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최초 문자는 배달국의 녹도문자(鹿圖文字)
★ 한반도와 만주(滿洲) 지역을 포함한 우리 나라의 배달국(倍達, BC 3,898-2,333) 시대부터 일찍이 녹도(鹿圖)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고대(古代) 문명의 중요한 조건이 문자(文字)의 사용이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 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 과정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동북 아시아 역에서 문자가 창제되기 전에는 주로 결승문(結繩文. 노끈 형상)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은 남미 인디언, 잉카 제국에서도 통용되었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 개국되기 훨씬 전인 배달국 시대 때부터 우리 민족은 이미 문자 생활을 영위하였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전하는 수많은 내용 가운데, 배달국(倍達, BC 3,898-2,333) 시대의 문자에 관한 기록이 있다. 배달국은 18명의 환웅(桓雄) 임금이 다스린 나라였고, BC 3,898년에 건국된 나라였다. 우리 스스로를 배달(倍達) 민족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요녕성 지역에서 발굴되는 후기 신석기 문화(홍산 문화)와 청동기 문화(하가점 하층 문화)가 배달국의 신시(神市, 1-13대 환웅) 배달 시대와 청구(靑丘, 14대-18대 환웅) 배달 시대라고 주장한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소도경전(蘇塗經典) 본훈(本訓) 기록을 보면, 배달국의 제1세 배달 환웅(BC 3,898-3,804년, 94년 재위)께서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령하여 녹도문자(鹿圖文字.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만듦)를 만들게 하고, 천부경(天符經)을 편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배달국 시대의 제1세 배달 환웅(BC 3,898-3,804년 재위) 시절에 창제된 녹도문자(鹿圖文字)는 이집트 상형 문자(BC 3,000년경), 수메르 설형문자(楔形文字, BC 3,000년경) 보다 몇 세기 앞서는 세계 최초의 문자이다.
■ 고조선 시대의 가림토(加臨土) 문자의 탄생
★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記)의 다음 기록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시대 3세 단군이신 가륵(嘉勒) 단군 2년(BC 2,181년) 때의 일이다. 아직 풍속은 하나 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전하는 녹도문자(鹿圖文字)가 있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100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신하인 삼랑(三郞, 삼신 상제께 천제 지내는 관직)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셔서 정음 38자(字)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加臨土) 문자라고 하니, 그 글자는 다음과 같다.” 라고 하여 그 문자를 기록해 놓았다.
★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38개를 가지고 운용하였다. 놀랍게도 과거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였던 만주(滿洲)에는 지금도 가림토 문자 비석이 우뚝 서 있다. 그 비석을 탁본(拓本)한 것이 높이 2m, 폭이 32㎝인 것을 보면, 실제 비석은 이보다 조금 더 클 것이다. 조선 선조(宣祖) 때, 조여적(趙汝籍)이 지은 청학집(靑鶴集)에도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든 을보륵(乙普勒)의 이름이 실려 있다. 단군세기(檀君世記)의 3세 단군 가륵(嘉勒)조와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소도경전(蘇塗經典) 본훈(本訓)에서도 같은 내용의 기록과 함께 가림토(加臨土) 문자의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개량되기 이전의 한글 작품인 것이다. 이 문자의 모습은 세종(世宗) 때 창제된 한글의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 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시대의 녹도문자(鹿圖文字)는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이르러 제3세 단군이신 단군 가륵(嘉勒) 2년(B.C 2,181년) 무렵에 가림토(加臨土) 문자로 계승 발전되고, 고조선(古朝鮮) 시대의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조선(朝鮮) 시대의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한글)으로 계승 발전된 것이다. 가림토 문자는 고조선 후기까지 사용되다가 그 사용 빈도가 점점 줄어 들게 되었다.
★ 중국이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부국 강병책을 쓰면서, 중국과 고조선 사이에는 교역량이 늘어나게 되었고, 어느덧 중국의 갑골(甲骨) 문자가 동아시아의 공용 문자가 되면서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갑골 문자는 훗날 지금의 한자(漢字)로 발전하게 되었다. 은(殷, BC 1,600-1,046)나라의 갑골 문자가 주(周, BC 1,046-771)나라의 대전(大篆), 진(秦. BC771-206년)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漢, BC 202-AD 220)나라 때에 한문(이두법, 吏讀法) 한자(漢字)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요(堯. 재위BC 2,357-2,258), 순(舜. 재위BC 2,255-2,208), 하(夏, BC 2,205-1,766), 은(殷, BC 1,600-1,046), 주(周,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이 배달국(倍達國)이었고,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이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 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대-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년)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제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 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년) 홍산(紅山) 문화를 ‘요하(遼河) 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 동이족(東夷族) 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 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 요하(遼河) 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년)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년). 황하 문명(BC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우(禹)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탕(湯)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요(堯) 임금. 순(舜) 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의 청구 배달(靑丘, 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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