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역사.문화

티베트 노인이 하늘로 떠날 땐…

마도러스 2006. 7. 26. 03:40

티베트 노인이 하늘로 떠날 땐…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백발의 위엄’을 지키며 떠나도록 배려하는 나라가 있다. 하지만, 우린 그들을 너무 외롭게 보내고 있다.
 
▲ 이성표 그림
지금도 남인도에서 만났던 한 노인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젊은 시절 달라이 라마경호원이었는데, 은퇴한 뒤 티베트인 공동체가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서였을까. 시력을 잃은 불편한 몸이건만 악수를 건네는 그의 태도는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다.

 

1959년, 티베트의 정치적,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침략을 피해 인도로 망명할 때 그의 곁을 지켰던 전설의 경호원다운 풍모였다. 그때 젊디젊었던 달라이 라마는 이제는 칠순이 넘었고, 노인 역시 망명지에서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평생 간절히 원하던 고국 방문이 이뤄지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르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나라는 일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면 살아가는 일도, 늙어가는 일도 고통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찾아오는 젊은이들, 아직 말을 못하는 어린애들, 앞으로 살아나갈 모든 이들과 하나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떠나도 티베트인들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은 이들을 통해 계속될 것이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의 삶이 내 안에서 계속되었던 것처럼.”

 

노인의 얼굴에는 황혼의 쓸쓸함 대신 자부심과 확신이 넘쳤다. 나는 티베트인들에게 매료되어 인도와 네팔, 티베트의 여러 곳을 다녔다.

 

내가 티베트인 사회를 보며 놀란 일 가운데 하나는 어느 정착촌에나 망명 2, 3세대를 위한 학교가 있는 것처럼, 망명 1세대를 모시는 공공 양로원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지나간 세대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고, 고난의 현대사를 살아낸 노인들이 공동체에서 소외된 채 말년을 보내지 않도록 섬세하게 돌봤다.

오늘날 언론을 통해 노인들의 자살률 증가 소식이나, 혼자 살던 노인이 세상을 떠난 지 여러 날이 지나 발견되었다는 쓸쓸한 기사를 자주 접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우리 사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자원으로도 사람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며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티베트인들의 따뜻한 마음이다.

 

그래서일까. 티베트 사회에서는 치매에 걸리는 노인도, 정신질환을 앓는 이도 드물다. 살면서 얼마나 남을 도왔는지, 미움과 집착을 덜어내고 얼마나 청정한 마음을 닦았는지 여부를 성공한 삶의 기준으로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경쟁 대신 살아 있는 생명 모두와 공존하는 법을, 증오 대신 잘못을 저지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민족다운 건강함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양극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지만, 삶과 죽음의 양극화도 만만치 않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시선은 많지만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기반을 만들어준 세대에 대한 무관심과 정신적 유기(遺棄)는 충격에 가까울 정도이다.

 

우리의 영혼이 삶의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어떻게 맞아야 할지 불분명한 미래와 노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가 각박해지는 것은 삶에 대한 좌표 설정을 한 방향에만 집중한 나머지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는 법을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 죽음학 연구소의 태동이나 죽어가는 이의 곁을 지켜 주는 호스피스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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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쓸쓸하게, 고통스럽게 이 세상과 작별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또 있을까. 뉴스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도록 방치된 노인들 소식을 들을 때면 생각한다. 세상 한구석에서 또 다른 내가 외롭게 떠났구나, 고난의 현대사를 살아낸 그이를 너무 매몰차게 보냈구나….

 

티베트의 오래된 가르침은 죽음에 대해 누구나 한 번은 떠날 길이지만, 아무도 진정으로 떠나는 이는 없다고 가르친다.

 

떠난 이는 돌아와서 보슬보슬한 흙이 되고, 아이의 웃음이 되고, 연초록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나무의 봄눈이 된다. 우리의 삶은 돌고 돌아 하나로 연결된다. 지나온 시간 앞에, 그리고 다가오는 삶의 마지막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고 성숙해지길 바라 본다.

 

정희재 작가·여행가, 입력 : 2006.03.31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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