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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와 특수아동 교육의 중요성

마도러스 2006. 8. 8. 17:49

헬렌 켈러와 특수아동 교육의 중요성


        출처: http://cafe.daum.net/do92 , dosu8888@daum.net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는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지성이다. 그녀의 위대성은 그녀가 갖고 있었던 장애를 이겨낸 그 불요불굴의 정신력도 큰 몫을 했지만, 그보다도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 뒤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했던 그녀의 위대한 지성과 인류에 대한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헬렌 켈러의 잠재적 위대성은 헬렌 켈러가 만난 교육의 힘을 통해서 세상에 그 빛을 발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이 결코 우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그녀의 부유한 가정 환경 덕분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또한 그러한 환경이 자신과 같은 또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님 또한 알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또한, 그런 이들에게도 자기가 누린 것과 같은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실천한 사람이었다.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엄청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여성 헬렌 켈러는 빛의 천사라 불리워지며, 3중 불구자이면서도 절망하지도,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던 그녀는 특수 아동들의 희망이자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녀의 왕성한 의욕과 꿋꿋한 의지,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스스로 피눈물 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녀는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로서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되었고, 인문학 및 법학 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헬렌 켈러는 한평생 맹인 복지 사업에 헌신했고, 가는 곳마다 신체장애자들로 부터 '파랑새의 방문'이라고 크게 환영을 받았으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세 가지의 고통을 이긴 성녀'로 우러름을 받았다. 우리는 헬렌 켈러의 그 숭고한 사랑의 정신은 물론, 그녀의 굳은 의지에 대해 선망하게 된다.


 1880년 6월27일은 미국의 사회사업가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가 미국 앨러배머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난 날이다. 아버지는 전처소생의 아들 2명을 둔 상태에서 스물 두 살의 아가씨와 결혼하여 헬렌 켈러와 딸, 아들을 두었다. 어머니와 큰오빠와의 연령 차이는 9살로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이었고,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않았고 부부가 화목하지 않은 상태에서 헬렌 켈러가 태어났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태어난 헬렌 켈러는 어머니의 집중된 관심을 받으면서 자랐으며, 태어난지 19 개월 만에 열병을 앓아 청각 시각을 잃었다. 그래서 볼 수도 없었고 들을 수도 없었으며, 따라서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다. 이렇듯 헬렌 켈러는 중증 장애로 불리한 조건으로 생활을 하였다. 사람의 성격은 사회적인 관계 혹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신체기관의 열세가 능력과 기술을 숙달할 수 없는 이런 아동시기에 헬렌 켈러는 열등감을 경험하였다. 그래서인지 헬렌 켈러는 제멋대로였고 성격이 난폭해서 집안 식구들을 몹시 괴롭혔다. 이러한 반항적 성격은 아동기 초기에 형성되었으며, 중요한 요소는 출생 환경, 육체적인 열등함, 자랄 때 방치 되었는지 또는 응석받이로 자랐는지 등이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이성, 사회적 관심, 자기초월 등의 특징이 있는 반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열등감,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힘, 우월감 및 자기 안전을 위한 자기 중심적인 관심 등의 특징이 있다.


 헬렌 켈러 뿐만 아닌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겪는 행위들의 하나로 다른 사람들에게 버럭 화를 내거나 할퀴거나 물어뜯거나 때리거나 꼬집는 행위가 있다. 헬렌 켈러 역시 어떤 사람도 감히 그녀를 길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헬렌은 제멋대로였고, 성격이 난폭해서 집안 식구들을 몹시 괴롭혔다. 접시를 깨고 등불을 부수고,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접시 위의 음식을 손으로 휘저어 놓았다. 이러한 행위들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좌절감과 열등감(inferiority)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러는 와중에 동생 밀드레드가 생겨 질투심이 생긴 헬렌은 동생의 요람을 뒤집어 아기를 죽일 뻔했다. 보상은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건전한 반응이다. 이와 관련해 아들러는 인간은 항상 좀 더 나아지고 싶어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열등감이 발달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헬렌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열등감의 보상으로 끊임없이 공부했다. 선생님의 손가락의 움직임에서 배움을 시작하여 명사, 형용사, 동사 등을 배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우월감(superiority)을 향한 노력은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욕구에서 나오며 환경을 더욱 잘 통제할 수 있도록 권력 혹은 힘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긍정적인 경향은 사회적인 관심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지향하는 이타적인 목표이며 부정적인 경향은 개인적인 우월성을 추구하는 자기존중, 권력, 개인적인 허세 같은 이기적인 목표이다. 헬렌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지향하는 예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투스쿰비아의 초등학생들이 헬렌을 크리스마스 행사에 초대했을 때 헬렌과 다른 모든 아이들이 받을 선물이 놓여 있었다. 헬렌은 선물을 나누어주는 일을 맡게 되어 무척 즐거워했다. 하지만 한 아이에게 줄 선물이 없었다. 헬렌은 잠시 몹시 당황하였다가 조금 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 중 하나인 찻잔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물로 가장 예쁜 선물을 골라놓았지만 그 것을 친하지도 않던 아이에게 주고 굉장히 기뻐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관용의 증거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게 만들려는 헬렌 나름대로의 처세법이다. 다른 예로는 헬렌과 마찬가지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게다가 집안까지 가난한 아이인 토미를 위해 모금을 시작한 일이다. 헬렌을 모금을 위해 간절한 호소를 담은 편지를 하루에 여덟 통씩 썼다.


