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태국 왕의 절대적 권위

마도러스 2006. 8. 21. 08:14
태국 왕의 절대적 권위

뮤지컬과 영화 ‘왕과 나’는 근대화에 앞장섰던 태국왕 몽쿳(라마 4세·1851~68년)의 영국인 가정교사가 남긴 자서전을 각색했다.
 

이를 리메이크한 영화 ‘애나 앤 킹’(1999년)에선 홍콩배우 주윤발이 몽쿳 왕으로 출연해 가정교사 애나와 속 깊은 정을 키운다. 영화 속 태국 풍경은 그러나 말레이시아 랑카위 인근이다. 태국인들은 영화 제작 자체를 반대했다. 무술검객 같은 주윤발이 왕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13세기에 처음 들어선 수코타이 왕조부터 지금 챠크리 왕조까지 태국 왕실은 정변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 1932년 지식인들이 무혈혁명으로 입헌군주제를 들였을 때 왕실은 바람 앞 등불이었다. 영국으로 쫓겨간 라마 7세는 “국가 정책에 대해 발언하려던 내 뜻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물러났다. 어린 라마 8세는 섭정을 받다 총에 맞아 죽었다.

 

▶1946년 18세에 왕이 된 푸미폰(라마 9세)은 불교의 이상적 통치자 ‘탐마라차’의 길을 걸었다. ‘보살 행(行)’의 길이다. 푸미폰 왕은 지금도 한 해의 절반 넘게 궁을 떠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민성(民聲)을 듣는다. 지난해 몇 달이나 가뭄이 든 동북부에선 일주일 식음을 끊고 고통을 함께 했다. 인공강우 전문가로 꼽히는 왕이 애쓴 끝에 결국 단비가 내렸다고 한다.

 

태국 사람들은 지폐를 구기거나 접지 않는다. 왕이 그려져 있어서다. 집집마다 왕과 왕비 초상화가 걸려 있다. 10년 전 푸미폰 왕 즉위 50주년 땐 술집과 마사지업소들이 “경건하게 지낸다”며 문을 닫았다. 국민적 퇴진요구에도 버티던 탁신 총리가 그제 푸미폰 왕을 만나고 나와 사임을 발표했다. 탁신은 “오는 6월 국왕 즉위 60주년을 어수선하게 맞을 순 없다”고 했다. 왕의 권유로 물러나는 사람이 사임 이유를 왕에 대한 충성에서 찾을 정도다.

 

▶푸미폰은 17차례 쿠데타를 겪고도 정치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권위를 지켰다. ‘탐마라차’ 수칙에서 공정·온화·불노(不怒)·인내의 덕목을 실행한 덕분이다. 태국 영자신문 ‘네이션’은 “왕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만 나서 문제의 핵심을 짚은 뒤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풀도록 할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의 권위는 말을 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한껏 말을 아꼈다가 마지막 순간에 정곡을 찌른다. 20여 입헌군주국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군주라는 푸미폰에게서 우리 지도자들이 배울 점이다.

 

주용중 논설위원 입력 : 2006.04.06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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