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성공비결

■ 철강왕, 카네기(Carnegie)의 성공 스토리

마도러스 2021. 6. 18. 17:10

■ 철강왕, 카네기(Carnegie)의 성공 스토리

 

영국 스코틀랜드 출생으로 앤드루 카네기(Carnegie Andrew) 14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와서 철강 산업으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강철 왕 카네기의 어린 시절에 재치 있고 깜찍한 아이였다는 일화가 내려져 온다.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시장을 다녀오는 도중에 한 할아버지가 리어카(rear car) 위에 먹음직스러운 빨간 앵두를 올려놓고 팔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기에 어린 카네기가 앵두를 무척이나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앵두를 사주기 위해 카네기와 함께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그 때에 할아버지는 카네기의 얼굴이 귀여웠던지, “먹고 싶은 만큼, 네가 두 손으로 마음껏 집어 가져가!” 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린 카네기는 할아버지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며 서성거리고 앵두를 손에 잡지 않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한웅큼 쥐어서 카네기에게 앵두를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어린 카네기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하고 두 손으로 재빨리 받아 쥐었다. 집으로 돌아 온 어린 카네기의 어머니는 카네기의 행동이 궁금하여서 이렇게 물었다. “왜 그때 할아버지가 마음껏 짚어 가라고 하실 때, 그냥 보고 서있기만 하였니?” 그때서야 카네기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할아버지 손이 제 손보다 훨씬 크니까요! 이러한 일화로 미루어 보면 카네기는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지혜롭고 영리했었던 것 같다.

 

 카네기(Carnegie)는 영리하고 똑똑했지만, 그가 한창 성장하고 젊었던 시절에는 매우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에 카네기가 어느 날 시청(市廳) 시장실(Mayor’s Office)에 볼 일이 있어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보기에 별로 좋지 않은 그림 한 점이 벽의 제일 중요한 자리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노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낡은 거룻배가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 위에, 쓰러지듯 뉘여 있는 모습은 절망스럽고 처절한 인상마저 주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There's no doubt that the tide Will come.’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시장(mayor)은 자기가 세일즈맨으로 있었던 젊은 시절 거듭되는 실패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속에 있었을 때, 이 그림을 보고 지금은 비록 절망의 상황 속에 있지만,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그러면, 배는 물 위에 뜨고 힘껏 노를 저을 수 있겠지! 하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이 된 뒤에도 날마다 그 그림을 바라보면서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고 말했다. 카네기는 시장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고난의 끝을 생각했다.

 

 카네기(Carnegie)는 언젠가 부자가 되겠다는 꿈과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방적 공장에서 실 감는 일을, 증기 기관차에서 기관 조수로 화부(火夫)의 일을, 그리고 우편 전보 배달원, 전신 기사 등의 여러 직업에 전전하며 종사하다가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침대차 회사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얻기 시작했다. 철도 기자재 제조회사. 운송회사. 석유회사 등에도 투자하여 거액의 이윤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철강 수요의 증대를 미리 예견(豫見)하여 철도회사를 사직하고, 독자적으로 철강업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베서머(Bessemer) 제강법에 의한 미국 최초의 거대한 평로(平爐)를 가진 홈스테드(homestead) 제강소(製鋼所)를 건설하였다. 이때 미국 산업계에 일기 시작한 기업 합동의 붐을 타고, 피츠버그의 제강소를 중심으로 하는 석탄. 철광석. 광석 운반용 철도. 선박 등에 걸치는 하나의 커다란 철강 트러스트(trust)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카네기가 운영하는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로서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였고, 또한 모건(Morgan)()의 제강회사와 합병하여 미국 철강 시장의 65퍼센트를 지배하는 US스틸사를 만들었다.

 

 카네기(Carnegie)는 청년 시절에 자기가 하는 일과 관련하여 세계 제일의 화부(火夫), 세계 제일의 철도원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세계 제일의 부호(富豪)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에 전심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카네기는 강철 왕 보다는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 박애주의자(博愛主義)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일생에 번 돈은 죽기 전에 좋은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인생 철학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카네기(Carnegie) 재단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의 철강 왕 A카네기가 사회적. 문화적. 인도적 견지에서 교육. 학술. 연구 등의 진흥을 위해 창립한 재단이다. 카네기는 적절한 시기를 선택하여 경제 실업계에서 은퇴하였고, 교육과 문화사 업에 몰두하였다. 그는 인간의 일생을 2기로 나누어, 전기에서는 재물을 축적하고, 후기에서는 축적된 재물을 사회복지를 위하여 투자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을 실천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는 부자가 되어서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카네기는 분명히 세계적인 박애주의자이자 자선가이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검소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강철 왕 카네기(Carnegie)가 일정이 있어서 지방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호텔에서 가장 작고 값싼 방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그때에 그를 따르는 한 수행 비서가 이런 말을 카네기와 나누었다고 한다. “사장님, 사장님 같은 부자가 이런 작고 값싼 방을 예약하시다니 말이 됩니까? 좀 화려하고 비싼 방으로 모셨으면 합니다.” “아니, 나는 값싼 방이 좋소. 내가 가난하던 시절에 살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좋거든요.” “지난주에는 사장님 아드님도 이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아주 넓고 호화로운 방에서 묵어 간 걸요.” “! 그래요. 그 놈은 부자 아버지를 두었으니까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나는 가난뱅이 아버지를 둔 걸요.” 유능한 뱃사공은 높은 파도를 겁내지 않고, 오히려 그 파도를 이용하여 더 빨리 간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 고난은 무서운 파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카네기(Carnegie)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냈기에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The high tide will come. On that day, I will go out to the sea. 만조(滿潮)가 올 것이다. 바로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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