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을 잘 견뎌야 등불을 켤 수 있다.
슬픔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의 인생이든지 슬픔의 늪은 찾아온다!” 우리는 그 슬픔의 늪을 허우적거리며 건너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인생에서의 만남은 한없는 기쁨이며, 이별은 깊은 슬픔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슬픔은 부모가 자식을 잃는 일일 것이고, 자식이 부모를 잃는 일일 것이다. 육친을 잃었을 때가 가장 슬프다.
★ 소설가 박완서 선생께서는 월간 ‘샘터’에서 송년 대담을 하실 때, 슬픔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슬픔이란 것은 말이죠. 그게 참 묘한 데가 있어요. 슬픔의 항아리는 늘 비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넘치도록 채워지는 것이예요. 병으로 남편을 잃고, 4개월 만에 아들을 사고로 잃었어요. 그때가 1988년 이었는데,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견딤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견디는 것 그 자체가 결국은 슬픔을 대하는 방식일 수 밖에 없어요. 슬픔은 절대로 극복할 수 없어요. 이길 수가 없어요.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이겨요? 눈물을 흘리면, 이길 수 있나요? 그건 극복의 방법이 아니죠. 극복이란 말은 강요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요. 극복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슬픔에 빠진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거예요.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을 완전히 잊어야 하는데, 내가 그 기억을 잊어버리면, 우리 애는 이 세상에 안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기억을 지우고 슬픔을 극복하는 일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예요.”
'슬픔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이라는 박완서 선생님의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일이다. 슬픔의 고통은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인생의 길을 보이게 한다. 박완서 선생께서도 그러한 슬픔을 통하여 인생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셨을 것이다. 선생께서 작가의 길을 담대하게 걸으셨던 까닭은 그러한 슬픔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날의 시련과 역경 그리고 고통과 고난이 오늘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슬픔 속에 성지(聖地)가 있다' 라고 했다. 1895년에 그는 노동 금고형에 처해져 2년간 감옥 생활을 했는데 그때 쓴 옥중 일기에 그런 말을 남겼다. 그 말은 오스카 와일드가 감옥에 갇힌 자신의 슬픔을 깊이 성찰한 말이다. 인간의 슬픔을 가장 높은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말로서 인간은 슬픔을 통해서 비로소 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통해 영혼이 험난해진다. 그리고, 가장 험난한 곳에서 더욱 겸손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을 견디는 것을 통해서 인간은 다시 거듭날 수 있다. '인내는 인간 정신의 숨겨진 보배' 라고 했는가! 나치 수용소에서 발견된 낙서 중에는 이런 낙서가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아무리 힘들고 끔찍해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닌 내일 슬퍼하겠다.” 일단, 오늘의 슬픔은 견뎌내야 내일이 있다.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잘 통과하면, 새로운 성지(聖地)에 도달할 수 있다. 슬픔은 우리에게 견딤을 요구한다. 그래서, 슬픔의 터널을 잘 견디고, 순탄하게 잘 통과해야 한다. "원망 속에 있으면서도 원망하지 말고, 근심 속에 있으면서도 근심하지 말고, 욕심 속에 있으면서도 욕심을 내지 말며, 또한 내 것이 아닌 것은 가지려 들지 말라." 라는 법구경(法句經) 경구가 있다. 슬픔을 초월해서 견딘다는 것은 내 영혼의 등불을 켜기 위해 필요한 기름과 같은 것이다.
★ 가장 큰 승리자는 침묵을 아는 사람이다. 불행과 기회를 놓친 사람들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자세로 위로와 격려로 일구어 나가는 것! 이것이 휴머니스트(humanist)의 몫이다. 말없는 헌신이 진정으로 고상한 아름다움이다.
친구의 왕따를 견딜 수 없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청소년이나 군대에서 상급자에 찍혀서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군인이나 청춘을 바쳐 지켜온 회사에서 버림받고 죽음으로 내몰린 중년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박함은 매한가지이다. 막다른 길에 처한 그들에게 목숨 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있다느니, 인생은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는 달콤한 희망은 사후의 약방문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사회의 곳곳에서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살피고 또 살필 일이다. "무릇 어떤 죄악 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악이 가장 잔인하고 크다." 섬뜩한 경고이다.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혹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없는지 염려가 된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좀 기다려주고 천천히 갔으면 싶다.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단 석줄의 시(詩)에 삶을 관통하는 깊은 사유와 자기 성찰이 담겨있다. 우리는 매번 목적지에 연연해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기쁨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실적주의, 성과주의에 익숙해진 까닭일 것이다. 사실, 진정한 기쁨은 성취와 성공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낮아지고, 감사하고 만족하고, 자족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일상의 기쁨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항상 솟아 오른다. 고난과 고통, 시련과 역경의 산을 넘어섰을 때에 얻어지는 기쁨은 그 이상의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적지 않은 풍파로 인해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의 여정이다.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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