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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감탄한 서산 간척지 정주영 유조선 공법

마도러스 2021. 2. 14. 23:35

■ 세계가 감탄한 서산 간척지 정주영 유조선 공법

 

 1988년 서울올림픽을 얼마 앞둔 어느 여름 날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서산 간척지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길을 안내하며, 크게 웃었다. 눈앞에는 서울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는 1 5,537(4700만평) 땅에 푸르른 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1980년 시작한 서산 간척지 사업은 굴곡 많은 서해안의 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들겠다는 국토개발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정부가 맡아 진행해야 맞지만, 정부는 민간 기업이 해결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이라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나선 사람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저희 건설 장비들을 들여다가 국토 확장 사업에 쓰겠습니다. 해외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그대로 지켜줄 수 있고, 여러 모로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해외 건설 수주도 줄었으니, 문제없습니다.” 청와대 문을 닫고 나서며, 정주영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산을 개간해 밭으로 만들다보면, 그의 아버지는 허리 한 번 바로 펴지 못 한 채, 손이 갈퀴가 되어 자갈을 추리고 괭이질을 했다. 한 뼘의 밭 뙈기라도 더 넓히려고 땀을 흘렸다. ‘토끼 새끼만한 국토가 그나마 허리가 잘려 반쪽인데, 사람은 오글오글 많으니, 그렇게들 살았지. 외국처럼 넓은 들판에서 트랙터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면, 그런 가난은 없었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외국 여행의 기억을 통해 이렇게 새롭고 의미 있는 일을 벌이기로 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을 굶주리지 않게 할 만큼의 논밭을 갖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내가 개간해서 아버지가 하늘에서나마 풍족한 마음으로 이 땅을 내려다보게 해드리고 말겠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기자들에게도 선언했다. “농업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 농업보다 우리 농업이 60년이나 뒤떨어졌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한번 따라 잡아보려고 합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것보다 농촌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는 것이 더 나은 시대를 만들겠습니다.” 사업을 착수하자마자, 정주영답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서산 간척지 착공부터 완공이 될 때까지 새벽 6시면 청운동 자택에서 서산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불도저, 포크레인은 제 위치에 제대로 놓았어? 내가 확인하러 내려갈 거야.” 벽에 걸어둔 지도 위에 포크레인 위치도 표시하며 확인을 했다. 끊임없는 잔소리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현장에 내려가 공사 감독을 하기도 하고, 인부들과 같이 일을 하기도 했다. “한 뼘이라도 더 땅을 만들어야 우리 후손들이 큰 옥토를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세계 경제가 어찌 돌아가든, 전쟁이 터지든, 평화가 지속되든,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현장 근로자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에도 왜 이 공사가 중요한지 틈만 나면 강조했다. 서산 현장에는 취재 기자도 많이 찾아왔다. 기자가 물었다. “회장님, 간척 공사가 조선소 공사랑 맞먹는 대규모 공사인데, 조선소 지을 때랑 지금이랑 언제가 더 좋습니까?” “당연히 지금이 좋지. 울산 조선소 만들 때는 솔직히 내가 뭘 아는 게 있어야지. 긴장하고, 또 긴장했어. 그런데, 지금은 다 해본 일 아닌가? 니나노 노래하면서 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변수가 많은 건설 현장에서 어찌 노래만 나올 수 있었겠는가?

 

