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액체 폭탄'의 막강한 위력

마도러스 2006. 8. 15. 01:03
'액체 폭탄'의 막강한 위력

 

1995년 필리핀 마닐라의 주택가에서 불이 났다. 불난 집에 세 들어 살던 청년들이 도망치듯 사라진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가 뜻밖의 횡재를 했다. 미국행 여객기에 대한 폭탄테러 계획이 담긴 노트북과 폭발물을 발견한 것이다. 노트북을 되찾으려고 돌아왔던 테러범 한 명을 붙잡아 ‘보진카 계획’으로 알려진 항공기 테러음모에 대한 자백도 받았다.


▶ 이들은 11대의 미국 여객기 화장실에 액체폭탄을 숨겨놓고 중간 기착지에서 내리고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시키려 했다.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폭탄테러 공격을 했던 람지 유세프가 주범이었다. 필리핀의 통보를 받은 미국은 태평양지역에서 이륙한 미국 국적 항공기들에 회항 명령을 내렸다. 비행기 수색에서 폭발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튿날 비행이 재개될 때 탑승객들은 향수, 화장수, 술, 음료수 같은 액체물품을 지니고 탈 수 없었다.


2006.08.09일, 영국에서 적발된 여객기 테러음모는 ‘보진카 계획’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미국행 여객기를 겨냥한 것도 그렇고 탄산수로 위장한 액체폭탄으로 항공기 여러 대를 대서양 상공에서 폭파시키려 한 것도 비슷하다. 이 바람에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미국행 항공기 탑승객은 액체 휴대품을 기내에 갖고 들어갈 수 없게 됐다. 11년 전과 달리 이번엔 액체물품 검색과 반입금지가 제도화되고 더 오래갈 전망이다.


▶ 지금까지 액체폭탄이 낸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나라다. 1987년 중동 건설현장에 나갔던 근로자들을 태우고 서울로 오다 115명의 인명과 함께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한 KAL 858기 사건 이다. 당시 북한 공작원이었던 김현희 등이 사용한 폭탄이, 일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숨긴 C(컴포지션)4 폭약과 함께 술병에 넣은 액체폭탄 PLX였다.


▶ 액체폭탄은 발화될 때 기체로 바뀌면서 음속을 넘는 속도로 팽창해 순식간에 부피가 1000배 넘게 커지는 데서 폭발력이 나온다. 적은 양으로 여객기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다. 음료수나 우유 병, 캔에 쉽게 숨길 수 있고 찾아내기도 어렵다.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니트로메탄 같은 화학재료를 구하기도 쉬운 편이어서 매우 두렵고 골치 아픈 존재다. 액체물품 휴대를 아예 금지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별로 없다. 이런 ‘괴물’이 테러집단 손에 들어있으니 비행기 타기가 끔찍한 일이 돼버렸다.


김기천 논설위원 , 입력: 200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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