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학

마의선사(麻衣禪師) 상법(相法)의 결론

마도러스 2009. 6. 12. 11:45

 

마의선사(麻衣禪師) 상법(相法)의 결론

 

중국 당나라 후기의 인물로 화산(華山)에 은거한 마의선사(麻衣禪師)는 그의 제자 진단(陳摶 ?~989)에게 달마조사(達磨祖師)가 남긴 상학(相學)을 모두 전하였습니다. 제자인 진단(陳摶)은 자는 도남(圖南)이며, 호는 부요자(扶搖子)였습니다. 진단(陳摶)는 화산(華山)에 은거한 후, 마의선사(麻衣禪師)가 전해준 상법(相法)을 혼자서 통달하였습니다. 진단(陳摶)은 일찍이 송(宋)나라 태조의 (相)을 보았는데, 뒷날에 말을 타다 변방으로 가다가 태조가 즉위하였다는 말을 듣고 ‘이미 천하가 숙명(宿命)처럼 정하여 졌다.’라며 크게 웃었다는 얘기에 태종은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는 호를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난세에 시달리던 시절에 선비 진단(陳摶)이 좋은 임금이 나타났다는 깜짝 소식에 기뻐하다가 그만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졌음에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는 일화에서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의선사(麻衣禪師)의 상법(相法)은 중국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어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을 얘기할 때 거론되고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후기에, 마의선사(麻衣禪師)는 주로 삼베옷을 즐겨 입었는데, 천문, 지리, 주역, 기문, 둔갑, 명리 등에 통달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50살이 넘어서 아들(子息)을 2명 얻었는데, 늦게 본 자식인지라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문득 보니, 10살이 훌쩍 넘은 소년이 되었기에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아이들의 장래를 감정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큰 아들(子息)은 재상(宰相)이 되고, 둘째 아들(子息)은 거지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운명(運命)의 감정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야! 너는 이 다음에 나라의 재상(宰相)이 될 팔자이니 열심히 공부를 하여라. 그리고 둘째야! 너는 거지 팔자를 타고 났으니 그냥 놀고 잘 먹기나 하여라! 이 애비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너희도 사주팔자(四柱八字) 대로 사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거지 팔자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은 둘째 아들(子息)은 ‘거지 팔자라면 집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아버지에게 작별(作別) 인사를 고하고 노잣돈 몇 푼을 받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졌던 돈이 다 떨어졌고, 아버지의 말처럼 거지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얻어먹을 곳을 찾다가 큰 부잣집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밥 좀 주세요” 하고 구걸을 하여,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비웠지만, 다음 끼니가 또 걱정이었습니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에 돌아보았더니, 들에 나가 일하던 머슴들이었습니다. 잠자리,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부잣집의 머슴이 되기로 작정하고 주인(主人)에게 간청을 하여, 그날부터 부지런하고 성실(誠實)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2년쯤 지났을 때 주인(主人)이 곳간지기로 발탁하여 창고를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이에 감동을 한 주인이 무남독녀(無男獨女)인 자기 딸 혼인(婚姻)을 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려고 옛 집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동안 둘째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몰라서 애태우던 마의선사(麻衣禪師)는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둘째 아들을 보고 매우 깜짝 놀랐습니다. 둘째의 얼굴이 재상(宰相)감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지 팔자를 타고난 둘째 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실제로 나중에 재상(宰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재상(宰相)이 될 팔자라고 했던 큰 아들(子息)은 늘 방탕(放蕩)한 생활을 즐겼으며 결국 나중에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지가 된 큰 아들의 얼굴을 보니까 거지가 될 상으로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마의선사(麻衣禪師)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세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사주불여신상(四柱不如身相)하고, 신상불여심상(身相不如心相)”이다. “사주(四柱)는 신상(身相) 보다 못하고, 신상(身相)은 심상(心相)보다 못하다.” 결국, 심상(心相)이 가장 으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일찍이 열자(列子)는 “운명(運命)은 잡다하게 뒤섞여 있어서 불분명하고, 또한 그가 힘쓰는 노력(勞力) 역시 다분히 기교와 간사에 불과하다. 그래서, 노력(勞力)은 운명(運命)에 굴복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컨대,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곤욕을 치른 것을 열자(列子)는 모두 다 운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운명(運命)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공자(孔子)가 현명한 군주(君主)를 만나지 못해 천하를 평안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은 천하 중생(衆生)의 업장(業障)의 힘(業力)이 워낙 커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자(孔子)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또한, 공자(孔子)는 “부귀(富貴)는 하늘에 달렸고, 생사(生死)는 운명(運命)에 달렸다.”라고 말했습니다. 맹자(孟子)의 운명론(運命論)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운명(運命)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한다.”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운명(運命)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그들의 이론을 드러낸 것에 불과 합니다.


현세(現世)에는 아는 자가 없나니, (相)도 보이지 말고, (占)도 치지 말지어다. 천지(天地)의 일은 때가 이르지 아니하면,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느니라.” “풍체(風體) 좋고 재주 있는 자를 보고, 기운을 잃어 생각하되 ‘저런 사람이 일을 이룰 것이요, 나와 같이 (拙)한 자가 어찌 큰일을 감당하리오.’ 하여 낙심(落心)하는 소리를 내면, 이는 스스로 일을 깨뜨리는 것이니, 아무 일도 못 이룰 것이요. 아무리 잘되려 하여도 못 될지라. 그러므로, 그를 호위한 신명(神明)들이 의구심을 내어 ‘저런 나약한 자에게 붙어 있다가는 우리 일까지 그르치게 되리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느니라.” 


인성치운’(人性治運)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성(人性)이 그 사람의 운명(運命)을 결정한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의 운명(運命)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주팔자(四柱八字)나 관상(觀相)도 중요하지만, 심상(心相) 즉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숙명(宿命)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서 피할 수가 없고, 운명(運命)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서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팔자타령만 하지 말고 마음의 자세를 바르게 하고 정성을 다하면 운명(運命)은 새롭게 개척될 것입니다. [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