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학

자기 운명(運命)을 바꾼 원학해(袁學海)

마도러스 2009. 6. 12. 11:25


자기 운명(運命)을 바꾼 원학해(袁學海)

                  

중국 (明)나라 때에 원황(袁黃, 1533~1606)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그의 호가 학해(學海)여서 원학해(袁學海)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때, 그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그의 아버지의 직업이 의사(醫師)였기에 자신도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醫學)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수역학(象數易學)에 능통한 늙은 노인이 나타나더니, “자네는 관리가 될 사람인데, 왜 과거(科擧) 시험을 준비하지 않느냐?” 하면서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점괘(占卦)를 봐 주었습니다.

 

지난 날의 모든 사건들이 점괘(占卦)대로 척척 들어 맞았습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그 노인의 말대로 과거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노인은 과거(科擧) 시험 성적까지 예언했습니다. 초시에서는 14등으로 합격하고, 그 다음 시험은 71등으로 합격할 것이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9등을 할 것이다. 실제로 다음해에 과거 시험을 쳤는데, 과연 그의 예언(豫言)대로 모든 등수가 적중(的中)하였습니다. 노인은 그 다음의 인생 운세도 일러 주었습니다.

 

“모년(某年)에 공생(貢生)이 되고, 공생에 뽑힌 후 모년(某年)에는 사천성의 대윤이 될 것이다. 대윤에 부임한 지 삼년반이 지나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53세 08월 14일 축시에 거실에서 죽을 것이다. 유감이지만 자식은 없는 팔자이다.”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10대 후반에 들었던 이 예언들은 관직생활을 하면 할수록 신기하게도 다 들어맞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원학해(袁學海)는 모든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습니다. 나는 53세가 되면 죽을 것이다! 그래서, 매사를 그저 담담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의 것을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명론자(運命論者)가 되어 체념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37세가 되던 1569년에 우연히 남경 서하산(棲霞山) 속의 (寺)에 들어가 몇일간 수행(修行)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에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 절에서 3일간 밤낮을 자지 않고 조용히 참선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조용히 참선하는 모습을 지켜 본 그 절의 운곡선사(雲谷禪師)가 “무슨 수행을 하시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내 운명(運命)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 목숨도 이제 끝자락에 와 있으므로, 아무런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단지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구만!” 원학해는 깜짝 놀라서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운명(運命)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운명은 스스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공덕(功德)과 선행(善行)을 쌓으면 모든 것이 바뀐다. 덕(德)을 쌓으면 복(福)이 되고 드디어는 운명(運命)이 바뀐다.” 라고 말했습니다.


운곡선사(雲谷禪師)에게 원학해는 어떻게 하면 덕(德)을 쌓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자기의 행동과 공과(功過)를 기록하되 선행(善行)에서 악행(惡行)을 뺀 점수가 3,000점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했습니다. 가르침에 감명받은 원학해(袁學海)는 이전까지 자신의 호가 학해(學海)였는데, 이날부터 '평범함을 종료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원요범(袁了凡)었으로 바꾸었습니다. 1일 1선(一日一善)이면 1년에 365점이 되고, 1일 10선이면 1년에 3천6백50점이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선행(善行)이란 친절함이나 착한 일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행동도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원요범(袁了凡)은 팔자를 고치기 위해 3,000점 공덕(功德)을 쌓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장부책을 만들어 놓고 한 가지 선행을 할 때마다 즉시 붓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의 부인은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에 기록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 대신 부인은 매번 착한 일을 실천할 때마다 거위 깃대에 인주를 묻혀 달력의 날짜 위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찍었습니다. 좋은 일(善行)을 했으면 "O" 표시, 나쁜 일(惡行)을 했으면 "x" 표시를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더러 살아있는 생명을 사들여 방생(放生)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루에 많게는 10개의 동그라미가 찍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혼자 있을 때에도 항상 생각을 맑게 가지려고 노력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덕(功德)을 쌓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가지려고 꾸준히 노력하였고, 그로부터 신통한 꿈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옛성현(聖賢)이 자기를 손잡아 이끌어 주시기도 하며, 혹 허공을 날거나 걷기도 하고, 좋은 깃발이나 보물 덮개 기타 각종 훌륭한 사물을 얻는 꿈을 꾸었으며 더러운 오물을 토해 내는 꿈을 꾸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다 허물이 사라지고 (罪)가 없어지는 징표였습니다. 마음을 닦으면 닦을수록 꿈의 내용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운명(運命)이 바뀌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였습니다. 팔자에도 없던 아들(子息)을 낳게 되었습니다. 51세가 되던 1583년에는 드디어 3천개의 동그라미가 완성되었습니다. 3,000 점의 공덕(功德)을 쌓은 지 얼마 후에 원요범(袁了凡)은 벼슬 자리가 현감(縣監)으로 승진하였습니다.

