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국방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스토리, 동네북 전락!

마도러스 2022. 2. 26. 23:12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스토리, 동네북 전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군비 확충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군사력 현대화. 정예화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실상은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 이후부터 대대적인 군사력 정비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러시아군과 구조가 유사했던 우크라이나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표준을 따르는 군대로 바뀌었다. 대규모 군사훈련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 교관을 초청, 지상군과 특수전부대를 훈련시키고 현대적인 장비를 공급했다. 훈련을 받은 우크라이나군 가운데 특수전부대 저격수는 서방측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격총과 대전차미사일 등을 국산화하여 국내 방위산업의 기초를 육성하고, 우리나라의 예비군 격인 영토방위대를 만들어 동원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은 푸틴의 무모한 침공을 억제하지는 못했다. 러시아 수뇌부의 전쟁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격용 미사일과 현대적인 방공망이 결합된 전략적 억제력이 우크라이나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4위의 군사 대국 우크라이나(Ukraine) 몰락이 주는 교훈

 

세계 4위의 군사 대국, 핵 보유 순위 3위. 이것은 1991년 옛 소련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할 당시, 우크라이나(Ukraine)의 국방력 수준이다. 우크라이나는 냉전시대 소련 방위산업 전체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던 나라이다. 그야말로 공산진영의 병기창이었다. 하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순위는 25위로 추락했다. 2014에는 총 한 발 못 쏴보고,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이후 8년간 국방력을 키우겠다고 작정했지만, 2022 02 24일 개시된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을 저지하지 못했고,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Kiyev)까지 위협받는 동네북 신세가 됐다. 우크라이나(Ukraine)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비핵화를 선언했으나 이를 보완할 재래식 군대의 현대화. 정예화를 도외시했다. 또한,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서방 선진국과의 동맹 관계 구축에 갈팡질팡하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회원 가입의 골든타임을 놓쳐 러시아가 침공해도 병력을 파병해줄 동맹국이 없는 상태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정치권, 군 수뇌부가 모두 안보 불감증에 걸려서 러시아의 군사 팽창 위협을 오판하고, 무능. 부패에 빠져 국방 개혁을 도외시한 것이 오늘날의 굴욕을 불렀다. 우크라이나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후, 폴란드에 주둔하고 있는 나토 연합 전투단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외부 지원에 매달렸다. 하지만, 폴란드는 경제를 키우고 나름의 자주 국방을 전개하면서 나토군을 주둔시켰다.

 

 재정난으로 자멸한 우크라이나(Ukraine) 군사력

 

1991, 우크라이나 군대 규모는 무려 78만 명이나 됐다. 장비 규모도 엄청나 육군의 전차. 장갑차는 총 1 3,500대, 공군 항공기는 2,800대 등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런 대군을 유지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해서 군비를 급격히 축소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의 병력은 약 25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약 14-15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원래 옛 소련식 징병제 및 예비군 동원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나토(NATO)에 가입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유급병의 비중을 늘려서 상비 병력을 확충하고, 종국적으로는 오는 2024년까지 징병제를 폐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병사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어서 직업으로서 군인이 선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영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맥도날드 가게의 계산원과 같은 월급을 받는다. 이로 인해 65%의 군인들이 첫 번째 계약 후 떠났다. 원래, 방위산업체 기업들은 무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차를 생산하면서 지하철 전동차 생산하는 현대로템이나 자주포와 미사일 등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인공위성과 우주항공기술을 개발하는 한화그룹 등이 좋은 예이다. 민간의 영역에서 벌어서 방산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민수 시장 개척 없이 국가 주도 방위 산업체 기업에만 매달리며 체질 개선에 실패했다. 정부가 통제하는 방위 산업의 가장 전형적인 실패 사례가 바로 우크라이나이다. 방위 산업과 자주 국방이 무너진 나라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는지를 우크라이나가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수뇌부는 무능과 부패가 만연

 

2014년 크림 반도 사태 이후 출범한 우크라이나 새 정부는 나토(NATO)의 정책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군을 개혁하는 듯했다. 그러나, 내실 있는 성과는 아직 요원하다. 우크라이나는 나토(NATO)와 약속한 개혁 방향에 따라 민간 출신 국방장관을 앉히고 개혁을 맡겼다. 그러나, 얼마 후 해당 장관을 경질했다. 국방 예산도 역주행했다. 우크라이나의 2021년도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52억원 줄어든 4 7931억원으로 편성됐다. 여전히 군 부대 현장에서는 탄약 물자 부족과 장비 노후화, 불량 문제가 터져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방위 산업은 일부 거대 국영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서 국방 조달 관련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육군이 매년 실시하는 대대급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는 부대가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 중대급이나 소대급 훈련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차나 장갑차를 이용한 훈련은 거의 못 했다. 공군에서는 훈련 부족으로 인해 소수의 조종사만이 지상 목표를 공격하는 유도 무기 사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종의 상근 예비군에 해당하는 ‘국토 방위 여단’의 교육 훈련은 더욱 부실하다. 실제 교육 훈련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왜 우크라이나는 내부적으로 갈등이 표면화 됐나?

