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아내의 든든한 힘

마도러스 2006. 8. 21. 08:20

아내의 든든한 힘


일본 에도시대 어느 여인숙 집 데릴사위는 가업은 뒷전이고 책만 읽어대 처가 식구들이 애를 태웠다. 아내는 달랐다.
 
 “당신은 여인숙 주인에 그칠 분이 아닙니다. 집을 떠나 학문에 정진하십시오. 당신이 뜻을 이룰 때까지 몇 년이고 아이들을 기르며 기다리겠습니다.” 상경한 사내는 뒤늦은 공부 끝에 ‘만엽집(萬葉集)’ 연구로 대성한다. 일본 국학의 대가 가모 마부치(賀茂眞淵)다.
 

▶ ‘아내는 남편의 영원한 누님이다’ (팔만대장경). 허균(許筠)은 급제한 뒤, 먼저 간 아내의 삶을 담은 ‘행장(行狀)’을 써 기렸다.  “내 나이 아직 장난치기 좋아할 때였으나 부인은 조금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소. 그러나 내가 조금이라도 방탕해지면 번번이 나무랐소. ‘당신 집은 가난하고 어머니는 늙으셨는데 재주만 믿고 세월을 아무렇게나 보내니 세월은 빠릅니다.’ 부인은 늘 학문을 권했지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실연(失戀)에 방황하던 주인공 필립에게 장인 될 사람이 “물총새의 전설을 아느냐”고 묻는다. “물총새라는 놈은 말이네, 바다 위를 날다 지치면 수놈 밑으로 암놈이 들어가 등에 업고 난다네. ” 지난 주말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4.5t 트럭 부부운전사’ 이야기는 땅으로 내려온 ‘물총새 전설’이다. 부부는 업고 업히며 하늘길보다 거친 고속도로를 끝도 없이 내달린다.


▶ 화물트럭 몰던 남편이 덜컥 병에 걸렸다. 아내는 쉰셋에 운전을 배웠다. 서울~부산을 일주일에 세 번씩 함께 밤낮으로 왕복한 지 3년째다.  번잡한 시내 길은 남편이, 덜 까다로운 고속도로는 아내가 맡는다. 남편은 아내의 운전석 뒤에 누워 하루 네 차례 신 투석을 하곤 곯아떨어진다. 아내는 남편 코고는 소리가 “생명의 소리”라고 했다. 가끔 소리가 끊기면 손을 뒤로 뻗어 남편 손을 만져본다. 곤히 자는 남편이 고맙고 또 고맙다.


▶ 남편이 운전대를 잡을 때도 아내는 쉬지 않는다. 지친 남편에게 말도 걸고 팔도 주물러 준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을까. 자식들에겐 더 이상 손 벌리기 미안해 연락도 안 한다. 저희끼리 잘 살길 바랄 뿐이다. 속담에 ‘효자가 불여악처(不如惡妻)’라 했다.

 아무리 효자라도 자식보단 아내가 낫다. 모든 게 어둠일 때 아내가 빛이었다. ‘물총새 부부’가 날개를 접고 쉴 여로(旅路)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내는 “함께 다닐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했다. 어떤 사부곡(思夫曲)이 이를 따를까.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입력 : 2006.04.09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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