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만물상] '평'과 '㎡'

마도러스 2006. 8. 21. 08:19

[만물상] '평'과 '㎡'

 

1999년 미국 NASA가 쏘아 올린 화성 기후탐사선이 286일 비행 끝에 화성에 닿자마자 폭발했다. 140~150㎞ 높이 궤도에 자리잡아야 할 탐사선이 57㎞의 낮은 궤도로 진입하면서 대기권과의 마찰열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원인은 허망했다. 록히드마틴의 탐사선 제작팀은 야드법으로 탐사선의 제원 정보를 작성했고, 제트추진연구소 조종팀은 이를 미터법 단위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 야드법을 쓰는 미국과 미터법의 캐나다 사이 국경지역에서도 사고가 자주 난다. 제한속도가 ‘마일(mile)’로 표시돼 있는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가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들어가서도 단위가 ‘킬로미터(㎞)’로 바뀐 걸 모르고 무심코 과속하다 사고가 나는 것이다. 세계 도량형 기준이 미터법으로 통일되고 있는데 미국과 영국에선 아직도 전통적인 야드법이 통용되고 있다.

  

▶ 외국인이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가 도량형 단위다. 1피트는 12인치, 1야드는 3피트, 1마일은 1760야드 식으로 단위가 복잡해 종잡을 수가 없다. 미국인들도 부피단위인 1쿼트가 32 온스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야드·파운드법 대신 미터법만으로 수학을 가르치면 1년에 82일을 절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 정도는 조금 덜하지만 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1961년 척관법을 폐지하고 미터법만 쓰도록 했지만 일상생활에선 여전히 ‘근’ ‘되’ ‘평’들이 통용된다.  더욱이 한 근이 쇠고기는 600g, 포도·딸기는 400g, 채소는 375g 식으로 품목마다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지난해 정부 문서에서조차 척관법 단위가 100건 넘게 사용됐다고 한다. 미국도 1975년 법적으론 미터법을 도입했지만 국민 호응이 거의 없다.

  

▶ 정부가 어제 법정 계량단위 미터법을 정착시키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산업자원부에 정착추진팀을 만들어 실태조사와 국민 홍보·교육을 벌이겠다고 했다. 세계 표준인 미터법 사용은 대세이자 필연이다. 신세대들은 이미 ‘평’보다 ‘㎡’가, ‘근’보다 ‘g’이 더 익숙하다. 그러나 아파트업체들이 법으로 금지된 ‘평’ 대신 ‘py’라는 약자를 만들어 분양광고에 ‘33py’ ‘45py’라고 쓰는 걸 보면 세월이 해결해주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관습은 그렇게 질긴 것이다.

 

조선일보 김기천 논설위원 입력 : 200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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