영혼 속에 저장되어 영혼의 하늘로 돌아간다. 매우 많은 양의 정보들이 압축되어 영혼 속에 저장된다.


마치 민들레가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서 경험했던 것이 민들레 씨앗 속에 저장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민들레 역시 가을에 씨앗만 남아 하늘로 민들레 씨앗이 날아 다니게 된다. 만약, 민들레가 봄 여름에 튼실하게 자랐으면 튼실한 씨앗이 되고, 봄 여름에 부실하게 자랐으면 부실한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땅위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회 생활 하면서 튼실하게 살았으면 튼실한 영혼 씨앗으로 남아 다음 저승(黃泉)에서 튼실한 생활을 할 것이다. 반대로 부실하게 살았으면 부실한 영혼 씨앗으로 남아 다음 저승(黃泉)에서 부실한 생활을 할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모든 정보들이 기록되고 압축되어 저장된다. 인간의 영혼 역시 식물의 씨앗처럼 볼품 없는 쭉정이가 있고 품질 좋은 알캥이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 이승(今世)에서 짧은 시간을 살다가 결국 저승(黃泉)으로 가지만,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단련된 지식들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쭉정이 영혼이 되기도 하고 알캥이 영혼이 되기도 한다.


우주 만물과 생명은 물질과 영혼의 정보 조합에 의해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분화되어 나타난다. 물질과 영혼의 정보는 하나씩 모여서 짝이 되고 여러 개의 정보가 모인 상태에서 어떠한 힘과 에너지가 작용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새로운 물체가 창조 되어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생명은 각기 특유의 영혼 정보를 지니고 있고, 그 정보가 적당한 힘과 에너지와 결합하면 눈에 보이는 현상계로 나타난다.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은 그들의 고유한 정보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에 존엄한 가치를 발휘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해 있던 영혼의 정보가 어떤 힘과 에너지가 작용하면 이승(今世)에서 본연의 생명체로서 영혼적 가치를 발휘한다.


우리 인간들은 이승(今世)에서 살아 있을 때에 저승(黃泉)에 영혼으로 존재할 때 보다 더 많고 가치있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서 잘 하느니 살아서 잘 하라는 것이다. 이승(今世)에서의 삶의 무대는 좋은 학습과 수련의 도장(道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촌에서 삶을 체험하면서 가장 많이 경험하고 공부하며 단련하게 된다. 인생살이가 힘들고 어렵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해서는 안 된다. 공부와 학습의 기회를 놓치는 격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의 육신(肉身)은 지구상에 왔다가 홀연히 사라져 가지만, 그동안 경험하고 축적한 정보들을 간직하고 우주 공간에 영혼(靈魂)의 상태로 또 다른 삶을 영위하게 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각각의 세계가 존재하며 이승(今世)과 저승(黃泉)을 앞치락 뒷치락하며 윤회(輪廻) 전승(傳乘)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종교에서는 그들의 빈약한 교리 때문에 천당(天堂)과 극락(極樂) 2가지만 있는 것처럼 2분법(二分法)으로 오도(誤導)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다양한 사후(死後) 세계가 존재한다. 진정한 종교는 살아 있을 때의 행복과 죽어서의 영예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의 방법론을 제시해야 인간 영혼의 성숙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흑백(黑白) 논리에 빠져들면 안 된다. 천당(天堂)과 지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상하(上下)로는 구천(九天)이며, 8천(九天)까지는 동서남북에 각각의 세계가 존재하고, 천상의 최고 정상에는 대라천(大羅天)이 있다. 그래서 모두 33천(天. 4 x 8 + 1)이 있으며, 33천(天) 속에는 수많은 나라가 존재한다고 한다.


인간의 육신(肉身)은 부모의 몸을 통해 태어난 후, 거듭 성장하고 일정 단계를 지나면 점점 쇠퇴해져 버린다. 이빨도 점차 빠지고 오장육부는 노화되고 머리는 희게 변한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생살이 끝에 결국 죽음의 단계에 이른다. 물질계를 그만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승(今世)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삶을 통하여 그동안 어떠한 귀중한 정보를 터득하고 체험했느냐에 따라서 다음 죽음 이후의 세계가 결정된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 중학교의 생활과 운명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것과 같다. 물론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형국에 따라서 운명 변화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후(死後) 세계 또한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천차만별(千差萬別)의 다양한 세상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다.” 살아 있을 때 힘들고 어려운 것을 극복할 줄 모르면 죽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의 어렴움을 잘 극복하고 이겨내야 그 댓가로 잘 살게 된다.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나며,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더 무섭다고 한다.


앞면이 100원짜리 동전이면 뒷면 또한 100원짜리이다. 앞면이 500원짜리 동전이면 뒷면 또한 500원짜리이다. 이승(今世)에서 100짜리 역할을 못 하고 자살하면, 강등(降等)해서 한 단계 더 불리한 50원짜리 역할이 주어지고 이승(今世)보다 더 어렵고 척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자연 법칙에 따라 그 뿌리와 줄기가 실하면 열매(果實)가 반드시 실하게 열리고, 그 열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다시 환생(還生)하여 씨(種)가 뿌려지고 싹이 튼 후, 뿌리와 줄기를 왕성하게 뻗게 된다. 삶은 죽음으로부터 비롯되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비롯된다.


주역(周易) 계사(繫辭)편을 보면, “그 때(其時)에 그 사람(其人)이 그 운(其運)을 타고 그 일을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전생의 업이나 죄과를 이승(今世)의 삶을 통해 반드시 풀어내라!” 라는 과제를 안고 태어난다. 이를 보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과제를 안고 태어나며, 인생살이가 숙명적인 과제를 푸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천황(天皇)에서 짚자리 뚝 떨어질 때 ‘너는 천하를 위해 뭐 돼라. 너는 뭐 돼라.’ 하고 타고나게 된다고 한다. 


★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속담에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이 세상이 낫다!” 라는 말이 있다. 동물은 생존적 본능만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생존적 본능 외에 삶의 본질적인 꿈, 희망, 욕망 같은 현상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태어나서 죽음의 순간까지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이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의 근본 원동력이 된다.


인간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줌의 불씨"와 같다. 한줌의 불씨가 너무 지나치게 많아서도 안 되고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된다. 너무 지나치면 육신이 타버리게 되고, 너무 모자라면 육신이 싸늘하게 식어있는 냉혈 동물과 같을 것이다. 다행히 인간은 중도(中道)의 법칙을 지키는 자율적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가지고 있다.


자율적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 클수록 더 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마음을 조절하는 능력이 클수록 더 큰 일을 감담할 수 있고 더 큰 이상과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다. 그 사람의 마음 크기가 장대(長大)할수록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당하는 능력도 장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결국, 행복이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배양하고, 마음을 다지고 굳게 단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