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한반도 바둑판에 한국이 없다.

마도러스 2006. 12. 1. 07:17


한반도 바둑판에 한국이 없다.

 

[조선일보 2006.11.28]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은 2006년 들어 네 차례 통화했다. 2006.6월1일, 7월5일, 8월21일, 10월9일이다. 알려진 것만 그렇다. 얼굴을 맞댄 건 4월, 7월, 11월 세 차례다. 이 일곱 번의 대화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기에 “미국의 북핵 파트너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보도가 나오게 됐을까. 부시가 “두 나라는 이제 북핵 문제의 매우 중요한 동반자”라고 하자 후진타오가 “중국은 미국과 손 잡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맞장구 친 배경은 뭘까. 김정일이 2006년 7월 재외공관장들을 모아 놓고 “중국도, 러시아도 못 믿겠다”고 푸념한 이유는 뭘까.

 

2002년 부시가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자신의 크로퍼드 목장 구석구석을 구경시켰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당시 장쩌민은 부시로부터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미국은 중국이 북한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문제삼지 않겠다는 언질을 들었고, 후진타오는 그 묵계(默契)의 바통을 이어받아 구체화시켰다는 후문이 양국 외교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006년 7월 상원 청문회에서 “한반도에서 어떤 정치적 관계의 변화가 있더라도 미국은 그로부터 전략적 이득을 얻는 데 관심이 없다”고 증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말은 완곡한 표현이지만 김정일 정권이 바뀌거나 북한이 붕괴하더라도 중국이 원하는 형태의 중간 ‘완충지대’로 북한을 남겨 두겠다는 뜻이다.


미국 민주당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중국에 ‘아웃소싱’하거나 ‘하도급(subcontract)’ 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에선 중국이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대가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렇듯 한국의 머리 위로 공을 주고받고 있는데, 정부는 그런 미·중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우쭐대 왔다. 정부가 자주가(自主歌)와 민족끼리가(歌)를 목이 쉬도록 부르며 북한에 매달려 온 그 길은 강대국이 북한의 장래를 놓고 두는 바둑판에 한국은 관전조차 제대로 못하는 길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 주도로 통일할 기회는 그만큼 더 멀어지게 된 것이다. 동북공정으로도 모자라 조선족 자치주에 높이 18m 무게 520t의 웅녀(熊女)상을 세워 놓고 한민족의 시조(始祖)까지 넘보는 중국 입장에선 실속 없이 큰소리만 쳐 온 한국 정부가 속으로 얼마나 우스웠을까. 이런 중국의 낌새를 눈치챈 일본과 러시아도 한반도를 기웃거리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독일 주변 국가들은 일제히 독일 통일에 반기를 들었다. 프랑스는 “소련도 미국도 독일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영국은 “독일 통일은 모두에게 재난”이라고 했다. 이런 주변국들의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는 콜 서독 총리의 외교 안보보좌관을 지낸 호르스트 텔칙의 책 ‘329일(장벽 붕괴에서 독일통일까지)’에 일기 식으로 상세히 담겨 있다. 미국을 우선 후원자로 만든 뒤 소련과 영국 프랑스를 미국이 앞장서 설득하도록 했던 게 바로 서독의 비결이었다. 거꾸로 폴란드는 1930년대에 독일과 소련 틈바구니에서 균형을 잡는 모험을 하다가 1939년 독일과 소련으로부터 분할점령 당했다. 양쪽으로부터 버림받자 폴란드 대통령은 루마니아로 도망가 버렸다.


1888년 일본 시사풍자잡지 ‘도바에(トバエ)’엔 낚시라는 제목의 만평이 실렸다. 강대국들이 조선을 낚으려고 낚싯대를 드리운 장면이었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똑같은 시사 만화가 또 등장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주용중· 논설위원, 입력: 2006.11.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