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영화 '왕의 남자' 그리고 연극 '이(爾)'

마도러스 2006. 8. 21. 08:15

영화 '왕의 남자' 그리고 연극 '이(爾)'

 

영화를 담당한다하니 요즘 그런 질문 가끔 받습니다. ‘왕의 남자’가 왜 그리 인기가 좋으냐는. 미처 보지 못한데다 저 스스로도 궁금하기도 해서 주말에 영화를 한번 챙겨봤었습니다.

기대치가 한껏 높아져서였을까요. 의외로 저는 조금 싱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준기라는 배우도 약간은 시큰둥했구요. 연산군을 맡은 정진영이나 장생을 맡은 감우성보다도 연기나 이런 면은 조금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강했습니다. 거기다 여성스러움이나 이쁘다는 것도, 글쎄요 저는 별 감흥이 없더군요.

그러다 ‘왕의 남자’의 원작이라는 연극 이(爾)를 보게 됐습니다. 그때서야 뒷통수를 딱∼ 때리는 느낌이 오더군요. 아∼ ‘왕의 남자’는 정말 여자를 위한 영화구나하는 생각 말입니다. 흔하디 흔한, 남자는 ‘권력과 투쟁’에 몰두하고 여자는 ‘사랑과 관계’에 목말라한다는, 진부하기까지한 도식이 ‘왕의 남자’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얼핏 그러려니 하면서 손에 잡히지 않던 그림이 손에 꼬옥 쥐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광대의 눈을 빌어 세상을 비웃는다? 실록 한 줄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풀어낸 탄탄한 구성력? 화려한 색채와 광대의 곡예라는 볼거리? 물론 그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극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이준기의 공길이라는 캐릭터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연극 ‘이’에서 공길은 ‘남성적’으로 그려집니다. 물론 여자 역할을 맡긴 하지만 공길이라는 인간 자체는 권력욕에 불타올라 연산군의 총애를 이용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겁니다.

 

반면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은 정말로 여성적입니다. 생긴 것에서 꾸민 것까지. 그렇기에 연극 ‘이’에서의 연산군은 광포한 군주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광포하기 보다는 철들지 않은 어린애로 그려집니다. 치마폭으로 기어드는 연산군에게 장녹수가 젖줄까라며 달래는 장면을 보면, 무슨 구순기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처럼 보일 정도지요.

이렇게 쭉 인물을 그려나가다보면 사실 ‘이’와 달리 ‘왕의 남자’에서 왕이라는 신분, 광대라는 신분 그 자체가 중요하긴 해도 핵심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광대와 왕과 기생출신 색녀라는 출신계급과 그에 따른 지배-권력 관계가 아니라 4사람 간의 엇갈리는 애증의 관계가 더 눈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뭇 남자들에게 돌려지는(?) 공길을 그토록 보호하려 한 장생은 과연 인간적인 의리 때문에만 그랬을까요. 막바지에 가면 다른 놈을 마음에 품고 있다며 공길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씬이 있지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합니다. 그렇다면 공길이 연산군의 ‘권력에 굴복했다.’고 보기도 어렵겠죠. 그렇기에 궁을 나가자는 장생에게 마지막 연극은 한번만이라도 하고 나가자고 하죠. 거기에다 자기 보고 활을 쏘라는 연산군에게 차마 활을 쏘지 못하고 기둥에다 활을 맞혀버립니다.

 

전형적인 애증의 관계 아닐까요. 그런 연산군의 사랑을 앗아간 공길이 미워 ‘니 놈이 진짜 남자인지 벗겨보자.’며 달려드는 장녹수도 마찬가지겠지요. 공길을 중심으로 장생 연산군 장녹수가 얽히고 섥힌 그런 묘한 애증의 관계. 그게 정말 관객을 움직인 힘이 아니었을까요.

그 때 어렵지 않게 떠오른 것이 바로 멋진 남자들을 다룬 순정만화였고,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꽃미남들의 동성애 판타지를 그린 야오이 만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팬들이 움직이고, 그 남자친구 남편이 끌려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주변에 한정된 것인지는 몰라도 대개 여자들은 가슴이 먹먹해온다는 반응인데 반해, 남자들은 무덤덤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적 사실에서 상상력을 가미한 탄탄한 스토리’보다는, 외려 그런 방식으로 제공되는 판타지가 ‘왕의 남자’가 가진 진정한 힘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혼자만 생각인가요.

 

서울신문. 조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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