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욕야카르타의 비극

마도러스 2006. 8. 21. 08:18
욕야카르타의 비극

2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인도네시아 영화 ‘베개 위의 잎새’는 도시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아이들을 좇는다.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 아이들은 물건을 훔치거나 싸움질에 끼어들고 본드 냄새를 맡는다. 결말은 우울하다. 아이들은 열차 지붕에 올라탔다 터널에 부딪혀 죽고, 보험사기단에게 볼모로 잡혀 살해되고, 칼에 찔린다. 감독 가린 누그로흐가 도쿄영화제 특별상을 받은 이 영화의 무대가 욕야카르타다.  

 

▶ 중부 자바의 고도(古都) 욕야카르타는 산업화에서 처져 가난의 그늘을 달고 있긴 해도 ‘인도네시아의 경주’라 할 역사·문화·교육 도시다. 8~10세기 양대 유적 불교사원과 힌두교사원을 함께 거느린 고대 자바문명의 요람이다.


1814년 영국 총독 래플즈는 욕야카르타 북서쪽 밀림에서 장대한 석조물을 발견했다. 화산재와 정글에 파묻혀 3분의 2 넘게 무너져 있었지만 그는 “피라미드의 경이에 조금도 못지않다”고 찬탄했다. 세계 최대 불교사원 보로부두르였다.


▶ 유네스코는 1973년부터 10년간 보로부두르를 해체해 복원했다. 부처와 보살, 인간들을 일일이 새긴 사방 20㎝짜리 돌 100만개를 접착제 없이 차곡차곡 쌓았다. 맨 아랫기단 4면 길이가 각기 120m, 높이가 35m에 이르렀다.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힌두사원 프람바난은 높이 47m의 시바신전을 축으로 250개 석탑들을 세운 걸작이다. 가파른 석탑 사방에 정교하게 새겨놓은 부조들이 경탄스럽다.


▶ 욕야카르타는 문화적 전통에 걸맞게 자바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불린다. 인도네시아를 수백년 지배한 네덜란드에 맞서 싸운 봉기의 도시다. 1949년 네덜란드와 독립전쟁을 벌일 때 사람들은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옛 무기로 무장하고 거리에 나서 식민지배자들을 몰아냈다.


자바의 자존심과 자랑 욕야카르타를 2006.05.27일 지진이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사망자만 5000명을 넘어섰다. 보로부두르는 다행히 지진이 비껴갔지만 프람바난은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 2년 전, 2004.12.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에서만 50만명이 숨진 쓰나미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다시 인도네시아를 덮친 불행이 잔인하다.

 

‘불의 고리(Ring of Fire)’라는 환태평양지진대에 올라 앉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재난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앙은 인간을 시험하는 참된 시금석이기도 하다. 지구촌 이웃들이 욕야카르타에 내미는 따뜻한 손길의 행렬에서 우리가 뒤처질 수는 없다.

 

김기철 논설위원  입력 : 200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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