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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민족은 5,900년전 배달국 시대부터 문자 사용

마도러스 2006. 6. 17. 17:09

한민족은 5,900년전 배달국 시대부터 문자 사용

 

                         출처: http://cafe.daum.net/do92 , dosu8888@daum.net

 

세계최초의 문자는 배달국(倍達國,B.C3,898~2,333)의 녹도문자(鹿圖文字)이다. 녹도문자는 신지문자(神誌文字)라고 부르기도 한다. 녹도문자의 초기 모습이 낭하리 암각화이다.『환단고기』에 인용된『대변설(大辯說)』의 주(註)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의 계곡 바위 위에 배달국(倍達國)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桓雄)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祭)를 삼신(三神)께 드린다고 했다.” 라는 기록이 있다. 녹도문자의 자료와 글은 1942년에 발행한 『영변지』에도 실려 있다. 『환단고기』의 저자 계연수 선생이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에서 천부경(天符經)이 새겨진 옛 비석을 발견한 내용이 실려 있고, 녹도문자를 그대로 소개해 놓고 있다.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한 이유립 선생도 그의 저서 『대배달민족사』에서 평양 소재 법수교 고비(古碑)를 소개하면서 배달국의 녹도문자를 표기해 놓고 있다. 그밖에 구한말 서예의 대가인 김규진이 저술한 ‘서법진결’과 백두용(白斗鏞)편,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도 녹도문자가 실려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의하면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복희(太昊茯羲)씨가 녹도문자를 개량하여 용서(龍書)를 만들고, 이것을 주양(朱襄)씨가 육서(六書)로 남겼다고 한다. (朱壤仍舊文字而始傳六書). 이것이 이른바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의 상고금문(上古金文)이다. 여기서 금문(金文)이란 각종 나무류와 동물의 껍질, 뼈다귀, 돌, 금속에 새겨진 글자를 총칭한다.

 

금문(金文)을 시대별로 나누어 보면, 상고금문 (上古金文: 삼황오제시대로부터 하夏왕조 때까지의 문자), 은주금문 (殷周金文: 은殷나라 갑골문, 주나라 대전大篆), 춘추금문 (春秋金文: 진시황 때의 소전小篆)으로 나눌 수 있다. (김대성 엮음, 금문의 비밀).

 

은나라의 갑골문자(甲骨文字)는 주(周)나라의 대전(大篆), 진(秦)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조(漢朝) 때 한자(漢子)로 완성된다. 최근 중국 곳곳에서 은(殷)나라 갑골문자 이전의 문자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것을 집중 연구한 중국학자 낙빈기(駱賓基)는 자신의 저서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상고금문(上古金文)이 한민족(韓民族)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내고 그 문자들을 만들어 사용한 주체가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방 조선족(朝鮮族)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배달국치우천황에 의한 동방 통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전부터 개량돼 오던 녹도문자가 중원(中原,중국의 황화유역)에도 전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창힐문자(倉힐文字: 鳥跡書)다. 현재 창힐의 고향 백수현 사관촌(산동반도 지역)에서는 창힐문자가 발견되고 있다.

 

창성조적서비(倉聖鳥跡書碑)에 새겨진 글이 창힐문자이다. 창힐은 새 발자국을 참조하여 창힐문자(鳥跡書)를 중국 최초로 개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창힐은 또한 배달국의 치우천황의 제후로서 배달국의 녹도문자(鹿圖文字)를 서방에 전하여 동서문화 통합을 시도한 동이족(東夷族, 조선족)이었다. 창힐문자가 배달국의 녹도문자와 모양이 같은 것은 이 때문이다.

 

글 작성: 최병문 (010-4607-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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