 헬렌 켈러의 나이 7세 때, 설리번이라는 가정교사를 맞이하여 설리번의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 헬렌 켈러는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고, 10세 때부터는 말도 하였다. 이것은 설리번의 뛰어난 지도 방법의 덕분이기도 하였겠지만, 한번 가르쳐 주면 결코 잊지 않는 헬렌의 명석한 두뇌와 끈기 있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신체기관의 불완전함을 동정, 기피, 조소 등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진보를 위한 자극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헬렌 켈러는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항 강연을 하였고 책을 써 냈다. 사례금으로 들어온 돈은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세계 1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것의 부당성을 설파함으로써, 전쟁과 폭력으로 20세기를 맞이해야만 했던 인류의 감성과 지성에 공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라는 추악한 길로 접어 들었음을 그래서, 미국은 그 길에 들어서서도 그리고,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지속해서도 안 된다는 그녀의 주장이야말로 헬렌 켈러를 위대하게 만든 진면목(眞面目)들이다.


 이처럼 위대한 시대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 지게 되었는가? 거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적인 시대상황은 물론, 헬렌 켈러 자신이 감당해야만 했었을 개인적인 일들 또한 간과하기 어려운 요소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매개해서 그녀를 형성시켜나간 것은 모두 "교육의 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일생을 통해서 세상에 토해낸 가치들을 가능하게 한 일체가 모두 교육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교육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총체적인 틀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서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한 개인 안에 숨겨진 잠재성을 끌어내고, 그 과정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었다.


 적극적인 길의 안내자, 그리고, 충실한 내부 성찰의 상담자, 헬렌 켈러의 자서전은 교육이 갖고 있는 바로 이러한 속성들을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교육의 특수 영역인 특수 아동의 교육에 대해서 보다 큰 초점을 둬서 구체화해야 하는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특수 아동적 요소를 갖고 있는 특수 아동을 전형적인 아동으로 양육해야 하는 특수 아동 교육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질문과 해답을 제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스승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내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날은 나의 스승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날일 것이다. 선생님을 만난 후의 나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놀라곤 한다. 그것이 바로 1887년 3월 3일, 내가 일곱 살이 되기 3개월 전의 일이었다.” 헬렌 켈러의 이러한 고백은 그 고백이 전달하고 있는 감정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온전히 그 느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던 그녀에게 삶의 빛을 던져주었던 기억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가능하도록 했던 교사의 힘과 교육의 힘은 시대와 공간을 그리고 경험의 한계를 한참이나 뛰어 넘어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단지 상상만 가능할 뿐이다. 그해 3월 3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하자.


 “설리번 선생님은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인형 하나를 주셨다. 내가 잠시 그 인형을 갖고 놀고 있을 때, 설리번 선생님은 내 손바닥에 천천히 'd-o-l-l' 라는 단어를 쓰셨다. 나는 곧 그 손가락 놀이에 흥미를 갖고 흉내를 내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그 문자를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어린애 같은 기쁨과 자랑스러움으로 아래층 어머니 계신 곳으로 달려가 손을 올려 'doll' 이라는 문자를 썼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나 자신이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단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는 단지 원숭이같이 손가락을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여전히 그 의미도 잘 모르면서 많은 단어를 써서 기억했다. 그 중에는 '핀', '모자', '컵' 같은 명사도 있었고, '앉다', '서다', '걷다'와 같은 동사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까지는 몇 주일이나 더 걸렸다.”