 

우크라이나(Ukraine)는 국내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정권에 따라서 외교적 지향성을 자주 바꿨다는 의미이다. 우크라이나 같은 지정학적 중간국은 양대 세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국내 여론이 갈리면서 정체성 정치가 작동했다. 일부는 우리는 유럽이다!’를 주장하고, 또 다른 일부는 우리는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다!’를 강조하면서 갈등했다. 국내 정치가 분열되다 보니, 동쪽은 러시아, 서쪽은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다. 2013년 유로마이단(Euromaidan.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 가입을 요구한 대규모 시위) 이후, 친러시아 정권이 퇴진하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섰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노력을 가속화했다. 이를 저지해야 하는 러시아는 조급해졌다.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2022 02 1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이어졌다. 사실 이 문제만 놓고 보면,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은 입장이 또 다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들어오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미국은 대륙이 떨어져 있지만,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 대륙을 무대로 직접 대면해야 한다. 게다가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나 유럽의 대러 투자 등 경제적 상호 의존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켜서 굳이 위험을 키울 필요가 없다.

 

 언론들은 2022 02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내에는 2개의 자치 공화국이 존재한다. 루간스크(Lugansk), 도네츠크(Donetsk) 공화국, 이들 2개 공화국을 우크라이나가 탄압한 것은 하나도 안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실 친미 정부인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러시아 정부인 2개의 자치 공화국을 탄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인이 대부분인 2개의 자치 공화국에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점에 관해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 사람들에게 조선 말을 못하게 한 것과 같다. 그러다가, 2022 러시아는 2개의 자치 공화국을 승인했다. 동시에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옛부터 양쪽의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한쪽 말만 듣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못된 짓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Zelensky)이다. 2천만이 봤다는 인기 드라마 시트콤에서 대통령 역할을 한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정치 혐오, 분노에 들끓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오로지 '참신함'을 이유로 젤렌스키(Zelensky)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시트콤 드라마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정당을 창당하고, 정치 경력이나 아무런 지식 경험도 없던 젤렌스키(Zelensky)가 갑자기 나와서 당선이 되었다. 정권의 요직들은 방송국 사람들이 독점하게 되었다. 모두 정치 비전문가들이다. 자기 주위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였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되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취해야할 자세가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안보를 확고히 주장하며 지켰어야 했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며, 실용적으로 평화를 추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젤렌스키(Zelensky)는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을 최악으로만 이끌어갔고, 계속해서 러시아를 자극하기만 했다. 2014년 러시아에 빼앗겼던 크림 반도를 되찾겠다며 다른 나라들을 초청해서 반러 연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예측이 쏟아지던 2021년 연말에도 젤렌스키가 한 것은 미국과 서방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것뿐이었다. 침공이 임박했다는 경고는 무시했다. 갑자기 2022년 신년사로 미국이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며 미국과 서방을 비난했다. 이도저도 아닌 자세를 취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2개 공화국 (루간스크Lugansk, 도네츠크Donetsk 공화국)(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세운 괴뢰국이라고 인정하지 않음)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자, 그때에도 서방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힘이 없는데 러시아와 국교 단절을 선언했고, 평화를 위한 어떤 대화나 협상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젤렌스키(Zelensky)의 정치 실패 결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Kiyev)가 쑥대밭이 되었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전쟁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썼다. 대통령은 자국 국민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책임져야하는 막중한 자리이다. 아무런 지식, 경험, 철학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후, 미국과 서방의 바짓가랑이만 붙들고 징징거리며 러시아를 자극했다. 안보를 위한 어떤 자주적인 대책도 없었다. 러시아가 싫으면 러시아를 공격하고, 중국이 싫으면 중국을 공격하고, 북한이 싫으면, 북한을 공격하면 되겠는가? 그래서, 2022년 대통령 후보 윤석열의 북한 선제 공격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 대선(大選) 선거가 어디 애들 장난인가?

