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문화

■ 커피의 기원과 조선에 도입된 시기 및 역사 기록

마도러스 2022. 12. 25. 22:55

■ 커피의 기원과 조선에 도입된 시기 및 역사 기록

● 커피의 기원 : 6세기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Ethiopia) 지역에 살던 ‘칼디’(Kaldi)라는 양치기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의 염소들이 평소와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염소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염소 입 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해진 칼디는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았다. 잠시 후, 칼디(Kaldi)는 자신도 마구 춤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랍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다. 아랍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 교파 중 하나인 예멘(Yemen)의 수피교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긴 밤 기도 시간 동안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이후, 커피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커피의 효과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커피의 부흥은 문예 부흥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한때 커피를 금하기도 했다. 그 당시 유럽은 로마 교황의 힘이 막강했는데, 이교도들이 들여온 음료 때문에 밤에 잠을 안자고, 범죄와 음탕한 생활을 한다고 믿었기에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 부르기도 했다.

● 1895년, 고종 황제가 조선 최초로 공식적인 커피를 마셨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인하여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머물 때, 고종 황제가 조선 최초로 공식적인 커피를 마셨다.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서 식사 시중을 하던 독일인 손탁 여사에게 호텔을 지어 주었다. 그 후, 1902년, 한국 최초의 호텔인 손탁 호텔 안에 최초의 다방이 생겨 커피를 팔게 되었다. 그 후, 명동과 소공동 등지에 다방들이 생겨났다.

● 1884년 로웰(Lowell),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 집에서 커피 마심

조선에서 커피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 개항 이후였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조일 수호 조규) 체결 후, 수신사라는 명칭의 외교 사절이 일본에 파견되었다. 1876년의 제1차 수신사에 이어 1880년에는 김홍집을 대표로 하는 제2차 수신사가 파견되었다. 1880년, 김홍집이 주일 청국 공사관의 참찬관이었던 황준헌으로부터 미국과의 수교 제안을 받았다. 일본 방문에서 돌아온 김홍집은 1881년에 일본 문물을 시찰하기 위한 비밀 시찰단을 보냈다. 1882년 05월 김홍집 등의 노력으로 인천 제물포에서 제물포 조약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서양과의 첫 조약이었고, 김홍집이 부대신으로 참여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의 특명 전권 대사 루시어스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였다. 푸트의 제안에 따라 민영익을 대표로 하는 조선 외교 사절단 보빙(報聘 답례 외국 방문) 인사가 미국에 파견된 것은 1883년 07월 15일이었다. 미국에 대한 조선 보빙(報聘) 인사의 중간 기착지 일본에서 퍼시벌 로웰(Lawrence Lowell)이란 인물이 조선 보빙사의 서기관 겸 고문이라는 관직을 받아 합류하게 됐다. 미국 여행에는 안내자가 필요하다는 주일 미국 공사의 제안을 조선이 수용한 결과였다. 로웰(Lowell)은 1876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6년 정도 가업이었던 면직물 공장 경영에 참여했다. 1882년 우연히 듣게 된 일본에 대한 강연에 감명을 받고, 1883년 봄 일본 여행길에 올랐다. 일본 체류 중에 조선 보빙사 안내를 일본으로부터 부탁 받게 된 것이었다. 1883년 08월 15일, 일본을 출발하여 9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이 열차 안에서 가우처 여자대학 총장을 만난 것이 1883년 11월까지 3개월 동안 조선 보빙사 안내 역할을 수행한 후, 일본으로 귀환한 로웰이 고종의 초청으로 보빙사 일행과 함께 로웰(Lowell)이 조선에 도착한 것이 1883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도착 직후인 12월 20일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이 신비한 나라 조선(朝鮮)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욕을 표현하였다. 조선(朝鮮)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 고종 황제 사진이 로웰의 작품이다. 로웰(Lowell)은 한양에 머무는 동안 고종의 배려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한양에 머무는 동안 최상의 대우를 받았다. 자신이 방문했던 고관들의 집 보다 좋은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고종은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보살폈다. 로웰은 1884년 01월 어느 추운 날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의 초청으로 서대문 밖 언덕에 있는 관찰사의 별장을 방문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얼어붙은 강 위를 걸은 후, 로웰은 다시 별장으로 올라가 커피를 마셨다. 잠자는 물결(House of the Sleeping Waves)이라는 뜻을 지닌 집에 올라가서 당시 조선의 신상품이었던 후식 커피를 마셨다. 이런 내용은 로웰이 극동 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후, 1885년에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쓴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 스케치” (Chosŏn, the Land of Morning Calm, a Sketch of Korea)에 나온다. 김홍집이 로웰에게 커피를 후식으로 제공하였다는 것은 김홍집이 접대용으로 커피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홍집은 1880년 05월부터 3개월간 제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당시 일본에는 커피가 서양에서 도입된 새로운 문물이었다.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이 커피를 조선으로 들여왔었다.

