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성공비결

■ 빌 게이츠(Bill Gates) 회장의 성공 이야기

마도러스 2021. 7. 14. 05:07

 

 빌 게이츠(Bill Gates) 회장의 성공 이야기

 

 창조적 자본주의 : 2008 01월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에서 빌 게이츠(Bill Gates)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역설했다. 기업의 사회 환원 활동을 의무로 한층 끌어올린 개념이다. 기업 활동을 위해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자선(beneficence) 활동도 의무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한 것이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나 표현 수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가난했고 예방할 수도 있는 질병들에 시달렸으며, 생명을 지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정부와 비영리 단체들이 그들을 돕는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만의 힘으로 그 일을 하게 되면,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발명품들을 만들 기술은 기업체들이 갖고 있다. 이런 기술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창조적인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빌 게이츠(Bill Gates)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Seattle)에서 상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교사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법조계에서 일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GE 컴퓨터 시스템에서 베이직(Basic)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컴퓨터를 상대로 프로그래밍하여 게임을 사상 최초로 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달 착륙 게임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는 입력된 코드를 언제나 완벽하게 수행하는 MITS (Micro Instrumentation Telemetry Systems) 컴퓨터 기계에 매료되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응용 수학을 전공했다.

 

 1975 07 01일 그는 대학교 재학 중에 MITS (Micro Instrumentation Telemetry Systems) 컴퓨터에 대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알테어 베이직(Altair Basic)을 개발했다. 1975 11월 폴 앨런(Paul Allen)과 함께 MITS (Micro Instrumentation Telemetry Systems)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고 싶어서 하버드를 휴학했다. 재학 중 학업을 중단했지만, 그의 사업이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1976 11 26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상호를 공식적으로 등록했다. 1976년 말,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용 프로그래밍 언어 소프트웨어를 계속 개발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성공으로 하버드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1980 IBM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박을 터뜨리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당시 IBM은 컴퓨터를 구동하는 운영 체제(OS)가 필요했으나 MS는 이를 개발할 만한 역량이 안 되었다. 게이츠의 사업가적 안목은 여기서 빛났다. '컴퓨터 산업 = 하드웨어 산업'으로만 여겨지던 당시, 누구도 진정한 가치를 몰랐던 컴퓨터 운영 체제(OS) QDOS를 게이츠는 5만 달러를 주고 통째로 샀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라는 회사가 개발한 QDOS라는 프로그램을 게이츠가 매입한 후, 이름을 MS-DOS로 바꾼 것이다. 이후 QDOS의 이름은 MS-DOS로 바뀌었고, 세계 모든 기업과 집에 컴퓨터가 놓이는 'PC의 시대'가 도래하자 80% 이상의 PC MS-DOS가 깔리게 되었다. 다음 과제는 현재의 컴퓨터 같은 그래픽사용자 환경(GUI)을 갖춘 운영 체제를 만드는 일이었다.

 

 1985 11 20, 마이크로소프트는 첫 번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Windows) 버전을 출시했다. 제록스와 애플이 만든 그래픽사용자 환경(GUI)을 모방하여 윈도(Windows)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었다. 첫 제품은 너무 조악하다는 혹평을 들었으나, 나중에 나온 '윈도 3.0'은 제대로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윈도95가 출시된 후 90% 이상의 컴퓨터가 이 운영 체제를 사용함으로써 MS는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게 되었다.

 