 유아들이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의도된 교육이 헬렌에게도 시작된 것이었다. 다만,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에는 몇 주일이나 더 걸렸다. 하지만, 그녀의 새로운 삶은 그러한 의도된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다. 다음은 너무도 유명한 장면인데, 바로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이 무던히도 참아내고 견디어 낸 결실이, 그래서, 잠들어 있던 헬렌의 잠재성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바로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전환이 일어나는 그런 순간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다. 우리들은 덩굴의 향기에 끌려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 길의 끝에는 우물이 있는 오두막집이 있었다. 누군가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손을 물 속에 담갔다. 찬물이 한쪽 손에 뿜어졌을 때, 선생님은 다른 한 손에 물이라는 단어를 썼다. 나는 가만히 서서 처음에는 천천히, 다음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나는 잊고 있었던 어떤 것이 안개 저 쪽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언어의 신비가 내 앞에 다가온 것이다. 나는 'w-a-t-e-r' 라는 단어가, 손에 내뿜는 이 멋지고 차가운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 때 깨달은 것이다.”


“잊고 있었던 어떤 것이 안개 저 쪽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라는 부분은 마치도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그 '문리가 터진다'는 그런 장면을 연상시킨다. 확실히, 이런 순간은 교육의 과정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놀랍고 신비로운 장면이다. '터진다' 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 모든 것이, 한 번에 고였던 제방의 물이 '터지듯' 들이닥친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터짐'이 저절로 가능한 일인가? 제방이 터지기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물 (잠재력)이 고여 있어야만 하고 거기에 또한 그 만큼 많은 물 (교육)이 계속 보태져야 한다. 헬렌 켈러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그 이전에 수없이 반복해서 이루어졌던 무수한 반복들의 축적이 바탕이 되었다. 우리는 그 무수한 반복과 축적을 교육이라 부른다.


 물론, 교육의 모든 장면이 위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치는 아이도 있을 수 있고, 백을 알려주어도 하나 밖에 알아듣지 않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원리는 모두 같다. 분명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전환의 시기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학생들의 잠재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전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이 완벽해 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토록 중요한 순간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어도, 그녀에게는 아직도 '언어'라는 것은 너무도 이해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다음은 좀 길지만 전체를 인용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나는 뜰에 피어 있는 제비꽃을 발견하고, 선생님이 계신 곳에 가지고 갔다. 선생님은 나에게 뽀뽀를 해 주시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어머니를 제외한 사람의 뽀뽀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자 설리번 선생님은 가만히 나를 안고 손에, "사랑해, 헬렌." 이라고 썼다. "사랑이라니요?" 나는 물었다. 선생님은 나를 더욱 꼬옥 끌어안으시면서, "여기야." 라고 하며 나의 심장을 가리켰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의 말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하였다. 그 때까지 나는 손에 닿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제비 꽃의 냄새를 맡고 반은 말로 반은 몸짓으로, "사랑이란 꽃의 향기를 말하는 것입니까?" 라는 의미의 질문을 했다. "아니야." 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또 생각했다. 그 때 따뜻한 태양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닙니까? 이것이?" 나는 따뜻함이 비춰 오는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태양의 따뜻함 덕분에 모든 것이 성장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 태양만큼 아름다운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설리번 선생님은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나에게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이상했기에, 갈피를 못 잡고 실망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는 실에 구슬을 꿰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두 개의 큰 구슬과 세 개의 작은 구슬 등을 섞어 꿰어 균형 잡힌 한 덩어리를 만들려고 했다. 나는 많은 잘못을 했고, 설리번 선생님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몇 번이고그 잘못을 지적했다. 그 때 설리번 선생님이 나의 뺨에 손을 대며 't-h-i-n-k' 라고 쓰셨다. 순간, 나는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일어나는 과정의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추상적인 관념을 명확하게 이해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헬렌 켈러에게 있어서는 언어에 대한 발견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수도 있었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도무지 방향조차 잡지 못했던 것이다. 또 다른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그 시간들은 노력으로 채워져야 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과 인내의 시간 그리고 '학생'을 노력으로 이끌었던 모든 일들을 책임졌던 사람이 바로 헬렌의 스승 설리번이다. 헬렌이 그녀의 스승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지 못했더라면 헬렌의 내부에 잠자고 있던, 그녀만의 개성과 재능은 어쩌면 영원히 잠을 잤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헬렌은 그녀의 스승에 대해서 평생을 감사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설리번과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그런 교육을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이다.