 

현감(縣監)이 된 후에는 다시 10,000점 공덕(功德)을 쌓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현감이 되면서 하루 종일 관청에서 자리를 지키고 근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공덕(功德) 쌓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셈이었습니다. 원요범(袁了凡)의 부인은 "내가 전에 집에 있을 때에는 서로 도와 선행(善行)을 행하였기 때문에, 3,000 점의 선행을 그런 대로 완성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10,000 점을 발원해 놓고 관청 안에 행할 만한 일이 없게 되었으니 언제 이공덕(功德)을 성취한단 말입니까?"하고 남편에게 상의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원요범(袁了凡)은 우연히 꿈에 한 신선(神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선행 발원한 일이 완성되기 어려운 까닭을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선이 말하기를, "그대가 현감이라는 자리에 있으니 백성들에게 물리는 세금(稅金)을 조금만 감해주면 1만 점의 선행이 한꺼번에 완성될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당시 세금은 토지 한 마지기당 이할 삼푼 칠리(23.7%)를 거두었습니다. 꿈에 신선이 일러준 대로 요범은 이를 대폭 줄여 일할 사푼 육리(14.6%)로 낮추었습니다. 벼슬이라는 자리가 한꺼번에 1만 가지 선행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원료범은 이러한 정신수양(精神修養)과 공덕(功德)으로 인하여 일찍이 노인이 예언하였던 53세라는 운명적 한계를 훨씬 넘어 74세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 일개(一個) 성(城)의 장관 직위에서 끝난다는 것도 틀리게 되었으며, 더 높은 직위인 명(明)나라 군(軍)의 주사(主事)까지 올라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때에 조선(朝鮮) 함경도까지 와서 왜군(倭軍)의 기오마사(加藤淸正)을 쳐부순 큰 수훈을 세웠습니다. 운명(運命)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공덕(功德)과 적선(積善)을 쌓는 일입니다. 선행(善行)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원료범(袁了凡)은 요범사훈’(了凡師訓)에서 적선(積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며, 옛 사람들이 공덕(功德)을 쌓았던 사례들을 여러 가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 복건성의 양영이라는 사람은 대대로 강에서 배로 행인들을 건네주는 일이 생업이었습니다. 한번은 비가 너무 오래 와서 강물이 불어 넘치고, 마침내 제방(堤防)이 무너져서 민가(民家)가 온통 물에 잠겼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물살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오자, 다른 배의 주인들은 모두 떠내려 오는 재물을 건지는 데만 힘썼다. 하지만, 양영의 증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사람을 구하는 데에 힘쓰고, 재물은 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양영의 아버지가 태어날 때에 이르러 집안이 점점 부유(富裕)해졌습니다.

 

어떤 신선(神仙)이 도사(道師)로 변장하여 그 아버지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그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음덕(蔭德)을 많이 쌓아 자손(子孫)들이 틀림없이 부귀영달(富貴榮達)을 누릴 것이니 저 곳에 묘를 쓰는 것이 좋겠소."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 곳에 묘를 썼는데 과연 그 이후로 후손들이 줄줄이 벼슬을 하였습니다.

 

요범사훈’(了凡師訓)에서는 어떤 사람이 착하게 살았는 데도 그 자손이 흥성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짜 선(眞善)과 가짜 선(假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가선(假善)은 공덕(功德)이 아니라, 악행(惡行)에 해당합니다.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을 구분하는 기준은 남에게 이로운 것은 선행(善行)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악행(惡行)입니다. 남에게 이로우면 남을 때리는 것도 선행(善行)이 될 수 있고, 남을 위해서 남에게 욕하는 것도 또한 선행(善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이로우면 남을 공경하는 것도 악행(惡行)이고 자신을 위해서 예의를 깎듯이 하는 것도 또한 악행(惡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사람이 선행(善行)을 행할 때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모두 공(公)이고, 공(公)이면 진짜 선행(善行)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모두 사(私)이고, 사(私)이면 가짜 선(假善)이며악행(惡行)입니다. 마음에 뿌리를 두는 것이 진짜이고, 겉으로 형식과 모양만 내는 것은 가짜입니다. 무위(無爲)로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진짜이고, 유위(有爲)로 억지스럽게 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범사훈’(了凡師訓)은 원요범(袁了凡)이 자손을 훈계하기 위해 남긴 책이며, 운명(運命)을 바꾸고 개척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운명(運命)을 고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수 백년 동안 개운서(改運書)로서 널리 알려진 명저이기도 하며, 그 핵심은 공덕(功德)을 쌓는 일입니다. 운명(運命)이라는 고정된 붕어빵의 틀을 깨부수는 쇠망치는 공덕(功德)이라는 쇠망치입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운명(運命)을 안다고 하더라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