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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글은 고조선의 가림토(加臨土) 문자의 모방

마도러스 2006. 6. 17. 17:09

한글은 고조선의 가림토(加臨土) 문자의 모방

 

                              출처: http://cafe.daum.net/do92 , dosu8888@daum.net

 

 

지금까지 우리는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여러 학자와 더불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셨다고 알아왔다. 그러나 1999년 10월 09일 한글날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세종대왕이 어떠한 신하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고 친족을 데리고 한글 창제 작업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짙다고 방영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그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신하들이 알아서는 안될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모화사대(慕華事大)에 철저한 유학자들이다. 만약에 신하들이 먼저 알았다면 세종대왕은 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거센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유학의 소양을 가진 양반 관료들이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어려운 한자문화를 독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확인된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이 알면 모화사대(慕華事大)에 어긋난다고 반대 할까봐 아예 비밀리에 작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창제하시는데 뭘 갖고 작업을 하였을까? 정인지(鄭麟趾, 1396∼1478)가 쓴 서문에는 옛 전자(篆字)모방했다고 한다. 옛 전자(篆字)를 모방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 문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우리 문자를 개량했다는 것이다.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 『이 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지으시니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있다. (其字倣古篆)』라고 하였고, 최만리의 상소문에도 『글자의 모습은 옛 전자(篆字)를 모방했지만 음을 쓰는 것과 글자를 배합한 것은 모두 다 옛것과 다르다. (字形 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라고 하여 가림토(加臨土)문자를 모방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세종대왕은 성삼문을 만주 방면으로 13번이나 보내어 가림토 문자의 기본을 가져오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세종대왕은 어떠한 신하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고 친족을 데리고 한글 창제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서기 1446년 병인 음력 9월 상한(양력 10월 9일)에 드디어 훈민정음 28자를 반포하였다. 한글이 세종대왕의 창작품이 아니라고 해서 세종대왕의 업적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세종대왕은 신화(神話)속으로 사라져 가던 우리 역사와 얼을 재현해 낸 것이다. 까마득한 고조선시대의 문자를 잘 다듬고 체계화 하여 세련된 형태로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우리 고유의 문자 문화의 맥을 계승함으로써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냈고 문맹을 퇴치하여 민족전체의 문화적 역량올 극대화 한 분이다.

 

글 작성: 최병문 (010-4607-3746)

 

 

 

출처 : 세상을 여는 인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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