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조선)

[스크랩] 조선시대에도 이혼과 재혼이?

마도러스 2006. 7. 1. 22:57

조선시대에도 이혼과 재혼이

 

조선 국법에 의하면 이혼과 재혼은 얼마든지 가능


요즘 한국 사회에 이혼, 재혼 열풍이 불고 있다. 쉽게 만나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문화가 자리잡아서일까. 어느 분야에서나 세계 랭킹을 따지는 민족답게 이혼율 랭킹을 따진다면 아마 세계 상위권에 들 것이 분명할 정도로 이혼과 재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풍속이 됐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이혼과 재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조선의 국법에 의하면 이혼과 재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도 이혼과 재혼을 둘러싸고 온갖 사건 사고들이 끊이질 않았다.

태종 5년(1405) 8월 23일 실록에 마천목(馬天牧)의 처 김 씨 이야기가 등장한다. 김 씨는 은천군 조기(趙琦)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이 죽자 홍인신(洪仁愼)이란 관리에게 재가했는데, 처녀로 속이고 결혼했다가 발각되어 친정으로 쫓겨났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처녀라고 속이고 마천목에게 시집을 갔다가 들통난 것이다. 사헌부에서는 “김 씨의 추한 행실이 심하므로 다스려 바로잡지 않으면 풍기가 무너질 것“이라며 유배를 보냈다.이 시절의 이혼은 요즘처럼 이해 당사자들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법률처럼 임금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조선 초기는 새 왕조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적 윤리가 강요되던 시대였다. 유교의 법도로 볼 때 남편의 3년 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도 이혼 사유에 해당했다. 태종 5년(1405) 11월 9일 실록에 나타난 목(睦)씨 사례가 그 전형이다.

<“강거신(姜居信)이 죽자 그 아내 목씨가 남편 3년 상이 지나기도 전에 김만수(金萬壽)에게 재가했는데, 그의 오라비 목인해(睦仁海)가 중매한 것입니다. 이들은 인륜을 파괴하고 어지럽혔사오니 모두 죄를 주소서.“>

임금은 목 씨를 처벌하는 대신 김만수와 이혼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세종 7년(1425) 11월 16일에는 자식을 생산하지 못해 쫓겨난 여인의 사연이 등장한다. '이미'는 관리는 최주(崔澍)라는 전직 군인의 딸 최씨와 결혼했는데 45세가 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자, 최씨를 쫓아내고 강여인에게 장가 들었다. 화가 난 최주가 사헌부에 사위를 고소하자 사헌부는 “최여인이 시아버지 3년 상을 치렀으니, 다시 합쳐 살고 강여인과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남편 이미는 “아들을 못 낳는 아내는 조부와 아버지에게 죄를 진 자“라면서 “최여인과 다시 산다면 죽을 때까지 후사가 없을 것“이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서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사례를 열거하며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거듭 생각해 보건대 아내를 내보낼 수 있는 일곱 가지 조건 중 ‘질투하면 버린다‘ ‘몹쓸 병이 있으면 버린다‘ ‘말이 많으면 버린다‘는 세 가지는 그 사유가 경미한 것이니 이 사례로 이혼하면 다시 모여 살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버린다‘ ‘아들이 없으면 버린다‘ ‘음란하면 버린다‘ ‘도둑질하면 버린다‘는 네 가지는 사유가 매우 중대하니 이 법을 일률적으로 시행하면 윤리가 어그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대신 '이미'는 최여인과 합쳐 살지 않은 죄로 곤장 90대를 맞았다. 조정에서 애 못 낳아 서러움을 겪은 최여인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성종 18년(1487) 1월 2일 실록에는 왕실 측근인 강양군 이축(李潚)이 궁녀를 첩으로 삼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시절에는 '궁궐에 근무하는 관리는 밖으로 내보내는 시녀에게 장가들 수 없다.' 라는 조항이 법전에 명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축이 법을 어긴 것이다. 성종 18년 1월 6일 대신들이 이축과 궁녀를 이혼시켜야한다고 보고서를 올리자 성종이 신하들에게 묻는다.

임금: “시녀에게 장가드는 것을 금하는 법은 어느 때부터 시작됐는가.“
홍응: “조종조부터 있었습니다. 세종조에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던 궁녀가 밖에 나가 밤새 술을 마신 일이 있어 이 법을 만든 것입니다.”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던 궁녀가 궁궐 담을 월장하여 밤새 술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 입력: 200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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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상을 여는 인간 꽃
글쓴이 : 난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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