 

2022 대통령 대선(大選) 윤석열 후보 북한 선제 타격을 말하며,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자극하고, 대통령이 되지도 않은 사람이 국가 안보를 마구 흔들어댔다. 굳건한 한미 동맹만을 맹목적으로 강조하고, 북한 중국 러시아는 무시했다. 미국 바짓가랑이만 붙드는 발언이 매우 실망스럽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하면, 그 폐해는 한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윤석열 후보는 작계 5015’ 같은 안보 작전 개념도 모르고, 부동시(不同視)를 핑계로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Zelensky)는 정부의 요직들과 보좌진들을 그가 속했던 코미디, 영화 제작사의 일가 친척들로 가득 채웠다. 2022년 한국 대통령 후보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대선 선거인단 캠프 요직을 모두 검사 출신들로 가득 채웠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검사들이 정부 장관이 되고, 공사 사장이 되고, 청와대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한 코미디 영화 같은 장면이다. 경제. 무역. 외교, 국방에 대하여 철학이 분명하고, 일단 지식 경험이 많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중국이 싫어요! 그래서, 윤석열 후보처럼 아무런 개념 없이 북한 중국 러시아를 무조건 씹고 자극하면, 시원하고 좋겠는가? 그것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할 일인가? 피해를 보는 것은 한국 국민이다. 대통령 대선(大選) 선거가 어디 애들 장난인가?

 

● 화약고 앞에서 큰소리 뻥뻥치며 불장난하는 어린이?

 

기존에 한국에 배치된 킬 체인(Kill Chain) 한미 연합 방어 체계로는 극초음속 미사일 핵공격 사전에 미리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국을 동해 서해 남해 어디에서든 급습할 수 있는 북한 SLBM 미사일 공격에도 킬 체인(Kill Chain) 한미 연합 방어 체계는 무기력해진다.  따라서, 윤석열 후보 자신도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 핵공격을 북한이 발사할 조짐을 보일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킬 체인에 의해 미리 감지해서 선제 타격하겠다는 윤석열의 발언은 엄연한 자기 모순 발언이다.  사전 탐지나 요격이 불가능해서 방어할 수 없는 미사일을 북한 지역에서 발사 조짐만 보이면, 그 지역을 선제 타격을 가해서 방어할 수 있다고 큰소리만 뻥뻥치는 것 화약고 앞에서 큰소리 뻥뻥치며 불장난하는 어린이와 같다.  윤석열 후보는 북한 핵공격 임박 조짐이 있을 때에는 선제 타격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대응책은 군사 전문가들이 논의해야지 정치인이 발언할 일은 아니다. 윤석열의 선제 타격 발언은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발언이다.

 

●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 통일론’ 주장했지만, 한국전쟁 나자마자 곧바로 도주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 통일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허황성세(虛荒聲勢)에 불과했다. 그의 ‘북진 통일론’은 실제로 전투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북한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의 동요를 막고 반공(反共) 정신과 안보 의지를 다잡고자 하는 목적에 불과했다. 1950년 신성모 국방장관은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에 편승해서 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 라고 했다. 국민들은 꼼짝없이 그들의 ‘주댕이 국방’을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허풍장이었고 거짓말쟁이었다.

 

1950년 06월 25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곧바로 서울을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1950년 06월 26일 아침 8 신성모 국방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 중에 있다라는 라고 거짓 선전을 해서 서울 시민을 속였다. 1950년 06월 27일 새벽비상 국무회의가 열렸지만이승만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승만 대통령은 장관국회의원육군 본부에게 통보하지 않고 대전(大田)으로 도망갔다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이승만은 곧 특별 담화를 녹음했다. ‘서울 시민은 안심하십시오남침을 감행한 북한 괴뢰군은 용감한 국군의 반격으로 38선 너머로 쫓겨나고 있으며 국군은 38선을 굳세게 지키고 있습니다국군을 믿고 자리를 지키십시오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대통령인 나 역시 서울을 떠나지 않고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새빨간 거짓말이었다그 방송은 서울 방송국이 아닌 대전 방송국에서 행해졌다대전(大田)에서 녹화된 라다오 방송은 06월 27일 밤 9시부터 서울 중앙 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1950년 06월 28일 새벽 230 이승만은 아무 예고도 없이 하나 밖에 없던 한강 다리를 폭파했다수많은 시민들이 다리 위에 있었음에도 사전 통보나 어떤 통제도 없었다다리 위의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爆死)당했다군사 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서부 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희생된 것이다. 06월 28일 서울은 북한 괴뢰군에게 함락되어 지옥 같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50년 07월 01이승만은 대전(大田)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木浦)로 이동한 후부산(釜山)으로 배를 타고 갔다경부가도(京釜街道)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이승만은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그리고나중에 서울 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은 북한 괴뢰군에 부역(賦役)했다고 고문(拷問)해서 죽이고연좌제(緣坐制)로 묶어 놓았다. 1950년 06월 28북한 인민군은 대낮에 서울에 진입하였다★ 한국 전쟁은 3일만에 남한 수도 서울이 함락된 3일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