 빌 게이츠는 미래학자 이상의 시대적 감각으로 소비자들 요구를 컴퓨터 산업에 접목시켰다. 개인용 컴퓨터(PC)가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고, 소프트웨어가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빌 게이츠의 통찰력이 바로 성공 신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통찰력은 지속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빌 게이츠는 직원들 누구나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켜 의사 소통의 장벽을 없앴다. 소비자들과 경영진의 접점에 있는 직원들이 보고서를 통해 저변의 시장 흐름을 생동감 있게 전달했음은 물론이다. 철저한 고객 관리와 상호 의사 소통을 중시하는 빌 게이츠 특유의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빌 게이츠(Bill Gates) 경쟁자를 가차 없이 밀어냈다. MS는 경쟁사가 MS를 위협할 것으로 생각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압력을 가해 개발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게이츠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처음 DOS가 보급될 때만 해도 대부분 복제품이었으나, 윈도(Windows)로 시장을 장악한 후, MS는 점차 가격을 올리고 라이선스(license) 관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MS-DOS 시절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를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MS가 소프트웨어 분야에 '저작권' 개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세계 유수 소프트웨어 업체의 CEO들마저 "내가 빌 게이츠를 싫어하는 모임의 대표" 라고 자청할 정도로 MS와 게이츠의 악명(惡名)은 높았다. 2019 06월 게이츠는 안드로이드에 모바일 운영체제 경쟁에서 진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때, 구글 모바일 안드로이드(Android)를 쳐냈어야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그러지 못해 아쉽다. 반독점법 위반 소송 때문에 온통 정신이 팔려 모바일 시장에 집중하지 못했다. 윈도 모바일 OS를 더 잘 다듬었거나 안드로이드를 구글 보다 먼저 인수했더라면, 지금 모바일 시장은 윈도 모바일이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이츠는 분명 컴퓨터 발전을 가능케 한 천재 기업가인 동시에 무자비한 독점 기업가였던 셈이다. 완전 독점 체제를 구축하자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30살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상장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들어섰다. 그 후, 10년 만에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후에도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놓치지 않은 덕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0년 미국 정부로부터 독점 자본가로 낙인찍혔고, 기업을 쪼개라는 명령까지 받은 것이다. 그리고, 각종 법정 소송에 휘말렸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곧바로 기부(endowment)를 돌파구로 삼았다. 뉴스위크(Newsweek)지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처음부터 박애나 자선에 관심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거부(巨富)가 된 후에도 기부를 권하는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William Gates)의 얘기를 들은 척도 안 했다고 한다. 는 과거 인터뷰에서 돈을 버는 것과 번 돈을 남에게 그냥 줘버리는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선가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기부(endowment) 자선(beneficence) 활동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독점 사업가가 각종 법정 소송을 벌이는 와중에 천문학적 기부(endowment)를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고도의 홍보 작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2001년 기업 분할 항소심에서 승리한 뒤에 게이츠는 꾸준히 사재를 재단에 기부했다. 그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면서 게이츠의 냉혈적 자본가 이미지는 따뜻한 기업인으로 바뀌어 갔다. 2006년 게이츠는 "앞으로 2년 뒤 MS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자선 사업가로 살겠다" 라고 발표했다. 2020 03 13일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사직을 떠나 기후 변화. 세계 보건. 자원 개발. 교육 등과 같은 자선(beneficence) 활동에 헌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비행기 사고로 100명이 사망해도 모든 언론이 대서 특필하는데, 50만명이 사망하는 질병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8 기부(endowment) 재단 일에만 몰두하기 시작한 게이츠는 2008년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그는 부유한 사람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본주의가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이익 시장 시스템을 설계하고, 기업들은 이익 창출과 동시에 자선(beneficence) 사업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경제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세계적인 거대 자본이 빈민 구제 방안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독점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해도 되는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순수함과 진정성을 느끼고 싶어했다. 한때 돈밖에 모르는 냉혹한 독점 자본가였던 그는 10년 간의 노력을 통해 이 같은 이미지를 완전히 벗었다. 미국의 경제 잡지인 포브스(Forbes)는 억만장자들의 실제 기부 현황을 집계하여 종종 발표하는데, 게이츠는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이츠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귀족의 도덕적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 실천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람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안다 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는 사후(死後)에 평가를 해야 그나마 제대로 한다는 뜻으로 현존하는 사람을 성공자의 삶 반열에 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Bill Gates)는 글로벌 세상을 위하여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사 빌 게이츠(Bill Gates) 회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거부(巨富)이고, 또한 그의 전 재산의 반 정도 가까운 액수를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부(endowment)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단의 주된 관심 분야는 에이즈(AIDS). 말라리아. 풍토병 등 질병 퇴치를 위한 연구와 교육이다. 빌 게이츠(Bill Gates)의 재산이 460억 달러 이상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그동안 전 재산의 반 이상을 기부하였다. 빌 게이츠는 세 자녀에게 1천만 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 재산은 자선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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