 사실, 설리번은 헬렌의 어린 시절의 교육 그리고, 학교 교육 뿐 아니라, 헬렌의 대학생활에까지 함께 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설리번 선생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대단한 능력도 있었겠지만, 그런 그녀를 고용함으로써 헬렌으로 하여금 교육을 받게 해 줄 수 있었던 헬렌 부모의 경제력이었다. 헬렌 스스로 이런 점을 절감했기에 훗날 그녀가 줄기차게 사회적, 경제적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 일관된 관심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헬렌의 얘기와 관련시켜서 교육, 특히, 특수 교육, 이라는 측면에서 살펴 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육은 학생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그런 교육은 오랜 시간의 인내와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며, 전문가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셋째, 헬렌 켈러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학생 중에는 이 도움이 보다 많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결국, 충분한 교육은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수 교육도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좀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 결과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와 인류 전체에 빛을 던지는 위대한 인재의 배출로 나타날 것이다. 특수 교육이 필요한 소위 특수 아동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연환경의 파괴가 심화되면서 증가 일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적 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복지의 관점에서 이들에 대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이들을 대할 때, 특수 아동 대 일반 아동이라는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부모들이 특수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수 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으로 대하는 경향이 가시지 않고 있다. 종국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도 속단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속단할 수가 없고 속단해서도 안 된다. 어찌 헬렌의 부모가 자신들의 딸이 태어날 때 그 모습 그대로,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며 인류의 양심적인 지성을 일깨우는 위대한 시대 정신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교육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이 바른 방향이고 정답이다.


 다만, 그런 교육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되돌아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헬렌이 평생을 바쳐서 던졌던 질문을 의미해 보아야 한다. “왜,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보아야 한다. 특수교육에 대해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나에게 헬렌과 같은 학생을 만나는 계기가 온다면, 나는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우리에게 있어서 특수 아동과 특수 교육의 문제는 교육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질문의 연장 선(線) 상에 놓여있는, 본질은 같지만 모습을 달리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평범할 지 모르지만, 그 어머니의 눈에는 또 그 아버지의 눈에는 특별한 존재들인 우리 아이들의 교육의 문제와 특수 아동의 문제는 그리 먼 것이 아닌 것이다. 특히, 교육을 전술한 바와 같이 무엇인가의 전달을 의미하는 개념에서 이해와 대화라는 개념으로 옮아간다면 우리는 특수아에 대한 특수 교육의 문제를 교육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개념의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이 우리로 하여금 교육의 본질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녀의 자서전은 우리로 하여금 정상 교육과 특수 교육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보다 큰 차원에서의 '교육'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해주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의 연보이다.

1880년 :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출생

1882년 : 1월 열병을 알고 난 후, 청각. 시각 상실, 말도 못하게 됨

1887년 : 애니 셜리번 가정 교사. 점자 공부를 시작함

1888년 : 5월 26일에 퍼킨스 맹아 학교에 입학함

1890년 : 보스턴의 농아학교 플러 선생님으로부터 발성법 배움

1891년 : 벙어리이며 귀머거리 소년인 토미를 위해 모금운동

1893년 : 모금 운동을 벌여 터스컴비아에 도서관을 세움

1894년 : 뉴욕의 라이트휴메이슨 농아 학교에 입학, 2년간 공부

1896년 : 7월 8일, 세인트클레어, 전국농아교육협회대회 강연

1897년 : 래드크리프 대학의 입학 예비 시험을 치름

1899년 : 래드크리프 대학의 입학 시험에 합격

1903년 : 잡지사 숙녀 화보에서 헬렌의 전기를 연재함

1904년 : 영문학에서 우등상을 받으며 래드크리프 대학을 졸업

1906년 : 주지사 추천으로 매사추세츠주의 맹인교육위원회 위원이 됨

1910년 : 화이트 선생님에게 발성법을 다시 배움

1913년 :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강연회를 개최함

1916년 : 각지를 다니며 전쟁 반대 강연을 함

1918년 : 자신이 쓴 책이 영화화되어, 스스로 주연 배우로 출연

1920년 : 각지 강연 후, 그 수입을 불행한 이웃에게 기부함

1928년 : 두 번째 자서전 (철학과 종교에 관한 문제)을 완성함

1931년 : 템불 대학에서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32년 :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42년 : 제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구제 운동을 전개함

1964년 : 9월 14일에 미국의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음

1968년 : 88세의 나이로 6월 1일에 코네티커의 자택에서 세상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