 서산 간척지 공사는 어마어마한 간척 사업인지라 커다란 난관을 만났다. 간척지 사업은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가두고, 그 물을 빼서 육지로 만든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방조제를 만들고, 물을 막는 것이다. 이를 물막이 공사라고 한다. 그런데, 착공 5년째 되던 1984년에 최종 물막이 공사 가장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방조제의 길이는 6,400여 미터였는데, 그중 마지막 남은 270미터를 쌓을 수가 없었다. 초속 8미터의 무서운 급류가 흘렀기 때문이다. 한강이 여름 홍수 때 초속 6미터로 흐르니, 그 세기가 얼마나 빠른지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만한 바위를 넣어도, 30톤 덤프 트럭들이 끊임없이 돌을 날라도, 거센 물살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휩쓸어 가 버렸다. “최신 장비들을 다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학계에도 문의해보고, 해외 건설사에 컨설팅 의뢰도 해봤는데, 모두 속수무책입니다.” 정주영 회장은 그동안 수많은 공사를 하면서 얻은 모든 지혜를 짜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정주영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는 천수만호 유조선이었다. 천수만호는 원래 유조선으로 사용하던 23만톤급 스웨덴 배였다. 현대가 해체해서 고철로 팔기 위해 30억 원을 주고, 사들였고, 울산에 정박시켜두고 있었다. “ 45미터, 높이 27미터, 길이는 322미터. 충분해! 천수만호 배로 막아두고 메우면 어떨까?” “회장님, 그게 가능한지는 아직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만 따라하면, 세상 공사를 다 할 수 있겠나? 즉시 현대정공, 현대상선, 현대중공업 기술진에 모두 연락해! 유조선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건축학 어디에도 없는 유조선 공법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천수만호가 서산에 도착했다.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유조선 가라앉히기가 시작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물막이 공사가 2일만에 끝이 났다. 어려운 공사를 해결해서 얻은 열매는 달고도 달았다. 이 유조선 공법으로 공사비를 290억원 절감했다. 탄탄한 이론들에 비해 다소 허술하고 황당해 보이던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불리며, 뉴스위크와 타임지에 소개됐다.

 

 영국 런던의 템즈강 하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철구조물 회사에서 정주영 유조선 공법에 대해 문의를 해온 적도 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검증해볼 생각은 않고, 책 속에서만 답을 찾고, 권위에만 의존한다면, 창의력은 죽고 만다. 창의력이 없으면, 획기적인 변화도 없어!’ 오랜 시간 힘든 과정을 거쳐 서산 간척지는 1988년에 드디어 대규모 기계화 영농 단지로 탈바꿈했다. 비행기로 볍씨를 직파(논밭에 직접 씨를 뿌리는 일)하고, 재배, 수확까지 완전 기계화하자, 정주영 회장이 꿈에 그렸던 농장과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서산 간척지 사업은 정주영 회장이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에서 시작하여 지도까지 바꾼 대공사였다. 간척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어갈 무렵, 정주영 회장은 고향 생각이 더욱 났다. ‘고향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정치적으로 통일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정주영 회장은 정치적으로 통일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여러 소식통이 전하는 북한 경제의 심각성, 주민들의 기아 문제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 정주영 회장에게 북한 주민들을 도울 기회가 찾아왔다. 1989 01월 한국. 소련 경제협회 회원들과 함께 소련을 방문한 것이다. 1988년에 성공적으로 치른 서울올림픽 덕분에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한국을 믿음직한 경제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기업 간 경제 교류도 점점 확대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진영에 자유화 바람이 불어왔다. 사회주의 국가의 선봉장이었던 소련도 그 여파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가장 먼저 경제 분야에서 적색 경보가 울렸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국 기업인들이 소련으로 급파되었다. 가장 급한 문제는 소련이 수입한 물건의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시적인가 아닌가는 경제인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소련은 현대 측에 외상으로 선박 20척을 주문하려고 했다. 20척의 선박값은 11 5,000만 달러였다. 엄청난 규모의 금액을 모두 외상으로 거래를 하자니 소련도 현대도 난감했다. 이 때, 정주영 회장이 현금 거래가 가능한 해법을 내놓았다. 소련이 엄청난 양의 화물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화물만 충분하다면, 소련은 얼마든지 현금을 확보하여 선박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유럽 은행 등에서 화물을 담보로 소련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 돈으로 선박 20척의 현금 계약을 성공시켰다.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부 관계자에게 이야기했다. “시베리아에서 개발하는 자원이 가격 경쟁력만 갖추면, 자본은 세계 시장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랫동안 공산 체제에서 살았던 소련 사람들은 단지 세계의 자본을 동원할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우리가 그 방법을 찾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미수교 상태였지만, 정부는 정주영이 한국. 소련 경제협회 대표 자격으로 시베리아 개발 문제 등을 협의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 유조선 가라앉혀라! 정주영 공법 서산 간척지

 

 정주영 공법으로 만든 서산 AB지구 간척지, 첨단 산업단지로 뜬다.