● 1884년, 미국 해군 군의관, 서울에서 커피를 마셨다.

미국 해군 군의관 조지 우즈(George Woods)는 군함 주니아타호를 타고 1884년 03월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1884년 03월 28일 조선에서 머물면서, 서울 정동 미국 공사관에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일기에 남겼다. 조선의 신문에 커피 소식이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1883년 10월에 창간된 조선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1884년 02월 17일자에는 '태서의 운수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태서는 서양을 의미한다. 서양 여러 나라에서 운수 교통의 발달로 인해 물품과 사람의 왕래와 교류가 왕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부국의 원천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이런 활발한 교류의 사례를 열거하는 가운데 서인도 제도의 커피를 소개하고 있다.

● 1984년, 커피의 최초 한자 표기는 가배(珈琲)로 하였다.

“한성순보”에서 커피의 한자 표기는 가배(珈琲)였다. “한성순보” 1984년 03월 27일 자에서 이탈리아가 시칠리섬에 커피 나무를 시험 재배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며, 커피를 가배(咖啡)로 표기하였다. 1984년 05월 25일 자에서 미국의 수출입 동향을 소개하며, 수입품 커피를 언급하였는데, 역시 가배(咖啡)로 표기하였다. 커피는 1852년 “벽위신편”에서 가비(加非)로 표기한 것이 출발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1857년 “지구 전요”에서는 가비(加非)와 함께 가비(架非)라는 표기가 등장하였다.

● 1909년 07월 18일, “독립 신문”에서 한글로 “카피차”로 최초 표기

1897년 10월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선포했다. 1897년 10월에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뒤, 대한제국(大韓帝國)은 자주독립 국가임을 밝히고, 국방력을 강화시켰다. 고종은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여러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전기 설비와 철도 부설에 적극적으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공장과 회사를 설립하였다. 인재 양성을 위하여 전국에 근대 학교를 세우고, 기술 교육을 강조하였다. ★ 1909년독립 신문”에서 한글로 “카피차”가 등장하였다. 이후, “대한 매일 신보” 1909년 07월 18일 자 등에서 '카피'로 표기한 것이 발전하여 현재의 커피(coffee)로 정착되었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조선의 커피 역사와 관련된 사실은 몇 가지가 있다. 개항과 함께 조선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은 1880년대 초반이었고, 그 루트는 일본과 중국이었다. 그리고, 전달자들은 미국인, 독일인, 영국인 등 서양인들이었다. 여러 가지 한자 표기를 거쳐 영어 발음 'coffee'에 가까운 '카피'라는 표기를 정착시킨 것은 “독립 신문”이었다. 중국식 '카페이'나 일본식 '고히', 한자음 '가배'가 아니라, '커피(coffee)'가 탄생했다. 순한글 “독립 신문”은 커피의 명칭 독립에도 이렇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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