 

서산 AB지구 간척지는 농경지를 늘리기 위해 만들었다.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안면도 사이에 천수만 바다를 매립했다. 이 사업은 현대건설이 1980 05월 공사를 시작하여 1995 08월 완공했다. 서산 AB지구 간척지 공사는 정주영 공법으로 유명하다. 당시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필요했던 방조제 건설이 난관에 부딪혔다. 둑을 쌓아야 했는데, 아무리 큰 돌을 퍼부어도 초당 8m가 넘는 물살에 휩쓸려가기 일쑤였다. 현대건설에 수많은 공학 박사들이 있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바로 그 때, 정주영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고철로 사용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들여온 23t짜리 초대형 유조선을 물막이 공사 구간에 바짝 붙여 가라앉히라는 지시였다. 가라앉은 유조선이 유속을 크게 늦춘 사이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서산 AB지구 간척사업을 통해 매립된 면적은 총 154.08. 이 가운데 A지구가 96.26, B지구가 57.82를 차지한다. 이중 농지의 면적은 A지구 63.83, B지구 37.49를 합쳐 101.32에 이른다. 나머지 면적은 담수호로서 A지구의 간월호가 27.33, B지구의 부남호가 15.62이다. 전국 최대의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와 부남호는 오염이 심해 수질 개선을 위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서산 AB지구 간척지, 정주영 회장이 아이디어로 유조선 이용하여 간척한 땅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조성한 국내 최대 간척지가 2021년 첨단 산업 전진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 주행 시험로와 첨단산업단지 등이 잇달아 조성되고 있어서이다. 충남 서산시에 따르면, 부석면 천수만 간척지 B지구 서산특구에 2021년 말 국내 최장의 자동차 직선 주행 시험로(4.75)가 완공된다. 현대건설과 현대모비스가 조성하는 주행 시험로는 국제 표준 배출 가스와 연비 인증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이다. 서산특구에는 2016 10 4.2의 고속 주회로를 비롯해 첨단 주행로, 등판 저마찰로, 터널 시험로 등을 갖추고 자동차 품질과 주행을 검증하는 자동차 주행 시험장(151)도 들어섰다. 서산시는 현대건설과 함께 2021년부터 2025년까지 6,300억원을 들여 B지구 92 4,000 스마트팜 등을 갖춘 그린바이오 스마트시티도 조성한다. 이 사업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모빌리티 등 첨단기술을 반영한 영농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서산시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B지구에 드론 택시 등 도심 항공 교통(UAM) 실증 단지 유치도 추진한다. 맹정호 서산시 시장은 "생산 단지와 시험 단지로 이뤄진 도심 항공 교통 실증 단지는 서산의 미래를 위해 꼭 유치해야 할 사업이다. 이 단지가 B지구에 들어설 수 있도록 현대자동차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산 B지구 간척지, 태안 기업 도시는 '드론 특별 구역'으로 선정됐다.

 

서산 B지구 간척지 태안 기업 도시에도 첨단산업단지가 잇따라 조성된다. 태안군은 4차 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는 2021 08월까지 태안 기업 도시 11 5,703 95억원을 들여 드론 등 무인 비행체 관련 시설을 한데 모은 '무인 이동체(UV) 랜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UV 랜드에는 드론 스쿨, 레이싱 서킷, 드론 이착륙장, 무인 조종 멀티 센터, 드론. 원격 제어 비행기. 자동차 무인 조종 교육 공간 및 체험 시설 등이 들어선다. 태안 UV 랜드는 국토교통부로부터 드론 전용 규제 특구인 '드론 특별 자유화구역'으로 선정됐다. 태안군은 태안화력발전소 1·2호기 폐쇄 대체 사업의 하나로 태안 기업 도시에 그린 수소 생산. 저장. 공급 단지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가세로 태안 군수는 "그린 수소 단지는 사업비가 500억원을 웃도는 대형 사업인 만큼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환경부. 충남도. 한국서부발전 등과 긴밀한 협력 체제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